[Review] 나무의 속도로 살아가는 삶 - 도서 '내 속에는 나무가 자란다'

다양하고 색다른 관점에서 바라본 나무 에세이
글 입력 2024.02.26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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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작가의 소설 <채식주의자>엔 어느 날 어떤 꿈을 꾸고 육식을 거부하기 시작한 ‘영혜’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주변 사람들에게 영혜의 행동은 갑작스럽고 이상하게만 보인다. 기이할 정도로 극렬히 육식을 거부하는 그녀의 행동은 그러나, 알고 보면 어린 시절부터 일상 속에 스며들어 있었던 폭력과 고통에 대한 상처, 트라우마에 기인한 것이었다. 영혜는 끝내 자신 또한 무해한 한 그루의 ‘나무’가 되길 꿈꾼다. 


전 세계가 연결되어 있다는 글로벌한 2024년의 세상에서 ‘나무의 속도’로 살고 싶다는 이야기는 사뭇 낯설게 다가온다. 당장 sns만 켜 봐도 매분, 매초 올라오는 새로운 컨텐츠들과 무수히 올라가는 좋아요를 발견한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끊임없이 바뀌는 유행을 체감할 수 있다. 새로운 것과의 만남은 곧 익숙했던 것과의 이별일진데, 그에 익숙해질 틈도 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는 어쩌면 자극적인 도파민에 익숙한 전형적인 ‘현대인’이다. 


바쁘게 어디론가 가는 사람들, 시끄러운 소음, 그 속도, 빠른 속도. 하지만 사실 어떻게 모두의 속도가 같을 수 있을까? 세상엔 토끼의 속도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거북이의 속도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그리고 여기, ‘나무’의 속도로 살아가고자 하는 한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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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속도에 질려버렸다. 나무의 시간을 살고 싶었다. 


나무가 되고 싶을 정도로 나를 궁지에 몰아붙인 것은 다름 아닌 소음이었다. 사람은 소음을 내고, 나무는 역동적으로 살아가면서도 침묵으로 속삭인다. 둘 사이의 차이는 너무나 극명하다. 사람들이 부지런히 일하면서도 직장에서 쏟아내는 끔찍한 불평들은 끝까지 침묵하는 나무와 선명하게 대비된다. 나는 시끄러운 사람이 아닌 조용한 나무가 되고 싶었다. 

 

- '내 속에는 나무가 자란다' 중

 


수마나 로이는 인도의 시인이자 소설가로 첫 소설 <닭의 목에 걸린 사랑>이 2008년 ‘맨 아시아 문학상’ 최종 후보에 오르며 문단에 등장했다. 이후 10년만에 출간한 자전적 에세이인 이 작품, <내 속에는 나무가 자란다>는 인도에서 가장 중요한 문학상 ‘샤크티 바트상’과 ‘사히트야 아카데미상’ 최종 후보에 오르며 미국, 프랑스, 독일 등 다양한 나라에서 출간되었다.


그녀는 바쁜 현대 사회의 속도에 그저 발맞춰 걷는 것에 용감하게 ‘싫다’라고 말한다. 그녀는 나무의 속도를 사랑하고, 때때로 한 그루의 나무가 되길 소망하는 사람이다. 그녀가 사랑하는 것은 나무 사이를 흐르는 바람의 소리, 햇살의 반짝임, 그리고 ‘나무’ 그 자체이다. 그녀가 나무를 사랑하고 닮고자 하는 그 지극한 진심은 에세이 곳곳에서 매우 선명하게 드러난다.


 

사람의 시간에는 노인에 대한 경멸이 만연하다. 나는 나이에 비해 젊어보인다는 말을 많이 듣지만 “동안”이 칭찬이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이런 단어는 불쾌한 편견이다. 노인이나 중년같이 나이를 표현하는 수많은 접두사와 단어들이 정녕 아름다운가? 


이런 “칭찬”을 들어야 했던 어느 아침에는 나무가 이 같은 “칭찬”을 들으면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했다. 40년 된 나무에게 스무 살밖에 안 되어 보인다고 말하면 모욕감을 느끼지 않을까? 나무에게는 연륜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문명사회에서 얼굴이나 목의 주름과 엉덩이와 허벅지의 구김살은 지우고 싶은 부끄러운 흔적이다. 나무에 해마다 생기는 둥글고 울퉁불퉁한 나이테도 살아온 세월을 짐작하게 하지만 굴곡마다 배어드는 것은 잔잔한 위엄이다. 

 

- '내 속에는 나무가 자란다' 중


 

고백하자면 나 또한 나무와 자연을 사랑하고, 숲의 푸르른 공기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누군가에겐 아날로그이자 구식으로 취급될만한 느린 취미 속에서 낭만을 찾는 사람이다.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 사회에서 종종 나는 나 자신을 속도가 조금 느린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누구를 알아가고, 새로운 것에 적응하는 데에도 남들보다 한 템포 정도의 여유가 더 필요한 사람이라고 말이다. 앞만 보고 걷는 것보다 주위를 구경하며 걷는 걸 좋아하는 나는, 걷는 속도마저 느린 사람이다. 


때문에 에세이의 첫 문장부터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작가가 표현하고 또 담고자 했던 ‘나무의 속도’에 그 누구보다 공감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작가는 나무의 목소리를 듣고, 나무를 그리고, 잎사귀의 이야기에 집중하며, 나무 그림자를 밟는다. 고요히 빛을 먹는 나무를 관찰하고 나무가 있었던 어린 시절을 추억하며, 삶과 죽음 속에서 나무를 발견한다. 최초의 책은 나무였으며 부처가 깨달음을 얻었던 보리수 역시 나무였으니, 식물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고 역설한다. 


다양하고 색다른 관점에서 작가가 바라본 나무는 놀라울 정도로 낯설고 아름다우며 깊이 있게 다가온다. 언제나 일상 속에서 거리에서 그곳에 있었기에 무심히 스쳤던 나무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지점에서 다시 바라본 나무는 참으로 새로워 보인다. 단단하고 고요한 생명의 아름다움을 가득 담고 있다. 

 

 

현재를 즐겨라, 순간을 움켜쥐어라, 지금을 살아라. 나무의 시간은 미래를 걱정하지 않으며 과거를 후회하지 않는다. 햇볕이 내리쬐면 꿀꺽 삼키고 먹는다. 밤이 오면 쉰다. 

 

- '내 속에는 나무가 자란다' 중


 

빛을 향한 나무의 갈망은 감동적이다. 이들의 관계를 아름답게 만드는 소리 없는 탐식은 언제나 나를 매료시켰다.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먹는 사람은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다. 나도 마찬가지다. 나무가 조용히 빛을 먹는 모습은 너무나 아름답다. 그림자는 나무의 배설물일까?

 

- '내 속에는 나무가 자란다' 중


 

나무가 되고 싶었던 나는 어느새 “나무의 시간”을 살기 시작했다. 빡빡한 직장 생활 떄문에 매일 한두 시간뿐이었지만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강렬한 마약이었다. 나는 점점 잠깐 누리는 느린 시간에 중독되었다. 


나무가 되고 싶은 나의 마음은 곧 느린 시간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갈망이었던 셈이다.

 

- '내 속에는 나무가 자란다' 중

 


나무가 되고 싶은 마음, 느린 시간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갈망. 언제나 바쁘고 빠른 것만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이 옳은 것일까. 만약 내가 나무가 된다면 어떤 나무가 되고 싶을까? 그 어떤 나무를 선택한다고 해도 정답도 오답도 없을 것이다. 나무의 세상에서는 키가 크거나 잎이 더 큰 나무만이 더 우월하고 잘났다는 기준따위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나 또한 어렸을 적 종종 가족여행으로 떠나곤 했던 피서지인 숲 속의 계곡, 푸르른 산 속의 풍경을 떠올리게 된다. 당시 숲 해설가분을 따라 이른 아침 걸었던 숲길에서 맡을 수 있었던 이슬 냄새, 도토리를 가지고 빠르게 나무 위로 올라가던 청솔모, 푸르고 푸르렀던 키 큰 나무들의 풍경을 기억한다. 가끔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 어지러움을 느낄 때 평화로웠던 숲 속의 풍경, 그 속에 서 있었던 고요한 나무들을 생각한다.

 

 

“이 장소의 이름이 뭐예요?”

“숲이라고 해.”

“여기서 쉴 수 있다는 뜻이네요.”


아이는 단어의 명백한 어원을 쪼개었고, 우리는 의자의 날카로운 가장자리로 고쳐 앉았다. 나는 그전까지 숲forest을 “휴식for rest”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모든 숲속에서 어린 소년은 길을 잃는다. 우리는 어린 소년들을 찾으러 왔다. 

사실, 우리는 길을 잃기 위해 숲에 왔다. 

 

- '내 속에는 나무가 자란다' 중


 

숲에는 꿈에 비유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 달빛이 어리는 숲을 둘러싼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을 이 꿈과 연결지을 수 있다. 

 

- '내 속에는 나무가 자란다' 중 

 


개인적으로 가장 낭만적이고 환상적으로 느껴졌던 부분은 ‘숲에서 길을 잃는다는 것’이라는 제목의 에세이였다. 작가는 어린시절 숲을 ‘파란 산소’라고 묘사하곤 했다고 회상한다. 파란 달빛이 비치는 숲 속은 아름답고 신비로운 미지의 동화 나라처럼 보이곤 한다. 파란 달빛이 비치는 고요하고 아름다운 세상, 숲의 한 가운데에서 우린 고독과 더불어 침묵 속에서 교육이 이루어진다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숲 전체를 감싸고 있는 기묘한 고요함을 상상해본다. 직접 경험하기 전까지 상상할 수도 없는 그런 고요함을. 마치 환상으로 가득 찬 꿈과 같은 풍경이지 않을까? 

 

 

나무처럼 나도 필요 이상의 것은 원하지 않았다. 빛과 나의 관계를 나무와 빛의 관계처럼 상상해보기도 했고, 속도와 과잉을 거부하고 나무의 시간에 맞춰 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나 자신이 완전히 나무 같다고 느끼지는 않았다. 


어느 날 해가 질 무렵 새 한 마리가 날아와 내 어깨 위에 내려앉는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나는 미동 없이 앉아있었다. 새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지만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바이쿤타푸르 숲의 가장자리에서 나는 마침내 나무가 될 준비가 되었다. 

 

- '내 속에는 나무가 자란다' 중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멈춰 잔잔한 나만의 속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에세이집이었다.

 

내 안에도 새겨져 있는 나무란, 나무의 속도란 무엇일까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박주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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