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스케이트 보드, 넘어지는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스포츠 [운동/건강]

글 입력 2024.02.12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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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이라면 질색팔색, 스포츠에는 관심이 하나도 없던 나지만 멋져 보이는 것들은 동경했다. ‘끝날 때까진 끝난 것이 아니다.’ 라는 말처럼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역전하는 경기보다는, 오로지 보드 하나로 길 위를 자유롭게 누비고 넘어져 호되게 다쳐도 깁스를 하고 다시 스케이트 보드 위를 올라가는 그들의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 깨끗하고 새로운 옷과 물건에 집착하는 시대에서도 꿋꿋하게 낡고 헤진 스케이트화와 스크래치 투성이의 보드가 멋이라는 이 투박한 스포츠는 바로 스케이트 보드다.

 

처음에는 롱보드 원데이 클래스로 시작했는데, 롱보드 위의 안정감있는 주행이 좋았지만 난간을 타고 내려 가기에도, 다양한 트릭을 구사하기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다양한 트릭을 연습하겠다는 힘찬 다짐과 함께 구매한 내 스케이트 보드는 여전히 공중에 떠 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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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보기에 발을 구르고 앞으로 나아가는 보드 위에 몸을 싣기만 하면 되는, 또 발로 조금만 힘을 주면 보드가 뜨거나 회전해서 그 위에 착지하기만 하면 되는 금방 할 수 있을 것 같은 스포츠라고 착각했다. 하지만 스케이트 보드는 감을 유지해야 해서 꾸준히 탈 성실함과 단 한 번의 성공을 위해 몇 백 번 트릭을 연습할 끈기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높은 곳에서 내려올 도전정신과 할 수 있다고 나를 믿어주는 자신감까지 필요하다. 게다가 피지컬적으로는 발을 꺾으려면 유연성도 필요하고 가속이 붙는 보드 위에서 당연하게 중심을 잡을 수 있는 균형 감각과 속도가 떨어지면 계속 발을 굴릴 만큼의 지구력까지 필요하다. 한 번은 주행 실력을 키우겠다고 5km정도를 보드로 갔는데 몇 시간이 걸렸다. 난 그 날 이후로 바람을 맞으며 시원하게 달려 집에 도착하는 낭만은 접어두고 다시 시도하지 못했다.

 

뚝섬에 위치한 X-Game장은 스케이트보드 타는 분위기를 즐기고 싶다면 서울에서 가장 유명한 장소일 것이다. 처음으로 은근 무거운 스케이트 보드와 20분 지하철을 타 뚝섬유원지역에 내렸을 때 바로 옆에 스트릿 패션에 스케이트 보드를 들고 가는 사람을 보며 정말 멋지다고 생각하며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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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Game장에는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내며 날아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어린아이, 외국인, 청년뿐 아니라 40대 아저씨들까지도 이곳에서 아주 빠르게, 또는 아주 높이 난다. 종종 비싼 쇼를 무료로 보는 것 같아 신기해 하며 구경하기도 했다. 가끔은 기술자들 사이에서 엉망으로 타고 있는 나를 보면서 파이팅이라고 외쳐주는 외국인과 이렇게 하는 것이라며 알려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느린 주행과 소심한 틱택밖에 못하지만, X-Game장에서 가장 낮은 기물을 탔던 경험이 있다. 드롭 인은 경사진 면을 내려가는 기술인데, 스케이트 보드의 맨 끝부분을 평평한 면 끝에 발로 고정시키고 다른 한 발을 공중에 떠있는 보드 위로 올리며 내려가면 된다. 재밌는 것은 내려가기 전에 ‘드롭 인’ 이라고 외치는데, 이는 이제 내려 갈 거니까 앞에 있는 사람들 비켜 달라는 뜻이다. 그러면 기물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길을 터준다. 1m는 될까 싶은 아주 낮은 기물 위라도 스케이트 보드 위에 서 있으면 넘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두려움에 휩싸인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할 수 있을까?’ 하고 겁먹고 의심하면 넘어지지 않을 수 있는건데도 넘어져버리고 만다. 하지만 ‘할 수 있다.’고 믿으면 여전히 보드 위에 내 몸이 버티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 날에는 아이들이 가장 높은 기물 위에서 자전거를 타고 내려오는 것을 구경하는데, 망설이고 있는 어떤 아이에게 어머님이 이렇게 소리치셨다. ‘한 번 내려와봐! 넘어지는 것밖에 더 하겠어?’ 그 말을 들은 아이는 넘어지지 않고 무사히 내려왔다.

 

또 어떤 날은 영상을 봤는데 계속 넘어지는데도 다음 날 또 연습하러 오는 아이에게 인터뷰어가 물었다. ‘넘어지는데 왜 계속 타는 거에요? 안 아파요?’ 그리고 아이는 대답했다. ‘넘어질 만큼 넘어졌으니까 다음에는 성공할 것 같아요.’ 그리고 아이는 정말 계속 연습하던 트릭을 해내고 말았다.


맞다. 넘어지는 것밖에 더 할까?

 

맞다. 이 다음에는 반드시 될 거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 무언가를 지독하게 시도해 본적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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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 하나로 세상을 자유롭게 누비고, 또 마음껏 넘어지고, 넘어지는 트라우마를 계속 이겨내다 보면 넘어지는게 대수롭지 않아지는 이 무던한 스포츠가 좋다. 손바닥이 다 까지고, 한 번은 뒤로 넘어져 엉덩이 뼈를 다쳐 몇 주 동안 제대로 앉지도 못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다시 한 번 해보라는 스케이트 보드를 떠올린다. 그리고 한편으론 보드 위 위태로운 감각과 넘어지기 싫은 내 욕심스런 마음이 주행과 틱택에서 오래 머물러 있게 만든다. 모든 일이 다 그런 것 같다. 한 번에 잘 되고 싶고 바로 원하는 것을 얻고 싶어하는 마음이 더 나아가지 못하게 막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날씨가 따뜻해지면 올해는 꾸준하게 해서 꼭 알리를 성공하고 싶다.

 

공중에 떠 본적도 없고, 5km의 주행도 힘들어 하는 넘어지는게 여전히 무서운 나지만 넘어져도 괜찮다. 마음 속에 늘 품고 있는 이 스포츠는 넘어지는 트라우마를 이겨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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