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다울, 거문고를 부수고 거문고 속으로 더 깊이

록밴드의 거문고 연주자 박다울
글 입력 2024.02.14 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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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박다울을 처음 본 것은 슈퍼밴드2에서였다. 길고 헝클어진 곱슬머리, 두꺼운 테의 안경, 헐렁한 트레이닝복의 예사롭지 않은 행색의 남자가 예사롭지 않은 악기 거문고를 가지고 나왔다. 뭔가 일을 벌일 듯한 분위기다. 밴드를 구성하는 프로그램에 국악기라니... 이질감은 기대감을 극대화시켰다. 박다울은 컴퓨터와 여러 개의 페달이 있는 발판을 거문고에 연결했다. 거문고를 연주하다가 컴퓨터를 조작한다. 계속 멜로디가 쌓여 간다. 그 컴퓨터가 루프스테이션(loop station, 일정한 구간을 반복 재생하는 곡 구성 방식 혹은 그러한 악기)이라는 건 나중에 알았다. 중간중간 거문고를 타악기처럼 두드리다가 활로 켜기도 한다. 그러다가 연주를 잠깐 멈춘 후 폴짝 뛰어 페달을 밟아 음악을 플레이시킨다. 거문고를 가지고 생각할 수 없었던 퍼포먼스였다. 나는 첫회에 이 퍼포먼스를 보고 이번 프로그램에서 내가 따라갈 사람을 일찌감치 정했다.

 


JTBC 슈퍼밴드2, 박다울의 '거문장난감' 연주

 

 

그런데 이 프로그램의 목적은 연주자의 개인의 기량을 뽐내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녹아들 수 있는 밴드를 구성하는 것이다. 국악기가 압도적인 사운드를 만들어 내는 전자기타, 드럼, 베이스 등의 밴드 악기들과 어떻게 하모니를 이룰지 언뜻 불가능해 보이는 미션이었고 무모한 시도처럼 보였다. 박다울은 스스로 밴드 안에 자기 자리를 마련해야 하고 자신과 거문고가 꼭 필요한 구성 요소라는 것을 증명해 내야 했다. 그러나 이 어려운 것을 성공적으로 해 낸 선례가 이미 있다. 바로 '팬텀싱어3'의 고영열이다. 남성 성악 크로스오버 4중창단을 구성하는 경연(팬텀싱어3)에서 소리꾼 고영열은 영리한 전략으로 레퍼토리와 멤버를 구성했고 매번 자신이 팀의 정체성으로 자리 잡았다. 최종 구성된 4중창단 '라비던스'는 고영열을 빼고서는 이야기할 수 없는 팀이다. 유일하게 판소리 소리꾼 멤버를 가진 중창단이자 클래식, 민요, 판소리, 대중가요, 재즈 등 레퍼토리를 무한 확장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으며 재즈의 스캣 못지않게 음악에 자유로움과 다양한 감정을 불어넣을 수 있는 구음이라는 무기를 장착하게 됐으니 말이다. 고영열로 인해 라비던스는 독특함, 유일함이라는 최고의 정체성을 가지게 된 것이다. 박다울은 또 다른 파격과 상상력으로 현대 전자 악기들과 거친 록 싱어들 사이에서 자기 자리를 만들어냈다. 그 과정이 정말 흥미진진했다. 박다울은 밴드의 어법을 빠르게 배워 나갔고 밴드 음악에 맞게 거문고 연주법을 다양하게 시도했으며 급기야 현악기인 거문고의 줄을 끊고 타악기로 활용함으로써 거문고의 밴드 안에서의 역할을 확장시켰다. 연주 중간에 거문고의 줄을 끊는 퍼포먼스는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이제껏 가장 충격적인 퍼포먼스였다.

 


jtbc 슈퍼밴드2, <박다울, 김진산, 김나영의 GOOD BOY>

 

 

록밴드의 거문고 주자가 되겠다는 박다울의 시도는 회가 거듭될수록 다양한 방식으로 실험이 진행됐고 박다울은 매우 성공적으로 록밴드에 안착했다. 마침내 파이널 라운드의 최종 팀에 합류했고 준우승을 차지했다. 내가 첫회부터 주목한 기타리스트 '황린'과 같은 팀이 돼서 더 흐뭇했다.

 


JTBC 슈퍼밴드2, 파이널 라운드 <카디> 공연

 

 

그러나 나는 지레 걱정이 됐다. 거문고가 록밴드에서 얼마나 큰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나는 밴드 <카디>보다는 거문고 연주자 박다울의 다음 스텝이 더 궁금했다. 그때부터 예매 사이트에 들어갈 때 가끔 '박다울'이름을 검색하곤 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박다울'의 공연 소식을 접하게 됐다. 세종문화회관에서 매년 새로운 시도의 공연을 선보이는 '싱크 넥스트' 공연의 2022년 라인업에 들어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일찌감치 예매를 해 놓고 공연을 기다렸다. 세종문화회관의 S씨어터는 지하의 작은 공연장이다. 무대와 관객석의 경계가 공연마다 바뀐다. 이번 '박다울' 공연에서는 턱이 없는 무대 저만치 안쪽에 거문고를 앞에 둔 박다울과 관객을 등지고 있는 피아니스트와 컴퓨터를 앞에 둔 연주자가 앉아 있다. 악기들이 서로 주고받듯이 연주를 하다가 무용수들이 마치 주인공인양 나머지 무대를 매운다. 거문고 연주에 맞춰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춤 동작들이 이어진다. 언뜻 체조같기도 한 절도있고 역동적이고 낯선 움직임이다. 그러다가 무용수들이 거문고를 하나 가지고 나오더니 생선에서 살을 발라내듯 거문고를 해체하기 시작한다. 줄을 끊고 줄을 풀어서 거문고 몸체와 줄을 분리하더니 이제 아예 거문고 몸통을 부숴서 산산조각 낸다. 그 자리에 있던 것이 거문고였다는 기억을 없애려는 듯 작은 조각들로 부숴 버렸다. 그 작은 파편들에 무용수들 발을 다칠까 걱정될 정도였다. 그러더니 네 개의 투명 유리판을 세우고 무용수들이 거기에 색색의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거문고에서 시작한 울림이 피아노와 컴퓨터 음악으로 이어지고 그것이 인간의 동작으로 확장되고 무용수들이 몸으로 그린 그림이 되는 이 공연의 제목은 바로 'ㄱ ㅓ ㅁ ㅜ ㄴ ㄱ ㅗ'였다. 거문고를 부숨으로써 거문고라는 악기의 울림을 악기 자체에 한정하지 않고 청자의 내면의 울림으로 확장시키려고 했으며, 그것은 또한 거문고의 본질로 더 깊이 들어가려는 시도로 보였다. 박다울은 거문고라는 악기의 한계를 넘어 악기의 울림을 길고 넓게 하고 싶은 바람을 이렇게 다른 차원의 울림들로 승화시키려는 것 같았다. 이것이 바로 '수성하지 않고 수성하는' 것인가.


""우리는 존재하지만 실재하지 않는 거문고를 마음속에 하나씩 품고 살아간다. 이 거문고는 우리의 마음속에 무형의 형태로 존재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한다. 거문고는 유연하게 반응한다. 상황에 의해서 사람에 의해서. 우리는 이 거문고를 심금(心琴)이라고 한다. 박다울은 보편화된 거문고를 분해해서 그 파편의 조각들을 유연하게 재생하려 한다. (공연 팸플릿에서)



박다울의 거문고.jpg

 

 

박다울 싱크 넥스트 공연 2.jpg

 

박다울 싱크 넥스트 공연 3.jpg

 

박다울 싱크 넥스트 공연 4.jpg


 

나는 이 공연을 보고 나서야 내가 발견하기 이전의 박다울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유튜브에서 국악 TV '원일의 여시아문-이도공간'이라는 프로그램의 박다울 인터뷰 동영상을 봤다.  젊은 거문고 연주자의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연주자이자 창작자인 박다울은 의외로 젊은 국악 연주자들이 타의에 의해 '창작'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한다. 국악 연주자들은 오랜 훈련기간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그 후 사회에 나왔을 때 국악 연주자들이 갈 수 있는 곳은 너무 좁다. 그래서 부득이 창작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는 것이다. 훈련기간 동안 아무도 이런 현실을 진지하게 가르쳐 주지 않았으며 심지어 작곡법 등 창작 방법에 대한 교육은 전무했다고 토로한다. 박다울은 인터뷰에서 여러 번 국악 교육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현실을 제대로 보여 주고 거기에 맞는 교육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 인터뷰를 통해 박다울이 경연 이후 보여준 여러 시도들의 문제의식을 엿볼 수 있었다. 박다울은 인터뷰에서 거문고라는 악기가 가지고 있는 솔로 악기로서의 한계점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다른 악기들과 어떻게 어울릴 수 있는지 고민하고 있었다. 아마 그 고민을 풀어 보기 위해서 '슈퍼밴드2'에 나온 듯하다. 거기서 또 박다울은 거문고 주법의 단조로움과 소리가 짧아 전달이 쉽지 않다는 악기 자체의 한계를 넘어서고 싶어 했다. 박다울은 록밴드와 연주하면서 속주 방법을 발전시켰고 타악기로서 역할을 확장시켰다. 그리고 짧은 울림은 악기 외부적으로는 엠프와 이펙터를 사용해 보기도 하고 '거문고'공연에서처럼 악기의 본질을 파고들어 악기의 본체를 넘어서는 다양한 예술적 실험을 해 보기도 했다.

 

 

국악TV, <원일의 여시아문-이도공간, 박다울 편>

 

 

그러나 박다울은 '방울성'이라는 국악 연주팀을 통해서는 전통음악의 본질을 탐구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방울성'의 모토는 '음악적 모국어인 전통음악을 기반으로 더 많은 이야기를 풀어나가겠다'는 것이다. 전통음악 연주자로 정진하는 것과 전통음악을 넘어서는 창작자로서의 길을 모두 가겠다는 것이다.

 

 

방울성(방지원, 박다울, 김용성)

 

 

"음악적 모국어인 전통음악을 기반으로 더 많은 이야기를 풀어나가겠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KARD의 첫번째 단독 공연에 갔다. 이들의 흥미롭고도 용감한 시도를 눈과 귀로 확인해 보고 싶었다. 올 스탠딩존 맨 뒤에서 무대를 제대로 볼 수는 없었지만 사운드를 뚫고 나오는 반가운 거문고 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고 가볍게 헤드뱅잉을 했다. 박다울은 그의 바램대로 록밴드의 거문고주자로 안착한 듯 보인다. 아니 록밴드 KARD야말로 거문고가 있는 록밴드로 조금씩 제자리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 같다. 부디 이들의 만남이 특별한 이벤트가 아닌 음악의 지평을 넓힌 하나의 장르로 자리매김하길 바란다. 몽골의 전통 흐미 창법과 전통 악기를 가지고 성공한 몽골의 헤비메탈 밴드 'THE HU'의 예도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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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고를 너무 사랑해서 거문고 줄을 끊고 거문고를 부순 거문고 연주자라니. 젊은 창작자의 고민의 깊이만큼 우리의 세계가 넓어질 것이다.

 

 

[고유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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