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삶이란 한평생 나를 키우는 일이다 - 약한 게 아니라 슌한거야

글 입력 2024.02.17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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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곧 남을 살피는 데에 힘을 들였다. 소중한 사람일수록 더 살피고 더 신경 썼다. 사소한 언행으로 상처받진 않았을지, 배려 없지는 않았는지 나를 되돌아보는 데 급급했다. 덕분에 나는 남들에게 편한 친구가 될 수는 있었을지 몰라도, 정작 내가 지치고 상처받는 날이 많았다.


내가 남을 살펴온 시간들 중에 내가 나를 살펴본 시간은 얼마나 될까. 타인의 상처와 마음을 헤아리는 동안 나의 마음은 헤아려본 적이 있었나? 소중한 정도로 치면 가족, 친구, 연인보다 더하면 더했지 절대 덜하지 않은 것이 나 자신 아닌가. 그런데 정작 나는 남들을 살피는 데 급급하여 나 자신을 사랑해주지 못한 것 같다.

 

윤수훈 작가의 도서 <약한 게 아니라 슌:한 거야>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남보다는 나를 더 살피자는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내 마음과 감정, 생활, 생각, 모든 것들은 나를 구성하는 온전한 것이고 그렇기에 달리 생각해보면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것들이다. 불쾌한 감정을 다스리는 방법, 행복을 찾아가는 방법, 인간관계에 휘둘리지 않고 나를 지키는 방법을 윤수훈 작가는 푸른 색의 짧은 만화로 전달한다.

 

 

약한게아니라슌한거야_표지 평면.jpg



둥굴둥굴 귀염뽀짝한 SD 비율의 캐릭터와 그가 뱉는 말들은 때로는 너무 현실적이라 열 컷 남짓한 단편에 푹 몰입하게 하고, 때로는 너무 이상적이라 ‘이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싶은 생각에 잠기게 한다. 주로 힘들고 우울한 얘기는 전자에, 그리고 작가의 깨달음이나 해결 경험을 담은 에피소드는 후자에 해당하는 듯하다.

 

그래서 나에게는 여타 줄글로 된 에세이보다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각진 컷에 담긴 슌의 일상이, 표정이, 그 분위기가 내가 경험한 것들과 닮아있었고 그의 해법과 지혜는 나에게는 아직 부족한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파란색으로만 그려낸 만화였기에 시선이 더 머물렀던 것도 사실이긴 하지만. 슌은 ‘나’를 찾지 못한 나에게 부족한 것들을 일깨워주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 왜 네 마음을 알아주면 좋겠는데? 

: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이렇게 계속 내 마음이 불편한 상태로 관계를 지속할 수는 없잖아. 

: 그럼 두 번째, 섭섭한 감정을 감추고 싶은 이유가 뭐야? 

: 속이 좁아 보일 것 같잖아.

: 속이 좁아 보이면 안 되는 이유는? 

: 어, 음… 그야… 나 자신이 그렇게 비춰지면서까지 문제 삼고 싶진 않아. 불편하거든…

: 이러나 저러나 결국 불편한 건 마찬가지네? (중략) 그럼 답 나왔네! 지금보다 편해지고 싶다면 용기를 내야 해. 

: 용기?

: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라도 유지하고 싶은 관계라면 용기내어 솔직해지고, 그게 아니라면 않았을지 멀어지도록!

 

 

관계를 시작하고 이어나가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하지만, 관계를 끊어내는 데에는 그것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 나는 이 용기가, 소중한 사람보다 나를 우선시할 용기라고 이해했다.

 

타인과 함께 맞추어 유지해나가던 관계가 더이상 나를 행복하게 해주지 않거나 나의 노력이 당연시되는 관계라면 이 관계는 나에게 독이 되는 관계임을 인정할 용기가 필요하다. 이 용기는 내가 한때 소중히 여겼던 사람이 아니라 이제는 나를 더 소중히 여기겠다는 다짐과 결정에 필요한 용기라고 하겠다. 나를 소중히 하는 데에 어색한 나는 이것을 용기라고 여기지도 않았거니와, 용기라 한들 엄청난 마음을 먹어야 낼 수 있는 것이었다.


아니면 슌의 만화는 내가 경험했던 것, 그러나 잊고 있던 것을 상기시켜주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 간만에 날이 따뜻해져 자전거 타고 외출하고 한강에서 산책도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직이 되뇌인 말. “오늘 날씨 제대로 누렸네!” 그래, 삶을 더 누려야 해. 자주 잊게 되잖아, 내가 가진 것들. 가진 것을 사용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겠어. 볕 좋은 날씨엔 날씨를 누리고, 지금의 젊음과 건강을,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시간을, 배움과 성장의 기쁨을, 더 누리면서 살자. 이미 내가 가진 것들이잖아?
 

 

네 컷 동안 슌은 햇살을 맞으며 날씨를 누린다. 나도 기분 좋은 햇살을 맡고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던 순간이 기억났다. 특히 요즘같이 날이 풀리는 시기엔 더욱 어렵지 않게 날씨를 누릴 수 있는데, 그걸 인지하고 하루를 어여삐 여기기란 쉽지 않았다. 나에게 없는 것들보다 이미 나에게 주어진 것들을 보살피고 소중히 여기기 시작해야만 나에게 없는 것들은 결핍에서 목표로 바뀔 수 있다. 그게 자존감을 회복하는 가장 기본적인 첫걸음이다.


“삶이란 한평생 나를 키우는 일이다.”

 

이 문장처럼, 살아가는 동안 나는 나를 아이를 키우는 것처럼 보살펴야 한다. 그렇게 해줄 사람은 이 세상에 나밖에 없고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도 나밖에 없다.

 

나의 취향과 선호, 습관, 감정의 동요 등에 세심히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자. 그것이 나를 괴롭히는 수많은 생각들에게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박상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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