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음악 타고 영국 비행 - 한수진과 브리티시 오리지널

글 입력 2024.02.1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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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 (1).jpg

 

  

처음 이 공연의 제목을 듣자마자, 호기심이 생겼다. 한수진과 '브리티시' 오리지널 공연이라니. 평소의 나는 클래식 음악이라면 주로 독일과 같은 다른 유럽 국가들을 떠올리곤 했었는데, 영국의 클래식이라고 한다면, 특별히 떠오르는 그림이 없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꼬박 두 시간을 영국 음악만으로 채워보기로 결심했다.

 

내가 잘 알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러 가는 것도 좋지만, 반대의 경우에도 얻어갈 수 있는 것은 많다. 우연한 계기로 알게 된 곡들이 딱 내 취향일 때 느끼는 희열은 참 큰데, 이번 공연에서 발견한 보석은 에릭 코츠의 런던 모음곡이다. 노래를 듣자마자, 어렸을 적 패키지여행으로 가족들과 잠깐 스쳐 여행 한 런던, 미디어에서 보던 런던의 단편적인 이미지가 머릿속에 그대로 그려졌다.


1악장 코벤트 가든의 반복되는 메인테마에서는 음 사이의 큰 도약이 도시에 활기를 더하고, 부점 리듬으로 시내를 힘차게 걸어 다니는 시민들의 모습이, 2악장 웨스트민스터는 목관악기의 연주 후 나오는 첼로의 솔로처럼 사랑스러움이, 3악장에서는 1악장의 배로 활기차고 분주한 거리의 모습이 생생히 떠올랐다. 정말이지 신기하게도, 그 모음곡은 서울의 공연장에 있던 우리를 런던으로 데려다 놓았다.

 

기존의 곡을 편곡한 레파토리들도 새롭게 다가왔다. 그중 하나인 푸른 옷소매 주제에 의한 환상곡은 내가 좋아하는 영국 전통 민요 '그린 슬리브스' 주제를 바탕으로 관현악곡으로 편곡한 곡이다. 그린 슬리브스는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도 유진 오르골의 메인 음악으로 나오는 아주 구슬픈 멜로디를 가진 곡이다. 그 구슬픈 멜로디는 현악기의 음색과 퍽 잘 어울렸다.

 

같은 슬픔을 노래하고 있었지만, 표현하는 방식이 묘하게 다르게 느껴졌다는 점에서, 악기의 소리는 사람의 성격과 비슷한 것 같다. 내가 느끼기에 바이올린은 따뜻하게 우리에게 말을 걸었지만, 그 따뜻함에서 왠지 모를 슬픔이 묻어났고, 첼로와 비올라는 감정에 한결 묵직함을 실었지만, 그 무게만큼이나 있는 힘껏 우리를 안아주는 것 같았다.

 

리히터의 사계 또한 비발디의 원곡을 편곡한 작품이다. 프로그램 북을 보고, 워낙 유명한 원곡을 어떻게 풀어낼지 궁금했는데,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이 작품은 기존과는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깔끔한 멋을 지닌 기본 멜로디에 현대적인 감각이 결합하여, 퓨전 음식을 먹는 듯한,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이 느낌에 익숙해지는 데는 시간이 조금 필요했다.


노래의 제목처럼 각 계절을 묘사하는 이 작품은 공연장을 달구기도, 또 아예 식혀버리기도 했는데, 곧 봄이 와서일까? 나는 여기저기서 서로의 파트를 받아 돌림노래처럼 흘러가는 1악장, 봄에서 여기저기서 활짝 피어나는 새싹들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공연을 보기 전 영국 음악이 궁금하기도 했었지만, 한수진 바이올리니스트님의 연주를 들을 생각에 기대가 컸다. 처음 한수진 님을 처음 접한 건, 한 채널의 파가니니 레슨 영상을 통해서였다. 기존의 훌륭한 연주에 약간의 방향성과 아이디어를 더하자, 신기하게도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했던 음악은 한층 생동감을 띠게 되었다. 잠깐 보여주시는 시범만으로도 강하게 느껴졌던 개성 있는 연주에, 연주자님의 이름 석 자는 내 머릿속에 자동으로 각인 되었다.


종달새의 비상은 한수진 님의 소리를 집중해서 느낄 수 있었던 곡이었다. 부드러운 음색과 하이 포지션에서도 끊기지 않는 비브라토는 곡의 서정적인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한 음을 향해 달려갔다가, 살짝 빠지기도 하고, 속도를 달리하며 흘러가는 음악은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한 마리 종달새의 궤적이었다.

 

오케스트라 공연은 어렵다는 편견이 있다. 나 역시도 공연 중 지루함을 느끼면, 내가 지식이 부족해서 그런 것은 아닌지 걱정하게 되고, 공연 감상문을 적을 때도, '연주가 좋았다', '멋있었다'와 같은 단순한 감상들만 떠올라 애를 먹은 적이 많다. 이번에는 순간순간 스쳤던 정말 작은 감정이라도 기록해 보고자, 작은 수첩에 펜 한 자루를 챙겨가서 짤막짤막한 문장들을 기록했다. 집에 와서 모든 기억을 종합하자, 이렇게 하나의 감상이 만들어졌다.

 

어쩌면, 가사 하나 없는 이 음악은, 찰나의 순간에 많은 것들을 느끼게 해서, 우리는 그것을 말로 뱉어내는 데 애를 먹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우리가 느낀 것은 '어려움' 대신 '다채로움'이었을까.

 

 

 

원정민 에디터.jpg

 

 

[원정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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