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사람과 사람 간의 사랑이 얼마나 귀한지 - 뮤지컬 '너를 위한 글자' [공연]

글 입력 2024.02.06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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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주의하시기를 바랍니다.

 

 

 

마나롤라의 푸른빛 감동


 

뮤지컬 <너를 위한 글자>는 19세기 초 이탈리아 발명가 ‘펠리그리노 투리’의 실제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작품으로, 이탈리아의 작은 바닷가 마을 ‘마나롤라’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막막한 일상의 힐링을 위해 찾아간 링크아트센터드림에서 평소 관심 있게 지켜보던 김지온, 주다온, 송상훈 배우를 통해 ‘마나롤라’의 푸른빛 감동을 만끽할 수 있어 영광이었다.

 

조용한 마을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발명품을 만드는 ‘투리’. 그의 옆집에 어린 시절 알고 지내던, 밝고 쾌활한 ‘캐롤리나’가 찾아온다. 소설을 쓰던 ‘캐롤리나’는 고향 친구이자 유명한 소설작가 ‘도미니코’와 재회하고, 둘은 매주 소설 모임을 진행한다. 그렇게 서로의 소설에 대해 따듯한 피드백을 주고받던 중, ‘투리’가 둘의 곁에 와서 큰 소리로 과학 상식을 외치는 등 유치한 방해 공작을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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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투닥거리던 ‘투리’와 ‘도미니코’는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 ‘캐롤리나’를 찾아가고, 그녀가 시력 악화로 소설을 쓰지 못하게 되었음을 발견한다. 이제 경쟁자에서 협력자가 된 ‘투리’와 ‘도미니코’는 눈이 안 보여도 글을 쓸 수 있는 발명품 개발에 매진한다. 그리고 ‘투리’는 영국 발명가 협회에서 보낸 초대장에 적힌 기한 내 ‘너를 위한 글자’를 완성한다.

 

이 발명품은 맹인용 타자기로, 손으로 글씨를 쓰는 대신 손으로 자판을 누르는 방식이다.

 

곧이어 ‘너를 위한 글자’와 함께 그녀를 향한 감사를 전달하는 ‘투리’. 그에게 화답하며 영국에서도 잘 지내라고 응원하는 ‘캐롤리나’의 모습이 비친다. 시간이 흘러 그녀가 보낸 편지를 받은 ‘투리’가 자신이 ‘캐롤리나’의 첫사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며 극은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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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깊숙이 스며드는 사랑


 

뮤지컬 <너를 위한 글자>의 핵심은 ‘흔히 볼 수 없는 소품’이다.

 

온종일 발명품을 개발하는 ‘투리’의 이야기를 무대에 표현한 덕분에 기발한 소품을 잔뜩 구경했다. 손짓 하나로 OPEN에서 CLOSE가 되는 팻말이라든지, 빛의 세기와 형태가 조절되는 빛나는 원(LED 전구)이라든지 말이다. 심지어 ‘투리’가 발명품 상자를 철거하는 부분에서는 각종 과일과 채소가 등장해서 혼란을 주었다. 마치 이스터에그처럼 꺼진 조명 아래의 ‘투리’를 유심히 관찰해야만 알 수 있는 부분이라 더욱 신선했다.

 

처음에는 뮤지컬 제목을 왜 이렇게 지었는지가 궁금했다. 글을 쓰는 사람은 ‘캐롤리나’와 ‘도미니코’이며, 두 사람이 ‘투리’를 위한 글자를 선물하는 뉘앙스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캐롤리나’가 시력을 잃게 되고, 그런 그녀에게 ‘투리’가 ‘너를 위한 글자’를 선물한 순간부터 제목이 이해되었다.

 

극의 하이라이트 넘버인 "너를 위한 글자"를 통해 서로에 대한 마음을 보여주어서 더욱 애틋했다. 물론 서로 좋아한다는 표현도 일절 없었고, 곧바로 교제가 시작된 것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 흔한 입맞춤 없이 따뜻한 포옹 하나로도 깊은 애정이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그때부터 이야기가 흥미진진해졌는데, 갑자기 결말이 나와버려서 맥이 끊기는 느낌도 받았다. “두 남녀가 어떻게 본격적으로 사랑하는가?”보다는 “두 남녀가 어떻게 사랑을 이루는가?”에 집중한 작품이었다.


기존 로맨스 장르와 달리 남주와 여주, 서브 남주와 여주, 그리고 남주와 서브 남주라는 세 관계를 하나하나 설명했다. 세 사랑을 세심하게 짚어주느라 결말 부분을 축소한 듯하다. 그래선지 남녀의 사랑 이야기면서도 사람과 사람 간의 사랑이 얼마나 귀한지가 와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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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투리’의 심리 변화가 잘 표현되었다.

 

이사 오고 나서 시끄럽게 짐을 정리하는 ‘캐롤리나’ 때문에 낮은 데시벨로 지내 달라 부탁하던 ‘투리’. 그는 그녀가 자기가 만든 발명품의 필요성을 알아줌과 동시에 마음의 문을 연다. 그러면서 그녀의 집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자 오히려 걱정하는 기색을 보인다. 이처럼 딱딱했던 ‘투리’가 말랑말랑하게 녹아내리는 양상이 펼쳐짐에 따라 관객들의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누군가를 위하는 마음은 그 자체로 소중하다. 셋은 ‘마나롤라’ 안에서 함께하며 서로의 힘과 위로가 되어준다. 이미 멀어버린 눈을 뜨이게 할 수는 없지만, 한 사람의 삶은 지켜낼 수 있다. ‘캐롤리나’의 인생이나 마찬가지인 소설을 계속 집필할 수 있게 정성을 다하는 두 남자로부터 사랑을 배웠다. 먼 나라의 바닷가 마을에서 벌어지는 포근하고 따스한 이야기로부터 사랑의 가치를 느꼈다.

 

강렬하고 폭발적인 사랑만이 사랑이 아니다. 뮤지컬 <너를 위한 글자>는 천천히 깊숙이 스며드는 사랑 또한 사랑임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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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30 오후 8시

 

 

[최수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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