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너무 시끄러운 세상이지만 웃을 수 있다면 - 절대 고요를 찾는 남데브 아저씨 [영화]

글 입력 2024.02.05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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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음과 인구 문제가 심각하다는 인도 뭄바이. 이곳에는 소음에 진저리난 남데브 아저씨가 있다. 남데브 아저씨의 일상은 소리로 가득하다. 개인 운전기사로 일하는 남데브는 까칠한 고용주의 불평불만과 문명의 소음을 들으며 일한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면 끊임없이 질문을 하는 딸과 멈출 줄 모르고 잔소리하는 아내가 있다.


남데브는 낮에 뜬 햇살에 노곤해지려 하면 주변 소음에 깨고, 다시 늘어지려 하면 말소리에 깬다. 문명은 그의 평온을 깨는 것이 난무하는 곳이라 남데브는 도통 웃을 일이 없다. 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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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남데브는 절대 고요를 찾는다.


문명의 소리도, 누군가의 말소리도, 귀뚜라미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곳. 그러한 곳을 기대하며 그는 신문에서 본 세계에서 가장 조용한 곳 ‘침묵의 계곡’으로 떠난다. 이렇게 남데브의 절대 고요를 찾는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우리 주위도 소음이 만연하다. 당장 집 밖으로 나가기만 해도 자동차와 오토바이 배기음으로 인해 인상이 찌푸려진다. 소음은 불쾌함을 동반하고, 그것이 지속되면 사람의 이성을 무너뜨린다. 층간소음 갈등이 폭력과 살인으로 이어지는 현 사회문제만 보아도, 2016년 11건이었던 층간소음 강력범죄가 2021년 110건으로 집계되었다는 사실에 놀랄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남데브의 절대 고요를 찾고자 하는 욕망은 마냥 개인적인 것만은 아닐 테다. 소음에 지친 이들이라면 한 번쯤 꿈꾸는 것이다. 나무의 호흡과 바람 소리, 햇살이 슬며시 얼굴로 내리쬐는 소리 같은 평온함만 있는 세상.


나만 해도 당장 짐을 싸 어느 자연으로 향하고 싶은 지경이다. 1년 넘게 층간소음으로 고통받고 있는 나 또한 집에서조차 소음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애달프게도 문명의 이기를 누리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을 끼고 숲 ASMR 같은 것을 듣는 것뿐이다. 문명의 소음을 벗어나고자 문명을 통해 고요를 찾는다니. 참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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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데브는 침묵의 계곡으로 향하던 도중 버스 정류장에서 자신의 몸보다 큰 짐가방을 멘 소년 알리크를 만난다. 알리크는 남데브에게 관심을 보이며 장난스레 찔러보고 말을 건다. 남데브는 짜증스럽게 반응하지만 알리크는 아랑곳하지 않고 남데브를 따라간다. 알리크에게 남데브는 자신을 침묵의 계곡 옆에 있는 붉은 성에 데려다줄 믿을 만한 어른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귀찮은 동행자와 함께 침묵의 계곡에 도착한 남데브. 고대하던 장소에 다다르자마자 남데브는 완전히 실망하게 된다. 침묵의 계곡은 이미 관광지라는 문명의 침입이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관광객들의 소음으로 침묵의 계곡에서조차 고요를 찾을 수 없게 된 남데브는 절망하고 있던 자신을 위로해 준 알리크를 붉은 성에 데려다주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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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남데브는 사방팔방 신경을 자극하는 소리에 자신까지 소음을 보태지 않으려 침묵을 유지했다. 알리크와 동행할수록 그리 무감했던 남데브의 얼굴에는 다양한 표정이 들어차기 시작한다. 쫑알거리기도, 티격태격하기도, 또 위로를 주기도 하던 알리크. 시끄럽게만 느껴졌던 알리크가 점점 익숙해지며 마침내 남데브는 말을 하고, 또 웃을 수 있게 된다.


남데브의 웃음을 보면 가슴이 아려온다. 인생에 있어 단 한 번도 웃어본 적 없는 것 같은 사람의 웃음. 서툴게 입꼬리를 올리고 눈꼬리를 내리며 웃지만, 그의 웃음은 울음과 비슷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 (남데브 바우 역을 맡은 남데브 구라브 씨는 실제 운전기사이기도 한 비전문배우라고 한다. 다르 가이 감독은 남데브 아저씨 캐릭터의 모티브가 주인공 남데브 구라브 씨라고 밝혔다. 실제 남데브 구라브 씨는 수다스러운 사람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더욱 이러한 연기가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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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크와 이별을 앞두고 남데브는 오묘한 표정을 짓는다. 이는 슬픔이기도 그리움이기도 애정이기도 하다. 이내 알리크를 붉은 성에 데려다준 (알리크에 대한 사연은 영화로 확인하길 바란다. 정말 잘 만든 영화이니 꼭 보길.) 남데브는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집으로 가는 길, 축제 행진을 하는 주민들이 남데브를 둘러싼다. 행진의 소리는 남데브가 싫어하던 높은 데시벨이지만 속세의 소음과는 다른 행복의 소음이다. 사람들은 즐겁게 웃으며 노래하고 춤춘다. 그리고 남데브는 이러한 소음과 사람들에 섞여 웃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스스로 나섰던 집 문을 열고 들어온 남데브는 가족의 곁으로, 그리고 시끄러운 세상으로 돌아온다.

 

*

 

우리는 소음에 쉽게 노출된다. 그 소음을 듣는 우리는 매번 짜증과 분노로 반응한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어떤 소음에는 사랑이 있다.


내가 시달렸던 층간소음은 기어 다니던 아이가 처음으로 힘을 주어 걷던 소리와 퇴근해 지쳤음에도 두 아이를 놀아주려 노력했던 한 아버지의 소리였고, 부모님의 잔소리는 하나뿐인 딸에 대한 사랑과 걱정이 담긴 소리였다.


누군가가 나를 두드리는 소리. 나를 끊임없이 가만두질 않는 것들. 그 기저에는 애정과 사랑이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너무 시끄러운 세상이다. 그럼에도 웃을 수 있다면, 그 소음에 사랑이 있다면 이 세상을 계속해서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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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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