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는 약속된 사이 [음악]

2023 페퍼톤스 콘서트 <긴 여행의 끝>
글 입력 2024.01.04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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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2월에는 페퍼톤스의 콘서트가 있다. 나에게는 루틴처럼 박혀 있는 일정이다.

 

페퍼톤스는 내가 콘서트에 다니는 유일한 밴드이며, 아트인사이트에도 그들에 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내가 그들의 음악을, 그들이 하는 말을 사랑하는 이유는 그들이 지구가 돌아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된 우주적 모험과 실패마저 빛나는 청춘이라는 단어를 동시에 쓰는 사람들이 전하는 사랑은 무엇보다 광대하다. 페퍼톤스의 음악은 인간 대 인간으로서, 이 지구에 발 딛고 사는 생명체로서 당신과 우리를 사랑한다.

   

공연을 위해 셋리스트를 짜다 보면 콘셉트에 따라 꼭 들어가야 할 곡이 있고 어쩐지 여러 사정으로 이번에도 연주하지 못하는 곡이 있기 마련이다. 페퍼톤스의 2023년 연말 콘서트인 <긴 여행의 끝>은 는 그렇게 미뤄진 곡들을 위한 시간이었다.

 

연주하지 못했던 아티스트와 듣지 못했던 관객의 아쉬움을 한꺼번에 해소시키는 편곡으로 두어 시간을 꽉 채웠다. 대부분 수록곡에 데뷔 초의 곡들도 많은지라 아직 페퍼톤스와 알아가는 단계인 관객에게는 다소 초면일 수 있겠으나, 숨은 매력의 곡들을 이렇게 들어버린 이상 더욱 깊이 빠져드는 것은 시간 문제일 것이다.

 

 

 

 

이번 콘서트의 개인적인 하이라이트를 꼽자면 단연 ‘공원여행’이다.

 

본래는 객원보컬이 부르던 곡으로, 이번 콘서트에서는 신재평과 이장원, 그리고 관객들이 함께 불렀다. 이장원이 행복해질 준비가 되었냐고 묻자 관객들은 신난 목소리로 대답했다. 첫 소절부터 마지막 소절까지 부르는 사람들의 목소리 사이로 신재평의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거봐 너 아직 그런 미소 지을 수 있잖아, 라며 천 개의 목소리가 합창했다.

 

나는 노래를 부르는 내내 울었다. 결핍을 자각하지 못하는 것은 마음의 한 부분을 잃어버린 것일까, 잊어버린 것일까? 내가 기억하지 못해도 아직 거기에 그대로 남아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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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콜은 예비된 시간이다. 사라진 이들이 다시 나타날 것을 믿고 박수를 친다. 빨리 나와요, 손 아파요 등등의 불평을 해도 괜찮다. 그 정도도 이해하지 못할 만큼 서로를 모르는 게 아니니까.

 

애정 섞인 기다림이 치솟다 서서히 잦아들 때에서야 그들은 나타난다. 언제 그랬냐는 듯 환호한다. 노래하며 웃는다.

 

우리는 서로에게 다시 올 것이다. 각자의 삶을 살며 가끔은 잊어버리고 있다가, 날씨가 추워지고 눈이 내리면 굳이 힘든 발걸음을 옮길 것이다. 별 생각 없다가, 기대했다가, 어쩐지 귀찮았다가, 역시 얼굴 보길 잘했다며 웃는다.

 

그래서 나는 당신에게 올해도 고마웠다고, 내년에 다시 보자고 말한다.

 

정말이지 우리는 약속된 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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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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