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엔 세금이 안 붙어 참 다행이야

페퍼톤스가 페퍼톤스할 때
글 입력 2023.02.19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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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은 언제까지 청춘일 수 있을까? 나이가 들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서도 청춘을 노래할 수 있을까? 모든 건 마음 먹기 달렸다지만 어쩐지 청춘이라는 건 세월의 흐름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어딘가에는 늘 얼마의 시간이 지났든 변함없이 청춘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페퍼톤스는 올해로 데뷔 18주년을 맞은 2인조 밴드다.  카이스트 전산학과의 두 동기가 ‘우울증을 위한 뉴테라피 2인조 밴드’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결성한 페퍼톤스는 화려한 학력 탓에 주로 엘리트 밴드로 소개되고는 하지만 인디 씬과 페스티벌을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위치의 밴드이기도 하다. 페퍼톤스 음악의 가장 큰 특징은 역시 한국 가요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사랑’의 비중이 아주 적다는 것이다. 물론 그들의 노래에 사랑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무엇보다 근본적이고 본능적인 즐거움과 사랑을 노래한다. 그저 사람의 감정과 세상의 순간을 다룸에 있어서 가요의 흔한 도식인 연인관계의 사랑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 뿐이다. 그리고 거기에서부터 청춘이 요동친다.

 



 

 

페퍼톤스의 가장 잘 알려진 곡을 꼽자고 한다면 단연 ‘행운을 빌어요’일 것이다. Beginner's luck. 초심자의 행운이라는 이름을 가진 정규 4집의 타이틀곡이기도 하다. 초심자에게 행운이 있는 이유는 이것저것 재지 않고 도전하기 때문일까. 뭐든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시도하니 하늘이 그쪽을 향해 웃어준 것일까. 시작을 응원하는 수많은 노래들 중 ‘행운을 빌어요’가 유독 아름다운 이유는 떠나는 사람을 위해 온 마음 바쳐 기도하는 사람의 시점이기 때문이다. 떠나는 사람이 있다면 그의 등을 바라보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헤어짐은 또 다른 시작이지만 그렇다고 이별이 아닌 것은 아니기에 우리는 누군가의 멀어지는 뒷모습을 바라볼 때 아쉬움을 느낀다. 그렇지만 이제는 떠나야 할 시간이고, 떠나는 사람의 발걸음을 잡을 수는 없으니 남겨진 사람은 그가 뒤돌아보지 않고 달려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럴 때 우리는 눈물을 흘리는 대신 웃으면서 손을 흔든다. 나는 늘 여기서 널 기다리고 있을 테니 부디 그대에게 끝없는 행운이 함께하기를 바라면서. 그래서인지 이 곡은 여행 예능의 BGM으로 많이 쓰인다. 배낭을 메고 새로운 별들의 아래로 향하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카메라가 비출 때 그들에게 행운을 빈다는 노래를 속삭이는 것이다.

 



 

 

정규 2집의 타이틀곡 ‘뉴 히피 제너레이션’과 정규 4집의 수록곡 ‘21세기의 어떤 날’이 페퍼톤스 콘서트의 셋리스트에서 빠지지 않는 것은 서로에게 깊은 기억을 남겨주는 노래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익숙한 밴드와 익숙한 세션과 익숙한 사람들이 검은 콘서트장에 모여 서서 햇살엔 세금이 안 붙어 참 다행이라는 말을 하고, 당일의 날짜를 함께 외치며 우리가 만났던 날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에 감탄한다. 그러면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린 듯 머릿속에 함께 노래하고 웃었던 장면이 각인된다. 함께 웃으면서 서로를 노래하고 지금 이 순간이 분명 좋은 추억이 될 것을 말하지 않아도 직감하는 공간이다. 짧은 노래가 끝나면 이 순간도 역사가 되어버리고 우리의 감정들은 늘 그렇듯 흘러갈 것이라는 가사는 다가올 끝을 예비하지만 그래서 더욱 사랑하게 되었던 때를 기억하게 한다. 그런 날들은 주로 따뜻한 햇살과 구름 한 점 없는 하늘만으로 세상이 넓고 노래가 아름다워 보였던 추상적인 날들이지만, 원래 사랑은 언어로 표현하기 정말 어려운 것이니까. 뉴 히피 제너레이션의 가사에 끝맺음이 없는 이유가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페퍼톤스가 마냥 행복한 음악만을 하는 것은 아니다. 흔히들 청춘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탱탱볼 같다고 하듯 페퍼톤스는 어느 날에는 우주로 갔다가 어느 날에는 황야에서 캠프파이어를 한다. 그리고 그 모든 종족, 모든 공간의 여행들이 모여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페퍼톤스가 팝 락, 인디 락, 일렉트로니카 등 다양한 장르를 다루기로 유명한 이유는 매 앨범의 몇몇 수록곡들이 꼭 그들이 ‘하고 싶은 음악’, ‘하고 싶은 이야기’를 강렬하게 담고 있기 때문이다. EP 의 수록곡 ‘검은 우주’는 사이키델릭 락으로 미아가 된 우주비행사의 혹독한 외로움을, 정규 5집 의 수록곡 ‘풍년’을 통해 그동안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컨트리를, 정규 6집 는 여행의 쓸쓸함이라는 주제의식 하에 각 트랙이 하나의 옴니버스 이야기로 쓰여졌다.

 



 

 

그리고 자그마치 4년이 걸린 정규 7집에서 페퍼톤스는 그동안의 음악과 전혀 다른 결을 선보였다. 팬데믹과 기후위기처럼 현실의 삶에 닥친 거대한 어려움들을 피하지 않고 그들이 주는 슬픔과 절망을 솔직하게 노래한 것이다. 또한 앨범의 구성 역시 각 트랙이 소설의 챕터처럼 기능해 앨범 전체가 한 권의 책을 이루는 것처럼 짜여졌다. 소위 말해 햇살 밴드, 웃음과 행복을 바람처럼 몰고 다니는 밴드가 죽어가는 동물과 사람, 고립과 염세를 논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어울리지 않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책을 읽듯 앨범 전체를 순서대로 듣고 나면 어쩐지 희망이 차오른다. 사실 이 시대에 살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다. 태풍의 눈에 갇혀있는 듯 사방이 몰아치는 폭풍 같고, 길이 열려도 도저히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어서 두려워하기 일쑤다. 그렇게 끝없이 어두운 구석에서 눈을 감고 있다 보면 어쩐지 몸과 정신이 분리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가장 어려울 때에, 도저히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아 이제는 정말 포기해도 괜찮을 것 같은 때에 나를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절망과 스트레스에 잠식된 뇌가 그들을 기억하지 못해도 그들은 나와 했던 오래된 약속을 읊으며 침몰하는 나를 구한다. 어떻게 보면 그 사람들은 과거의 나이기도, 미래의 나이기도 하다. 내가 살아왔던 시간과 그 시간 속에서 사랑했던 당신이 나를 구한다.


페퍼톤스의 초기 음악은 인디 씬에서 신선한 데뷔를 한 밴드답게 다양한 시도와 세션을 채우는 일렉트로닉 사운드, 객원보컬이 주를 이루었다. 이후 중반부에 이르러서는 페퍼톤스 멤버만으로 보컬을 대체함과 동시에 세션의 구성으로 심플하지만 대중적인 사운드를 내밀었고, 후반부부터는 서사적인 스토리에 집중하며 그를 채우기 위한 웅장한 편곡과 틈 없는 사운드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전히 ‘비밀의 밤’, ‘아시안게임’ ‘신도시’, ‘도망자’ 처럼 페퍼톤스만의 색깔을 잃지 않은 곡들도 각 앨범마다 존재한다. 그런 생각을 하며 앨범을 하나하나 듣다 보면 이 밴드가 여태 어떤 고민을 하고 있었는지를 알게 된다. 뉴 테라피 밴드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달고 우울하고 디스토피아적인 음악을 만들어도 되는지, 그렇다면 페퍼톤스의 색깔이란 과연 무엇인지 매번 과거의 자신과 치열하게 경쟁하고 성찰한다는 것이 음악과 앨범의 구성을 통해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렇지만 스스로에 대한 그런 고민들이 더욱 이들의 음악을 청춘답게 만들어 준다. 


그렇기에 어쩌면 마냥 행복한 청춘은 만들어진 허상일지도 모른다. 설렘이나 웃음처럼 낭만 가득한 것들에 유난히 살랑거리거나 잠 못 드는 낮과 밤을 버무리면 모두가 동경하는 청춘이 된다. 마음 한구석을 울렁거리게 하는 단어를 꿈처럼 되새기면서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다. 무엇이 청춘인지 알아버렸다는 것은 이미 나의 청춘이 지나가버렸다는 반증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청춘은 스펙트럼 같은 것이라서 시작하지도 끝이 나지도 않는다. 마음껏 설레고 목 놓아 울면서 치열한 감정의 파도를 타든 고요한 바다에서 속삭이든 여전히 청춘이다. 페퍼톤스의 노래는 그런 모든 순간순간들을 포착한다. 페퍼톤스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면 끝나지 않는, 폭풍 속의 청춘이라는 것이 어쩐지 그렇게 무섭지만은 않을 것 같다.

 

 

[김지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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