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추신: 나는 지금 너를 만나러 갈 준비를 해.

글 입력 2023.12.28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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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음 역시 오랜만이라 그런지 네게 어떤 말로 시작을 해야 할지, 정말 오래도록 생각을 하는 것 같아.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잔뜩 좋은 문장들을 끌어다 네게 보내고 싶어. 아마도 토끼풀이 가득한 봄과 네잎클로버가 가득했던 여름의 사이에 네 생각이 자주 나 글을 종종 쓰곤 했던 것 같은데, 벌써 마음이 하얀 눈으로 번지는 겨울이야. 잘 지냈어? 주소도 없고 작은 우표도 붙이지 않아 어디로 갈지 모르겠지만, 연한 갈색의 종이봉투에 담긴 여러 장의 내 마음들은 연두색 끈으로 날개를 만들어 내게 닿을 거야. 시간은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아주 천천히 갈 것 같아. 세상에 아름다운 풍경들을 잔뜩 담아 네게 갈 테니, 그 시간은 아주 오래 걸려 비로소 네게 추억의 선물로 닿겠지.


간간이 보이는 소식들을 들여다보니 행복한 일들도 많던데, 꽤 고민 있는 얼굴이 한 번씩 보이더라. 요즘 고민 있어? 그냥 편안하게 말해줘. 근데 혹여나 말하고 싶지 않으면 말하지 않아도 돼. 옆에서 말해줄 때까지 기다릴게. 마음이 정리가 되면, 고민이 해결되고 나면 천천히 그때는 아무 일도 아니었다는 듯 웃으며 말해줘. 나는 그럼 너를 담담하고 포근하게 안아줄게. 그때 우리 서로를 안고 세상이 모르게 기쁨의 눈물을 내보이자. 지금은 힘들 수밖에 없을 거야. 너는 늘 생각을 오래 했고 고민도 많은 것 같았어. 그 생각과 고민들은 그 앞에서 멈춰버린 널 잡아먹지. 넌 몸집이 아주 커진 걱정과 고민에 맞서보려 조심스레 발을 들었지만, '혹시나'라는 미래의 네가, 현재의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발목을 잡지. 하지만 '혹시나'라는 미래의 너는 현재의 자신을 지켜줄 수도 너의 길을 가지 못하게 막아설 수도 있어. 

 

참 어렵다 그치, 생각보다 스스로의 마음을 조절하는 게 여간 어려운 게 아니야. "걱정하지 말자 결국에는 다 잘될 거야"라고 스스로 다짐을 해보고 머리를 비워보려 하지만, 그래도 아직 풀리지 않은 고민과 걱정들은 곧게 자란 어린 나무에 빨간색 열매를 맺지, 언제 터져 꽃이 될지 모른 채로. 그래도 결국 꽃이 된다는 게 참 즐겁지 않아? 네가 하고 있는 모든 고민과 걱정은 다 미래와 스스로를 위한 걱정이니까. 그게 자극이 되어 넌 더 열심히 살려고 하는 거잖아. 그런 점이 난 참 좋은 것 같아. 우리 '걱정'말고 '준비'라고 단어를 바꿔보는 건 어떨까. "준비해 보자 결국에는 다 잘 될 거니까" 이렇게 다짐을 하는 거지. 준비는 늘 기대되잖아. 시작하기 전 단계의 그 설렘과 기대로 마음이 가득하게 부풀어, 금방이라도 넓고 높은 언덕을 한참 뛰어다닐 수 있을 것처럼 눈이 반짝이잖아. 보는 사람이 넘어질까 봐 아슬아슬한 뜀일지라도 너는 즐겁잖아, 너의 동산을 한없이 뛰어다닐 수 있으니. 동산의 가장 높은 곳에 올라서서 탁 트인 지평선을 끝을 바라봐. 사실 너의 미래라 그 끝에 뭐가 있을진 나도 모르겠지만, 그냥 너의 기분을 낫게 해줄 것만 같아서. 너는 탁 트이고 넓은 자연을 좋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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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내 고민은 여전히 꿈에 있어, 결국 나는 어떤 사람이 될지 몰라서.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 난. 어릴 적부터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았어. 내가 어릴 적이었을 때 기억나는 첫 번째 장래희망은 잘 그리지도 못하는 그림이지만 무작정 엄마의 꿈을 따라 화가라고 적었던 기억이나. 조금 뜬금없지. 그 이후에는 친구들과 같이 가정 시간에 만든 주먹밥이 맛있다는 소리를 듣고 요리사를 꿈꾸기도 했었지. 그러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쯤 방송을 접하게 되고 엔지니어가 되고 싶었어. 그렇게 중학교 때 진지하게 방송국 엔지니어를 꿈꿨는데, 그때 누군가 방송국 엔지니어는 보통 나이가 좀 있는 남자분들이 많이 된다고 했는데 그 답변을 듣고 약간 포기했었던 것 같아. 지금 생각해 보면 '포기하지 말 걸'이라는 생각도 해. 다르게 생각하면 많이 된다고 했던 건데, 그럼 내가 적은 확률을 뚫고서 방송국 엔지니어가 돼볼걸. 그렇게 방송국 엔지니어에서 현실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다 영상편집자가 되기로 해. 하지만 그 주위에는 작은 꿈들도 피어있었어. 어릴 적부터 사진을 찍고 색보정하는 것을 좋아해서 사진작가가 되고 싶기도, 말하기를 좋아해서 말로 하는 직업이 되고 싶었던 적도, 좋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PD도 되고 싶었지. 이건 진짜 꿈이었어. 이상적인 내가 하고 싶은 꿈. 근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현실적인 꿈을 만들어갔지. 물론 어느 정도 흥미도 있었어.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대입해가며, 그렇게 고등학교 3학년 때 마지막으로 자소서에 적은 내 꿈은 컬러리스트였어. 영상 편집보다는 역시 영상의 색을 만들어 가는 게 좀 더 내겐 재밌는 세상이었거든. 

 

고등학교 1학년 때였나, 한번은 하늘을 원망한 적이 있어. 신은 모두에게 잘하는 것을 한 가지씩 준다고 하잖아. 근데 난 정말 하나도 주시지 않은 것 같아서 터져가는 눈물을 꾹꾹 참아가며 원망했었어. 나는 그림도 못 그리고 공부를 특출나게 잘하는 것도 아니고 손재주가 좋은 편도 아니고 뛰어난 피지컬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 그냥 너무나도 지극히 평범하게도 잘하는 게 없어서 나는 왜 잘하는 게 아무것도 없지 생각했었어. 그땐 잘하는 게 없는 게 가장 큰 고민이었는데 이제 그 고민은 해결됐어. 내가 원망했던 하늘과 신은 그냥 허상이었던 거야. 신에게서 답을 찾을 게 아니라 스스로에게서 답을 찾아야 했던 거였지. 지금은 그래도 자신 있게 잘한다고 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았어. 또 신기한 게 결국 스스로의 자존감을 올려주는 건 아무도 아닌 나 자신인 것 같더라. 신과 하늘을 원망한다는 건 결국 나를 원망하는 행동이었고 스스로를 낮추는 행동이었거든. 그러니까 혹시 네게 고민이 있다면 스스로를 잘 들여다보고 심심한 위로를 해봐. 그게 가장 큰 위로가 될 테니.


이러한 불안정하고 온전하지 않은 현재들이 네 마음속에 큰 구멍을 낼지도 몰라, 그럼 공허해진 마음에 가끔은 알 수 없는 텅 비어버린 감정들이 느껴지겠지. 근데 또 다르게 생각해 보면 그렇게 복잡한 감정과 고민들이 만들어 낸 구멍은 투명해서 무엇이라도 담을 수 있어. 마치 하얀 종이에 큰 주머니를 그리고 중간을 오려내면 거기엔 무엇이든 담을 수 있잖아. 그 종이를 하늘에 대면 그 주머니엔 하늘이 담기고 종이에 꽃밭을 대면 주머니엔 꽃들이 가득하겠지. 그러니까 마음에 구멍이 났다면 흘러내리는 마음에 네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씩 비춰봐. 마음에 온전히 담기도록, 흘러내렸던 마음이 멎어 다시 그 마음을 가득 채울 수 있게. 혼자서 하는 게 어렵다면 처음엔 내가 같이 도와줄게. 


난 항상 네가 하는 모든 일이 잘 되길 바라, 나의 행운까지 다 네게 빌어줄게. 그러니 항상 맑고 바르게, 세상이 너무 현실적이라 힘들지라도 넌 동화처럼 이상을 꿈꾸며 현실을 살아. 잠을 잘 못 자는 것 같았는데 요새는 잘 자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나쁜 꿈을 꾸지 않는 거 보니, 내가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지? 뜻대로 풀리기만 하면 좋은 삶이겠다만, 인생은 역시 알 수 없기에 매일을 새롭게 살아가는 거 아닐까? 그래도 네가 너무 걱정만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네게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진짜로 넌 잘 살아가고 있거든. 그래도 네 속은 내가 모르니 더 마음을 내세워 이야기하진 않을게. 늘 행복했으면 좋겠어 진심으로. 고민하던 일들도 널 걱정 시키고 있는 모든 일도 모두 잘 해결되어 네가 하루라도 아무 걱정 없이 아늑하고 편안하게 아무 생각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날이 오면 우리 멀리 떠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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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조용하고 드넓고 시원하게 푸른빛이 맴도는, 금빛 햇살이 쏟아지는 자연으로 가는 거야. 그렇게 한참을 걷다 네가 좋아하는 푸른 바다도 함께 보고, 따뜻하게 종이 향이 가득 나는 봉투에 좋아하는 새콤달콤한 과일을 한가득 담아 가자. 그리고 눈에 무지갯빛을 담은 강아지도 함께 데려와 매일을 다정한 하루들로 채우는 거야. 어때, 다 네가 좋아하는 것들이잖아. 네가 좋아하는 것들로 세상을 가득 채우는 상상을 해. 그럼 삶을 살아가는데 조금의 행복이 자라나지 않을까? 내 편지를 읽으면서 이 세상을 상상할 네가 잠깐의 미소라도 머금었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그때 비로소 나의 미소도 함께 피어날 테니.

 

쓰다 보니 어느새 밤이 너무 깊어졌어. 이제 우리 자자. 잠깐 별이 되어 좋은 꿈을 꾸고 다시 내일로 가자. 내일은 또 어떤 일들이 우릴 기다릴까? 아마도 그 일은 웃음 가득 신나고 행운이 가득한 하루 일 거야. 우리가 사는 세상이, 처한 상황이 조금 건조할지라도 세상의 작은 행복들을 물방울로 만들어 가득 모아 다시 숨 쉴 수 있게 촉촉하게 만들어주자. 그럼 어느 순간 너도 모르는 사이에, 작은 어린잎을 가진 새싹이 자라나서 또 그 잎의 끝엔 이슬이 맺혀있을 거야. 난 항상 늘 네 곁에 있을게. 

 

푹 잘 자고 오늘도 기분 좋은 꿈 꾸고. 우리 곧 보자. 편지를 끝내려니 아쉽네. 조만간 또 생각이 나면, 이 편지가 네게 도착해 네게 답신이 온다면, 그때 네 답신을 읽고 그땐 조금 더 빨리 도착할 수 있게 네잎클로버를 든 토끼 모양의 우표를 붙여 네게 보낼게. 나인걸 네가 한 번에 알아볼 수 있게. 그럼 이제 마무리할게, 그때까지 잘 지내.

 

2023 / 12 / 27 (수) 오전 01:00 - 내가 네게 -

 

추신: 나는 지금 너를 만나러 갈 준비를 해. 그럼 곧 보자, 안녕.

 

 

[황수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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