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맥스 달튼 영화의 순간들 63 - 경청으로 탄생한 고유한 향수

글 입력 2023.12.25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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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사람들은 작가가 끊임없이 상상력을 발휘해 온갖 에피소드와 사건들을 머릿속에 떠올려 스토리를 창조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사실 정반대죠. 주변 사람들이 작가에게 캐릭터와 사건을 제공한답니다. 작가는 그저 잘 지켜보고 귀 기울여 들으면서 스토리의 소재를 주변인들의 삶 속에서 찾아내는 거죠. 작가는 타인의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동시에 타인의 이야기를 듣죠.” - 맥스 달튼

 

그렇다. 신이 아니고서야 사람이 어떻게 끊임없는 영감으로 새로운 것을 창조하겠는가. 일상을 경청할 때 보이는 틈새를 작가만의 색깔로 재해석하는 것 아니겠는가. 이번 전시를 통해 맥스 달튼은 진정 경청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에 대해 알고 싶어 작가 소개 글을 눈 빠지게 읽는다. 그는 남미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출신으로 스페인어, 독일어, 영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까지 가능하다고 한다. 3살부터 그림 그리기 시작하여 그래픽 아트를 대부분 독학하였고 그림뿐 아니라 기타, 피아노, 더블베이스까지 연주한다고 하니 입이 쩍 벌어진다. 일러스트레이터이자 화가이며 뮤지션이나 작가로 활동하는 그는 옛날 영화, 음악, 책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작품을 만든다고 한다.

 

그에게 영감을 준 작품과 받은 영감을 표현해낸 그의 작품은 보는 이로 하여금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제 1막: <영화의 순간들>


 

we belong to nobody.jpg

 

 

“우린 서로를 소유하지 않아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홀리가 폴에게 한 말이다.

 

영화에서 이 대사를 들었을 때 나는 누가 내 말을 하네 싶었다. “난 내가 누군지 몰라요. 난 이 고양이처럼 이름도 없고 누구의 소유도 아니에요.”라며 누군가를 사랑할 수 없다고 밀어내는 홀리가 마치 유리에 비친 내 모습 같았기 때문이다.

 

이 장면을 맥스 달튼을 통해 다시 접하다니.

 

 

아멜리에.jpg

 

 

살짝 촉촉해진 눈가를 훔치며 들어가니 <아멜리에>의 장면이 보인다. 오드리 헵번에 이어 내가 좋아하는 여배우 오두리 토투까지. 그림과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것이 예의인 줄 알면서도 그림 안으로 빨려 들어갈 듯 가까이에서 본다.

 

‘꼭꼭 숨어라 아멜리 보일라!’ 그녀를 찾느라 눈알이 바쁘다. 우측 하단에 보이는 그녀가 너무나 반갑다. 아멜리 덕분에 자신의 보물 상자를 찾아 행복해하는 브레토도를 보고 그녀의 심장이 두근거렸던 것처럼. 이후로 다른 이에게 행복을 전해주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던 그녀처럼 내 심장도 두근거린다.

 

“아멜리는 갑자기 삶의 완벽한 조화를 느꼈다. 모든 게 완벽한 듯했다. 따스한 햇살, 향긋한 공기, 도시의 소음들조차 그녀는 숨을 깊게 들이 마셨다. 삶이 단순하고 명확해 보였다. 타인에 대한 사랑과 인류애가 물밀듯이 몰려왔다.” 나에게도 뭔가 몰려온다.

 

 

이웃집 하야오.jpg

 

 

풉, 위 그림을 발견하고 웃음이 나온다. <이웃집 토토로>의 사츠키 자리에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를 그려 넣았다. 토토로는 누구와도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옆 사람을 편안하게 그리고 돋보이게 하는 존재인 것 같다. 나도 그런 존재가 되어 옆을 빛내주고 싶다.

 

 

오징어 게임1.jpg

 

 

안으로 갈수록 반가운 그림이 보인다. <오징어 게임>도 있다니.

 

맥스 달튼은 <오징어 게임>을 보자마자 마우리츠 에셔의 <상대성>이 드라마 연출 구성에 영감을 줬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고 한다. 그의 스타일로 다시 그린 <오징어 게임> 역시 어딘가 공포스럽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노랫소리가 울리는 것 같다.

 

 

모스부호.jpg

 

기생충 집.jpg

 

 

작가는 <기생충>의 모스 부호까지 놓치지 않았다. 심장이 쫄깃하다. “너 절대 실패하지 않는 계획이 뭔 줄 아니? 무계획이야 무계획. ‘노 플랜.’ 왜냐, 계획을 하면 반드시, 계획대로 안 되거든 인생이.”

 

그림 한 장에 영화가 보인다. 자세히 보면 쮸니, 베리, 푸푸 강아지 세 마리도 있다. 나송이 방에는 ‘나송아 사랑해’도 붙어있다. 디테일이 예술이다. <기생충>을 얼마나 자세히 여러 번 봤으면 이렇게 생생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이외에도 <살인의 추억>, <괴물>, <설국열차>, <옥자>, <마더>를 볼 수 있다. <기생충>이 작가가 처음으로 본 한국 영화라고 하던데 이때부터 봉준호 감독에게 반했구나 싶다. 같은 한국인이란 사실에 괜스레 어깨가 으쓱거린다.

 

 

살인의 추억.jpg

 

괴물.jpg

 

설국열차.jpg


옥자.jpg

 

마더.jpg

 

 

솟은 어깨를 내리고 어두운 통로를 지나 붉은 방으로 입장한다. 이곳에서는 작가의 아날로그적인 취향을 볼 수 있다. 음악 또한 영감의 원천으로 여기는 작가는 “앨범 타이틀을 접했을 때 드는 직관적인 생각을 바탕으로 표현해 그려 뮤지션을 향한 애정과 존경”을 보인다.

 

작업하는 동안 음악에 따라 작품이 달라지기도 한다는 그의 말을 따라 이참에 나도 음악에 좀더 관심을 가져봐야겠다 싶다. 전시 볼 때 작품별 OST 듣는 것을 추천한다. 지니뮤직 QR 코드에도 집중할 걸 뒤늦게 알았다.

 

 

LPs.jpg

 

 

 

제 2막: 웨스 앤더슨 컬렉션


 

웨스 앤더슨이 누구더라. 봉준호 감독처럼 유명한 사람인가 보다 하며 대충 보다가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감독이란 것을 알고 눈이 커졌다. 내용은 어렴풋해도 영상미를 똑똑히 기억한다. 이 감독의 작품이었구나!

 

 

프랜치 디스패치.jpg

 

그랜드 부다페스트.jpg

 

 

웨스 앤더슨과 맥스 달튼의 작품 세계에는 묘한 공통점이 있다고 한다. 동화스러움과 익살스러움이 공존하는 느낌을 말하는 것 아닐까.

 

국내에서 맥스 달튼은 ‘웨스 앤더슨의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수식어를 얻을 정도로 닮아 있다고 적혀있듯 과연 둘은 대놓고 닮아 있었다. 그림을 보면 영화 <프렌치 디스패치>의 색감과 구도가 연상되고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영화 속 인물들의 표정까지 똑 닮았다.

 

독특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친하게 지냈던 옆집 친구가 나타나 나에게 솜사탕을 주는 느낌이다.

 

 

 

제 3막: 맥스의 순간들


 

자리에 앉아 둘러보니 그림책스러운 작품들이 곳곳에 걸려있다. <외톨이 공중전화기>는 맥스 달튼의 첫 그림책으로 ‘주목할 만한 어린이 도서’로 선정되고 연극으로도 제작되었다고 한다.

 

안내 문구를 따라 순서대로 천천히 글을 읽는다. 잊혀 가는 공중전화기 입장에서는 서운할 수 있겠구나. 스마트폰에 밀려 외로울 수 있겠구나. 이 외에도 <외톨이 타자기>와 <소리지르는 요리사>도 <외톨이 공중전화기> 못지않게 신선하고 따스하다.

 


외톨이 공중전화기3.jpg

 

 

<화가의 작업실 시리즈>는 미술사의 유명한 화가들의 작업실 풍경을 볼 수 있다. 클로드 모네, 파블로 피카소, 프랜시스 베이컨, 앤디 워홀, 프리다 칼로, 잭슨 폴록, 장 미쉘 바스키아 등. 거장들의 작업실을 높이기 위해 본인의 작업실은 포함하지 않은 것 같다.

 

이 섹션을 통해 맥스 달튼의 말을 다시금 생각한다. 작가가 항상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은 주변 사람들을 통해 찾아낸 것임을. 거장들의 작품이 씨앗이 되어서 많은 예술가들이 탄생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맥스 달튼은 그들에게 존경과 감사를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나의 글도 누군가에게 씨앗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단 한 사람이라도 내 말과 글에서 영감을 얻거나 생기를 얻을 수 있다면 이보다 더 기쁜 일이 있을까.

 

63빌딩 너머 한강을 바라보며 소원을 빌어본다.

 

 

 

김윤 에디터 명함.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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