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삼재(三災)

운명에 저항하다
글 입력 2023.12.24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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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택배가 와있길래 가져와서 뜯어보니 신년 달력이었다. 아, 벌써 연말이구나. 연초가 곧이구나. 앞만 보고 달리느라 지나간 시간을 돌이켜 볼 틈도 없었는데, 벌써 2023년의 마지막이다. 온 사방이 캐롤로 가득찼다. 빨간색과 초록색의 장식이 현란하다. 눈도 하얗게 내려 쌓이기도 했다. 한파특보에 시리는 발가락을 오므리며 따뜻한 곳으로 피신하기도 했다. 연말다운 연말이다.

 

나는 연말이 좋다. 지쳐버린 한 해의 나를 다독이며, 그런 우리가 서로를 다독이며, 온 세상이 서로를 감싸 안아 다독이는 시간이다. 밖은 너무 춥고 쓸쓸하지만 안은 평소보다 더 따뜻할 수 있다. 그런 시간이라 나는 연말이 좋다. 그런 연말의 분위기가 절정에 이르는 크리스마스가 곧이다. 몇 가지 캐롤을 머리로 떠올리며 올해를 돌이켜보았다. 올해의 감상평은.. 최악!

 

올해는 정말 아무 것도 되는 게 없었다. 작년은 분명 노력한 만큼 보상이 따라오는 것 같았는데, 올해는 노력을 더욱 해도 아무 것도 이루어낸 게 없었다. 작년엔 찬란하게 빛나던 내가 올해는 어두운 것 중에서도 가장 어두운 것이 된 것 같았다. 몸을 혹사시키면서 노력한 것에 비해 얻어낸 결과물, 눈에 보이는 결과물은 터무니없이 초라했다. 노력이 중요하지! 그 과정에서 얻은 게 있을 거 아냐~ 그래, 맞아. 노력을 정말 많이 했어. 노력 정말 중요해. 그 과정에서 나름 깨달음도 많이 얻었어. 근데 내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난 실질적으로 얻어낸 결과가 필요해. 아깝게 이루어내지 못한 것들, 긴장해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 게 나는 너무도 속상해. 속상해.. 너무 속상해!

 

답답한 마음에 평소엔 찾지도 않던 운세를 찾아봤다. 그 어떤 종교도 믿지 않고, 운세나 타로도 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고 생각한 나이다. 하지만 올해의 시련은 그런 나조차도, 이성적으론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작용한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을 품게 만들었다. 찾아보니, 삼재란다. 삼재? 뭐?

 

삼재(三災), 9년마다 찾아오는 연속된 삼 년동안의 재앙. 일단 미신을 믿지 않기에 코웃음을 쳤다. 또한 작년부터 내년까지가 나의 삼재라는데, 작년의 나는 일이 잘 풀렸고 내년의 나는 더욱 열심히 살 것이기에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올해 지겹도록 일이 안 풀린 게 이런 믿거나 말거나 한 것이 적용된 거라면, 약간의 위안이 될 것만도 같았다.

 

왠지 삼재라 하니 찜찜해졌다. 그래서 더 찾아보았다. 내년은 나의 마지막 삼재인데, 흉운이 점차 빠져나갈 시기란다. 그리고 복삼재는 삼재 중에서도 대운이 들어올 시기라 하는데 그게 언젠지도 모르겠다. 일단 내게 잘 들어오는 이야기도 아닐 뿐더러 안 좋은 이야기니 기분만 더 나빠지는 것 같았다. 그래도 영 신경 쓰이는 마음이다. 모든 게 안 풀렸던 올해의 것은 올해 남겨두고 가야 내년엔 잘 풀릴 것 같달까. 나도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문득 며칠 전 기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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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함박눈이 펑펑 내렸을 때다. 너무 춥고 손을 주머니에서 빼기도 싫었지만 눈사람을 만들고 싶어서 자그마한 눈사람을 만들었다. 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그걸 만들고 표지판에 세워놔 요리조리 돌려보며 좋아하고 있었는데, 그게 그만 미끄러져서 떨어지고 말았다. "아!" 너무 아쉬웠다. 그 순간,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잔재를 완전히 치워버렸다. "왜!" 외마디 비명을 지른 내게 내 사랑하는 사람은 "조금이라도 남아있으면 더 찜찜하니까 완전히 치워버리자"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우리가 입김을 불어가며 만든 눈사람이 엉성한 모양새로 남아버리면 그게 더 마음이 아플 것 같았다. 완전히 치워버리니 오히려 새롭게 태어나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가볍게 돌아갔다.

 

기분을 나쁘게 하는 것은 괜히 찜찜하게 이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 자리에서 치워버리면 되는 것을 왜 나는 몰랐을까. 조금이라도 그걸 가지고 뭘 해보겠다고 끙끙거리고, 결국 안 되면 속상해하는 것이 되려 바보같은 것임을 눈사람을 보고 깨닫다니.

 

삼재라고 하는 것도 기분이 나쁘기만 한데 그걸 왜 계속 생각하고 있었을까? 삼재면 어떠랴. 내 삶은 내년에도 계속 될 거고, 내후년에도 계속 될 거고, 앞으로도 계속 될 건데, 그 재앙 때문에 내 삶이 무너져야 할까? 만약 이것이 운명이라면, 나는 운명을 거스르기로 마음 먹었다. 운명, 내 노력으로 이겨낼 수 있다. 나는 저항할 것이다.

 

2024년이 오길 기다린다. 더욱 넓은 품으로 팔 벌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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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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