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내 마음 놓을 수 있는 곳. 나의 딜쿠샤.

가(家)요, 나의 집으로 가요. 내 마음 쉴 수 있는 곳으로 가요.
글 입력 2023.12.19 0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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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고 싶어. 딜쿠샤 너에게로.”

 

미국의 한 바닷가 마을에 사는 노인, 브루스 테일러가 마지막 나날들을 보내며 오래전 한국에 두고 온 그리운 친구, 딜쿠샤를 찾는다. 인왕산 언덕 위 은행나무 옆에서 바람을 맞으며 딜쿠샤도 오랫동안 브루스를 기다리고 있다. 헤어진 지 70년… 그들에겐 어떤 사연이 있을까?

     

시놉시스를 보면 주인공 브루스 테일러가 애타게 누군가 그리워하는 내용임을 알 수 있다.

 

포스터를 보고 눈치챘겠지만, 딜쿠샤는 가옥이다. 일제강점기, 대한독립선언서를 입수해 3.1운동을 전 세계에 알린 미국 기자 앨버트 테일러가 한국에 지은 집이다.

 

뮤지컬 <딜쿠샤>에서는 과거 이 집에 살았던 앨버트 테일러의 아들 ‘브루스 테일러’와 현재 이 집에 사는 가상 인물 ‘금자’가 편지를 주고받으며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를 나눈다. 그 이야기 안에는 딜쿠샤가 지어졌던 일제 강점기부터 시작해, 한국전쟁 그리고 지금 사회의 모습까지 담겨있다.

 

내가 딜쿠샤를 감상하며 눈물을 흘렸던 이유는 극의 음악이, 서사가 절절해서 뿐만은 아니었다.

 

스토리에 온전히 녹아들었고 공감하였으며 나의 삶에 존재하는 딜쿠샤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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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두 달 동안 나는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대학교 입학을 위해 상경한 이래로 4번이나 집을 옮겨 다녔고, 이제 막 사회 초년생이 되어 다섯 번째 집을 찾아 헤매는 중이다.

 

퇴근 후 그리고 주말에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여러 부동산중개소를 통해 수많은 집을 보러 다녔지만, 마음에 쏙 드는 집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 집은 햇빛이 잘 들지 않고, 여기는 크기가 너무 작고, 아까 그곳은 치안이 좋지 않을 것 같고.

 

여러 이유 때문에 이사 갈 집을 결정하지 못했고, 다음 세입자를 위해 서둘러 짐을 비워야 하는 나는 매일이 너무나도 조급했다.

 

그러다 우연히 이 시기에 딜쿠샤를 만났다. 그리고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내 마음에 드는 새로운 집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집에 참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고, 여기를 떠나기 싫은 것임을 말이다.

 

과거에 짧으면 3개월 길면 1년 주기로 이사를 다녔던 나는 지금의 집에서 만 3년을 살고 있다. 햇빛도 잘 들고, 주위도 깨끗하고, 공간분리도 잘 되어있어 1인 거주로 최적화된 곳이다. 그런데 3년이란 시간 동안 단순히 거주지로만 마음에 들었던 것은 아니었나 보다.

 

이곳은 내가 시끌벅적한 바깥에서 조금은 지쳤을 때, 현관문을 여는 순간 안정감과 아늑함을 주었다. 눈에 물기를 그렁그렁 매달고 부랴부랴 신발을 벗는 순간, 쏟아지는 방울들과 우렁찬 소리를 집은 꼬옥 숨겨주었으며, 냉장고에 붙은 자석 하나하나부터 직접 조립한 책상까지 내 손길과 애정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친구들과 마음껏 떠들며 술잔을 맞대던 설레는 순간들이 스며있고, 블라인드를 열면 주말 아침의 사랑스러운 햇살이 기분 좋은 하루를 만들어주었다. 스탠드 조명 하나를 켜고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비밀들을 종이에 성급히 써 내려가기도 했다. 3년 동안 농도 짙은 추억들이 응축되어 있는 이곳을, 나는 떠나기 싫은 것이었다.

 

그렇기에 집을 떠나서 집에 있지만 집을 그리워하는 브루스를, 외관은 변해가지만 자신을 만든 모든 추억이 담겨 있는 집에 남고 싶은 금자를 더욱더 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었다.

 

집은, 단순히 잠을 자고 밥을 먹는 곳이 아니다.

내 몸이 편히 쉬고,

내 맘이 편히 쉬고,

내가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곳이다.

 

나의 딜쿠샤를 떠올리며 극을 감상하길 매우 추천한다.

 

 

[박가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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