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를 수호하는 것의 무게와 노고 [영화]

글 입력 2023.12.17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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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잠>은 어느 날 남편에게 수면 중 이상 행동이 발생한 이후, 이에 심각성을 느낀 신혼부부가 해결책을 찾기 위해 분투하는 과정을 골자로 하는 미스터리 스릴러물이다. 전반적인 스토리는 이렇지만, 영화는 이를 크게 3장으로 구획해 각 장마다 시선을 달리해가면서 공포의 대상을 전복시키기도 하고, 병치시키기도 한다.

 

이를테면 첫 장은 남편 ‘현수(이선균)’가 잠결에 “누가 들어왔어”라고 언급한 다음날부터 황당무계한 몽유병 증상을 보이며 단란한 부부의 일상에 서서히 균열이 일게 되는 과정이 주요히 다뤄진다.

 

한편 2장에서는 아내 ‘수진(정유미)’이 출산을 하게 되고, 현수로부터 딸을 지키기 위해 집착하다 신경증이 극심해지고, 심지어는 현수의 귀접을 의심하게 되며 광기로 치닫는다. 종반 3막은 정신병원에서 퇴원한 수진이 현수에게 퇴마를 시도하고, 현수가 이에 부응한 반응을 보임으로써 안심한 수진이 현수의 품에서 잠드는 것을 엔딩 쇼트로 처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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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영화 <잠>은 익숙한 소재를 신선하게 엮어내어 현대 사회의 불안과 강박이 과연 어느 깊이까지 침투해 있는지를 다각도에서 조망하는데, 그 기반에는 가족주의와 배타주의가 녹아들어 있다.

 

특히 이는 극중 아내인 수진을 매개체 삼아 가시화된다. 예컨대 그들의 가훈에 새겨져 있는 문구 “둘이 함께라면 극복 못 할 문제는 없다”가 그렇다. 수진은 현수가 배우를 포기하고 공인중개사 시험을 준비하려 할 때에도, 수면 중 통제력을 잃는 스스로가 두려워 집 밖에서 대안을 모색할 때에도 결속력이 제일 중요함을 주지시킨다. 극중 수진이 자신의 엄마와 대화하는 시퀀스에서 짤막한 언급을 통해 모종의 이유로 인한 아버지의 부재를 추측할 있는데, 아마 수진의 이러한 욕망은 사이가 좋지 않은 부모를 보고 성장해오며 형성된 것으로 짐작된다.

 

더불어 현수와 함께 방문한 병원에서 카메라는 수진의 시점 쇼트로 “나의 행복은 나의 가족입니다”라는 문구를 노골적으로 포착하는데, 이 역시도 그녀가 천착해 있는바를 가늠하게 한다.

 

한편, 수진은 가족에 대한 결속 욕구가 강한 만큼 외부에 대한 배타심이 어느 정도는 있는 인물이다. 이는 수진이라는 인물에게 유독 돌출되는 성격이라기보다는 현대사회에 산재해 있는 미지의 공포, 인간관계의 삭막함으로 인한 보편적이고 반사적인 반응이라 할 수 있다. 이때 <잠>은 주로 창문, 방문, 현관문과 같은 ‘문’을 활용해 이를 ‘말하기’가 아닌 ‘보여주기’의 방식으로 표현한다.

 

이를테면 영화의 극 초반에는 출처를 알 수 없는 소음에 지레 겁을 먹은 수진이 이내 열린 창문으로 인한 것임을 깨닫고 문을 닫는 시퀀스가 있는데, 이는 이후 그녀가 연 현관문에 아래층 여성이 머리를 부딪혀 튕기는 것과 유사한 이미지를 형성한다. 의도한 것은 아닐 테지만 이러한 이미지들은 외부의 것들이 집으로부터 배척되는 듯한 인상을 남긴다. 아마도 수진은 이런 방식으로 통제하면서 안정감을 느꼈던 인물인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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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가장 친밀하고, 의존할 수 있었던 현수가 단숨에 낯선, 공포의 대상으로 변모하면서 수진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극한의 두려움을 호소하고 점차 광기로 치닫게 된다. 극중 현수를 안 방에 두고 아이와 함께 욕실에서 잠을 청하던 수진이 현수가 소변을 누려 욕실 문을 강제로 개방하려 하자 공포감을 표출하는데, 이는 그녀가 극 초반에서 느꼈던 감정과 다를 바 없다. 즉 그녀의 배타주의와 가족주의가 한 대상에게서 발현됨으로써 수진의 신경증이 배가되는 것이다. 한편 수진이 남편에게 귀접한 아래층 할아버지의 딸을 납치해 그를 협박하는 시퀀스 즉 자신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타인의 가족을 위협하는 상황 역시 이를 예증한다.

 

<잠>은 조금 범박하게 정의하면 현수의 ‘잠’에서 시작해 수진의 ‘잠’으로 끝맺는 영화라고도 할 수 있다. 이는 다시 말하면 현수의 ‘잠’으로 인한 공포에 시달려 온 수진이 ‘잠’을 편히 잘 수 있기까지의 과정을 따라가는 영화로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잠’은 부부의 입장을 나름 고루 비추기는 하지만, 사실 ‘수진’에 더 무게중심이 실려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때문에 현수의 이상 증상이 정말 의사의 진단대로 흔한 몽유병이었던 것인지, 아니면 수진의 주장대로 귀접된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렇게 힘들면 이혼이라는 손쉬운 선택도 있다는 엄마, 이웃집 여자의 말에도 수진은 ‘현수’를 포기하지 않고, 필사를 다해 외부인의 망령을 소탕하고 "이제 갔어"라는 현수의 말에 그의 품에서 잠든다. 이는 영화를 나름의 해피엔딩으로 보게끔 할 구석을 남기지만, 땀에 절어 퍼석해진 채로 잠든 얼굴의 클로즈업은 역으로 현대사회에서 ‘우리’를 수호하는 것이 얼마나 녹록지 않은 것인지를 절감하게끔 한다.

 

 

[김민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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