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1130 미련 과다 수집형 인간

글 입력 2023.11.30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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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련 과다 수집형 인간


 

신년맞이로 옷이나 짐을 정리한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면 정말 먼 나라의 일 같다. 아직 한 해의 마무리를 논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는 시기이지만, 나는 무언가를 마무리지을 준비를 남들보다 조금 일찍 시작해야 하는 편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매사에 미련스러워서 그렇다. 천성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종이 접기로 만든 개구리 인형 하나를 버리지 못했고 지금도 그런 수집 습성은 여전하다. 학생 때 쓰던 연습장 겸 낙서장을 내내 정리하지 못하다가 올해 초에 이사를 하면서 겨우 버렸다. 그마저도 추억이 깃든 부분들은 종이로 오려 모아두거나 사진을 찍어두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정말 징글맞은 구석이다.

 

여전히 서랍 어딘가에는 10년 전의 편지, 자질구레한 장난감 같은 잡화들을 처박아 놓았고, 한때는 나의 유년기를 책임졌으나 이제는 잘 펼쳐보지도 않는 판타지 소설 시리즈를 결국 이고 지고 집을 옮겼다. 이렇게 잡다한 물건들로 터져나갈 것 같은 책상과 책장만 봐도, 뭐든 끌어안고 살고 싶은 사람이라는 게 티가 난다. 해를 거듭해도 도통 무언가를 버리는 일에는 능해지기 어렵다. 저렇게 쌓아둔 것들을 평생 몇 번이나 들춰보겠나 싶다가도, '버린다'는 행위는 어쩐지 무시무시하게 느껴진다. 문득 강박적일 만큼 무언가가 그리워지는 일은 살면서 손에 꼽을 정도지만, 그 가끔의 헛헛함 때문에 나는 하루를 통째로 날려버리기도 하니까.

 

그래서 나에게 있어 무언가를 버린다는 건 보통 엄청난 결단을 요하는 일이다. 대부분은 보내줄 준비가 되지 않은 것들을 눈 질끈 감고 잘라내야 했다. 그렇게 잘라낸 자리에는 기억이 뚝뚝 흐르곤 했고. 이 미련스런 성격 덕분에, 충분히 놓아줄 때가 되었다고 생각해서 감흥없이 무언가를 말소시킨 기억이 거의 없다. 그렇게 화려함 쪽 빠진 구질구질한 맥시멀리스트의 생활을 하게 된 건, 아마 내가 모든 종류의 끝과 마무리에 유독 취약하기 때문일 것이다.

 

드라마보단 영화를 좋아한다. 두 시간 정도 몰입했다가 끝나는 이야기가, 십수 시간에서 수십 시간 동안 함께한 이야기보다는 보내주기 쉬우니까(항상 그런 건 아니지만). 좋아하는 장편 소설의 전개가 점점 결말부를 향해가고 있다는 걸 느끼면, 아직 종장에 들어서지도 않았는데 완결 이후의 허전함을 진작부터 느낀다. 다시 없을 소중한 사람들의 틈에서, 다시 없을 소중한 순간 한가운데 있다는 걸 자각하면 동시에 이것들이 모두 바래게 될 언젠가를 생각한다. 항상 이런 식이다. 못 견뎌할 걸 알고 있으니 연습하듯 먼저 마지막을 가정하고 미리 두려워한다.

 

그래도 최근에는 조금 달라지긴 했다. 희미해지는 것들을 붙드는 게 꼭 억지스러운 일은 아니란 것도, 그렇게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스러지게 될 것들로 세상이 채워져있단 사실도, 전보다는 비교적 덤덤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막상 보내주어야 하는 순간이 오면, 항상 예상했던 것만큼의 상실감이 닥쳐오는 건 아니었다. 시간을 블랙홀처럼 잡아먹는 헛헛함을 마주한다고 해도, 전과는 달리 이 감정이 곧 수습될 것이라는 사실 정도는 안다. 어찌됐든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고, 나는 내 불시의 예민함이 일상적인 둔감함에 녹아들어가는 순간을 꽤 여러 차례 목격해왔다.

 

하지만 그건 그것대로 상처가 되는 구석이 있었다. 아직 마음을 붙이고 있는 것들을 떼어내는 고통이 어떤 것인지는 잘 안다. 하지만 한때는 나의 일부였던 것이 완전한 외계 생물체처럼 느껴지는 순간의 허무함에는 아직 익숙해지지 않는다. 거기서 거기인 이야기인 듯도 하지만, 조금 다른 결이다. 현재진행형인 것들을 보내주어야 할 때와는 달리, 후자의 경우에는 떠나보내는 대상이 아닌 내가 무감해졌다는 사실 자체에 상처 받는다. 이미 과거가 된 것들은 지금 소중한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마음에 구멍을 냈다. 그건 상실감보다는 건조하고, 초연함보다는 질척했다. 이르자면, 보내준 줄도 모르고 있다가, 지나고 나서 끝을 한꺼번에 자각하는 느낌.

 

있는 줄도 모르고 있던 매개 따위로 겨우 기억해낼 정도의 마음이라면 연연할 이유가 없다 싶다가도, 무언가를 소중히 여긴 기억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기묘하게도 그 기억이 추억이 아닌 객관적인 기억 정도로만 남아버렸단 걸 알면, 그 때의 감정마저 어딘가에 '버려버린' 기분이 든다. 이렇게 세상에서 내가 소중히 여길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지워가면, 나중에 나는 얼마나 무감한 사람이 되어있을지를 상상하게 되어 선득해졌다. 단단해지는 것과 무뎌지는 것과 냉정해지는 것의 차이는 무얼까. 그런 의문을 곱씹으면서.

 

11월의 마지막 밤이다. 오늘 새벽에는 잠깐의 눈 소식이 있을 만큼 점점 겨울의 한가운데 그리고 올해의 끝자락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아무리 미리 마음을 먹어도, 큰 시간의 단위와 함께 무언가를 보내는 일을 앞두고서는 긴장이 된다. 이왕이면 이번의 청산 의식에서는 미련도 냉정함도 아닌 후련함을 느낄 수 있었으면 하는데, 과연 어떠려나. 일단은 미루지 않고 달력의 마지막 장을 넘기는 일에서부터 시작하고 싶지만, 내 책상 위의 달력은 마음에 드는 사진이 있다는 이유로 여전히 9월에 머물러 있어 잘 될지는 모르겠다.

 

무언가를 좋아할 수 있는 마음을 잃고 싶지 않다는 생각 정도만이, 철 지난 달력 속 숫자의 모습을 하고 분명하게 떠다니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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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수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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