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내가 사랑하는 '디스 이즈 어 뮤지컬' [도서]

글 입력 2023.11.21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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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은 그 자체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노래가 시작하고 끝나는 그 짧은 시간에 압축된 일생은 응축된 채 관객에게 다가와 그 안에서 힘을 방출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읽는 내내 극장으로 달려가고 싶었다”라는 출판사의 홍보 문구는 책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고양한다. 극장 좌석에 앉아서 무대를 바라보며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시작하고, 배우가 등장하기를 기다리는 마음, 혜화역에 내려 뮤지컬 홍보로 가득한 역사 내 광고 전광판을 지나오며 내가 또 이곳에 왔다는 들뜬 흥분을 곁들여서.


도서 《디스 이즈 어 뮤지컬》은 총 99개의 뮤지컬을 소개하는 책이다. 99개의 뮤지컬이 수록되어 있지만, 볼륨이 얇은 책이기에 한 뮤지컬 당 2~4쪽의 짧은 분량을 가진다. 이미 뮤지컬을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너무나 익숙하지만, 뮤지컬에 대해 전혀 아무것도 모르는 독자들에게는 이 99개의 작품 중에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볼 수 있는 색인의 역할을 하는 책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이미 어느 정도 뮤지컬에 애정을 지닌 관객들에게는 심심하게 여겨질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99개의 뮤지컬 제목이 가나다순으로 놓인 목차를 보면, 뮤지컬의 특징을 잡아서 몇 개의 장(場)으로 나눠 구성했으면 어땠을까 생각이 들기도 하고, 다루는 뮤지컬의 개수를 줄여 하나의 뮤지컬에 조금 더 많은 분량을 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남는다. 그러나 99개를 다뤘음에도 아쉽게도 내가 사랑하는 작품들이 빠져 있다는 것도 아쉬운 마음 중 하나다. 기대보다 아쉬움이 크게 남은바, 《디스 이즈 어 뮤지컬》에서 다루지 않은 두 개의 뮤지컬을 간략히 소개한다.

 

 

 

뮤지컬 《미드나잇: 액터뮤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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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 액터뮤지션》은 스탈린 독재 시기인 1937년 소련 지배를 받는 아르젠바이잔을 배경으로 하는 라이센스 뮤지컬이다. 1937년, 소련의 비밀경찰 엔카베데(NKVD)에게 반역자로 고발당한 사람들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던 시기, 12월 31일 맨은 이 힘든 한 해를 무사히 넘겼다는 의미에서 우먼과 연말을 축하하려는데, 그날 밤 누군가 그들을 찾아온다.

 

비지터, 맨, 우먼, 그리고 총 네 명의 플레이어가 등장하는 극은 스탈린 숙청의 시기에 내부고발 시스템으로 인한 개인의 파멸을 적나라하게 그리며 서로를 고발하고 비난하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진정한 악마가 누구인지, 당신은 모든 것에서 무결한지 묻는다. ‘액터뮤지션’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플레이어들은 악기를 연주하며 극에 참여하고, 이들은 제4의 벽을 넘나들며 극의 역동성을 더하며 몰입도를 높인다. 특히 이 극의 매력은 ‘비지터’ 역에 있는데, 작년 처음으로 젠더프리 캐스팅으로 여자 배우가 비지터 역을 맡았고, 관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오프닝 곡인 〈그날이 찾아왔어〉는 비지터 솔로곡으로 극장 좌석 사이 통로에서부터 관객과 눈을 맞추며 내려온 비지터가 아무도 등장하지 않은 빈 무대(맨과 우먼의 집)를 거닐며 극의 분위기와 관객들을 사로잡는 넘버로, 내가 제일 사랑하는 넘버이기도 하다. 마지 자신이 이 극을 처음부터 끝까지 연출할 것이지만, 우리는 그 자리에 묶인 듯 꼼짝없이 앉아서 바라보라는 무언의 압박이 느껴진다.

 

무대에 걸터앉아 돌아가신 아버지의 사진을 보며 어떻게 살아야 하냐고 묻는 우먼의 솔로곡 〈파파〉, 맨의 목소리로 시작해서 플레이어들의 처절함으로 마무리되는 〈위대한 권력〉, 비지터의 익살스러운 〈비밀경찰의 애환〉,  〈대령님〉 등 이미 이 극에는 유명한 넘버가 넘쳐난다.

 

12월 31일 자정 직전, 세 번의 노크 소리가 이 극의 시그니처로, 2023년 12월 9일에 다시 올라온 만큼, 연말을 앞둔 지금 꼭 한번 관람하기 좋은 뮤지컬이다.

 

 

 

뮤지컬 《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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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지》는 여성 4인극 록 뮤지컬로, 리지 보든의 부모 살해 사건을 다룬다. 소재부터 자극적으로 시작하는 이 극은 스탠드 마이크와 헤드 마이크를 번갈아 사용하는, 노래만으로 이루어져 있는 송-스루 뮤지컬이기도 하다. 나에게는 처음으로 뮤지컬의 강력함을 일깨워 주고, 록 음악에 눈 뜨게 해준 뮤지컬로, 마치 콘서트같이 배우들과 함께 뛰며 합창하는 잊기 힘든 커튼콜이 특징이다.

 

〈소중한 내 동생〉은 언니 엠마 보든과 리지 보든이 하나의 핸드 마이크로 나눠 부르는 파트와 엠마 보든의 성량이 돋보이는 넘버다. 폐쇄적인 가정에서 구두쇠 아버지의 유산을 노리고 결혼한 새엄마의 등장으로 유산을 빼앗길 위기에 처한 엠마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잠시 집을 떠나려 하지만, 리지는 이 집에 자신을 혼자 두고 가지 말라며 잡는다. 그러나 엠마는 이 넘버를 마지막으로 잠시 집을 비우고, 그사이 보든가 저택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사건이 벌어진다.

 

〈여기서 벗어나야 해〉는 네 개의 스탠드 마이크 사이를 뛰어다니며 벗어나야 한다고 소리 지르는 리지 보든의 처절함을 만날 수 있고, 〈너의 거친 꿈속으로〉에서는 후련함과 해방감을 내지르는 리지의 새로운 모습을 목격할 수 있다.

 

네 명의 배우가 온 힘을 다해 내지르는 넘버들이 가득한 뮤지컬 《리지》를 보고 나오는 길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다음 회차를 예매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나가며


 

뮤지컬이라는 공연이 지닌 일회성은 비현실성을 가중하고, 과거의 기억을 회상하며 덧입혀진 공연은 내 안에서 실재가 된다. 모든 것이 기록되고 언제든 쉽게 꺼내볼 수 있는 시대에, 시간의 흐름에 맞춰 그대로 지나쳐 사라지는 공연예술은 언제나 우리를 매혹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기꺼이 그들의 매혹에 넘어가 언제나 극장의 의자에 앉아서 빈 무대를 바라보며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배우의 등장을 기다릴 것이다. 언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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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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