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삶이라는 고통, 필름과 시대 간의 의사소통 [도서]

거리의 사진작가 한대수의 필름 사진집
글 입력 2023.11.09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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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라는 고통 사진.jpg

 

 

필름 사진은 참 묘하다. 분명 최근에 찍은 사진인데, 결과물을 보면 내가 태어나지 않은 과거에 찍힌 사진 같다. 물리적으로 내가 향유할 수 없는 시간을 필름 사진을 통해 획득한 것 같은 느낌에 2년 전부터 필름 카메라를 찍기 시작했다.

 

뷰파인더 속 모습이 순간이 마음에 들어 셔터를 누르지만, 현상하기 전까지 그 결과물이 어떨지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이상한 사진. 그래서인지 결과물이 괜찮을 때 더욱 디지털 사진보다 더욱 소중하다.

 

‘삶이라는 고통’의 저자 한대수 씨는 한국 포크록의 대부이자 전문 사진작가이다. 그는 1960년대부터 2007년까지 작가의 필름 카메라로 찍은 흑백/컬러 사진을 엮어 사진집을 발간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미국과 한국을 오고 가며 다양한 해외를 방랑하듯 다닌 그의 삶 덕분에, 사진집에는 서울을 비롯해 뉴욕, 몽골 등 다양한 지역의 여러 시간대가 담겨 있었다.

 

책은 프롤로그, 에필로그를 제외하고 총 3부로 나뉘어져 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3부에 걸쳐 책은 저자의 삶과 삶이 가져다주는 고통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중에서도 1부는 저자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필름 사진을 통해 보인다.

 

뉴욕에서 혼자 서 있는 코리안, 맞지 않는 전공, 처음 맛보게 된 술과 마리화나, 그리고 음악. 모든 게 혼란스럽고 맞지 않은 옷이라고 느껴지는 상황에서 그는 음악을 만난다. 세계적으로는 베트남 전쟁으로 평화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던 시기, 1967년부터 1974년, 그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이었던 당시. 한대수 씨는 음악과 예술로서 병든 사회를 고치고 평화를 외치고자 했다.

 

예술 작품은 예술가의 사상과 감정을 담은 거울과 같다. 그래서일까. 사진집을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내가 느낀 감정은 고독과 자유였다. 일상적인 거리 사진 속 인물은 보통 홀로 생각에 잠긴 경우가 많았다.

 

반대로 나무 위를 올라가거나 높은 곳에서 건물을 내려다보는 사진에서 자유를 갈망하는 작가의 감정이 어렴풋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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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중간 필름 사진과 함께 사진과 어울리는 짧은 글귀가 수록돼 있다. 그 중 ‘기억의 지속이 우리를 만든다’라는 글귀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사진작가가 사진을 계속해서 찍으며 예술 활동을 이어 나가는 이유를 함축적으로 표현한 문장이 아닌가 싶다. 2001년 911테러를 실시간 보도 중인 TV 방송 화면을 찍은 사진을 통해 지난 과거가 잊히지 않게 한다. 그리고 과거를 잊지 않고 살아감으로써 우리가 완성된다.

 

후반부로 갈수록 컬러 필름사진이 많은 점도 시대의 흐름이 여실히 반영돼 재밌는 지점이었다. 색이 덧입혀지면서 몽골 초원의 말이나 절을 하면서도 카메라에 시선을 떼지 못하는 어린아이의 모습이 더욱 생생하게 다가왔다.

 

마지막 3부는 평화를 외치는 작가의 마음이 담겨 반전시위 현장 모습이 다양하게 담겨 있었다. 눈을 가린 채 천사 복장을 한 인물이 ‘NO WAR’이라고 적힌 종이를 들고 서 있는 사진을 보는 순간 시선을 빼앗겼다.

 

이후 몇 장을 더 넘기니 해골 분장한 인물의 얼굴을 어루만지는 손 사진이 나왔다. 그리고 사진 옆에는 작가의 표현이 더해져 있다. ‘고통받는 영혼에게 평화를.’ 세 요소를 보며 반전 시위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람이 잘 느껴져 오랫동안 페이지를 넘길 수 없었다.

 

‘사진은 순간 포착이다’라는 한대수 씨의 말처럼 그의 사진집에는 그가 살아온 시대의 순간순간이 필름 사진으로 박제돼 있었다. 때로는 희미하고, 때로는 포커스가 안 맞는 필름 사진 특성 덕분에 그의 인생이 더욱 생생하게 다가왔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바쁘다는 이유로 한동안 내버려 둔 필름 카메라를 꺼내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필름 카메라의 시간이 쌓이면 누군가의 인생도 엿볼 수 있다는 걸 깨달아 즐거운 독서였다.

 

 

[이도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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