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 시대, 방황하고 있는 모든 청춘들에게 [영화]

글 입력 2023.11.08 08:02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20210713170435_srripbzr.jpg

 

 

 

우리는 모두 성장통과 함께 진화한다 


 
세상에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으며, 태어난 순간부터 완벽한 존재도 없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쳐 도달하는 20대는 청춘이라 불린다. 이 '청춘'이란 단어는, 대부분의 경우에 한평생 가장 아름다운 시기로 묘사된다. 청춘의 도입, 달라지는 환경과 겪게 될 새로운 경험들 사이에서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과거보다 나아진 '나'를 기대하게 된다. SNS 속 사람들은 너무나도 행복하게 사는 것만 같아서, 나도 그렇게 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게 된다. 그리고 그 기대가 엇나갔을 때 비로소 현실을 자각하고 좌절한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 비록 이들이 외부적으로는 아무 근심 걱정이 없어 보이더라도, 그 이면에는 그들 나름의 고난과 역경이 존재한다는 사실. 웃는 얼굴 뒤로 자기혐오와 고독, 트라우마와 애정결핍,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위태로움을 떠안은 사람들이 있다.


그러니까, 찬란한 성장기 뒤 높은 확률로 외로운 암흑기가 있는 셈이다.

 

 

 

월플라워란, '파티에서 파트너가 없어 춤을 추지 못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여기, <월플라워>의 주인공 찰리는 과거의 아픔에 갇혀 홀로서기를 두려워하는 소년이다.


찰리는 갓 고등학교를 입학한 신입생이지만, 이모 헬렌의 죽음과 그에 관련된 환영 때문에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한다. 소심한 성격 탓에 그는 학기 초에 야심차게 세운 목표인 '친구 사귀기'를 달성하기는커녕, 중학교 친구에게도 무시당해 혼자 밥을 먹는 전형적인 아웃사이더가 되어버린다.


함께 대화를 나눌 사람을 원하지만 먼저 다가가는 것이 아직 무서운 소년. 새로운 관계에 대한 두려움이 설렘보다 더 큰 찰리는 결국 새로운 사회에 발을 내딛지 못하고 고독을 택하기로 한다.


하지만, 평소와 다를 것 없이 혼자 학교생활을 하던 찰리에게도 어느 날 기적이 찾아온다. 찰리의 굳게 닫혀있던 마음속으로 '자유로운 영혼' 패트릭과 그의 이복형제인 여동생 샘이 등장한다. 지금껏 찰리가 한 번도 시도해 본 적 없던 인생을 살고 있는 패트릭과 샘.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감정을 솔직하게 표출하는 모습에 매료된 찰리는 처음으로 타인에게 먼저 다가선다.


장난스럽지만 비밀스러운 면을 가진 패트릭과 샘. 그들은 줄곧 '월플라워'로 살아왔던 찰리를 자신들의 세계 속으로 초대하며, 음악을 통해 억압된 감정들을 해방하고, 또 사랑이라는 감정을 통해 상처 입은 마음을 치유한다. 두 남매는 찰리의 아픔에 연대하고 또 지지를 보낸다.

 

누군가는 외설스럽다 하지만, 찰리를 자기검열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준 뮤지컬. 성소수자인 패트릭을 향한 편견과 폭력에 맞서 싸우던 시간. 그리고 사랑하는 상대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느낀 연민과 동정이라는 감정.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감정과 경험을 겪으며 찰리는 서서히 성장하고, 줄곧 외면했던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는 법을 배운다.

 

 

 

과거와 미래, 그 사이를 뛰어넘어 지금 이 순간을 선택하는 용감함



perks-of-being-a-wallflower-1.jpg

 

 

<월플라워>가 그리고 있는 핵심적인 주제 중 하나는 '과거의 기억이 가진 영향력'이다. 이 영화는 과거에 얽매여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찰리는 이모 헬렌의 죽음에 대한 기억을 떨치지 못한 채 환영에 시달리고, 샘은 데이트 폭력을 당하면서도 사랑을 받았다는 사실 하나로 상대에게서 벗어나지 못한다.


어릴 적, 이모에게 성추행을 당했던 찰리는 그 기억을 잊고 싶어서 수치심 위에 죄책감을 억지로 덧칠한다. 하필이면 성추행을 당했던 날, 하필이면 이모가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했기에. 찰리는 자기 몸에 손을 댄 이모를 증오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죽길 바랐던 건 아니었기에 양가감정 속에서 어쩔 줄을 모른다. 그래서, 이 혼란스러움과 고통을 잊기 위해 자기 자신을 속이는 선택을 한다.

 

찰리는 이모가 사랑했던 남자들이 이모를 상처입혔고, 그 상처들이 모여 어린 조카를 향한 성도착증으로 발현되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샘 또한 모든 폭력을 억지로 감내하며 살고 있음을 안다. 그래서, 그가 묻는다.

 

왜 사람들은 자기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걸까요?

 

찰리의 물음에 엔더슨 선생님은 이렇게 대답한다.

 

사람은 자기가 생각한 만큼만 사랑받기 마련이거든.

 

많은 사람에게 와닿을 대사라고 생각한다. 나도 이 씬에서 재생 바를 아주 많이 돌려봤으니까. 이 장면을 시청할 때마다 거절에 대한 두려움과 자꾸만 낮아지는 자존감 속에서,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점점 잊어가던 과거를 떠올리게 된다. 일어나지도 않은 실패담을 머릿속으로 상상하고, 앞으로 일어날 모든 불행의 탓을 외부로 돌리던 때를. 그러다 실패하면 자기혐오를 내세워 비겁한 변명을 만들던 모습을.


사람들의 마음을 꿰뚫어 볼 수 없는 이 불확실한 세상 속에서, 나 자신조차 사랑할 수 없다면 대체 그 어떤 누가 나를 온전히 사랑해 줄 수 있을까. 그러니, 타인에게 함부로 대해지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나 자신을 먼저 소중히 대해야 한다.


찰리도, 이모 헬렌도, 샘도 결국 자기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지 못해 사랑받고 싶은 만큼 사랑받지 못했다.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한다면 타인이 휘두르는 폭력마저도 애정이라고 치부하게 된다. '나 같은 사람'에게 잘해주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서, 마음속 한편에 죄책감을 가진 채 관계를 끊지 못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이 영화는 이러한 비관적 자아관이 얼마나 해로운지를 강조한다. 그리고, 자기 긍정이 가진 무한한 힘을 얘기한다.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법을 배운 샘과 찰리는 타인에게 사랑을 베풀고 또 사랑받는 삶을 살게 된다. 그들은 비로소 자기혐오와 죄책감의 굴레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진정한 가치를 찾아낸다.

 

나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에게는 시원한 펀치를 날리고, 소중한 사람에게는 무한한 연대와 지지를 보내기. 그리고 그 근간에는 자기 긍정과 믿음이 있을 것. 이것이 바로 <월플라워>가 얘기하는 세상을 대하는 진정한 태도가 아닐까.

 

 

 

In this moment, I swear. We are INFINITE.


 

R.e37ae88b755e63b08fe27894253925f0.jpeg

 

 

이제는 과거에서 벗어나 현재를 살아가는 소년.

 

영화의 끝, 터널 안에서 찰리는 이런 독백을 남긴다.

 

내가 비참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는 그 순간 난 살아있는 거야

일어서서 건물의 불빛들과 놀라운 풍경들을 바라보고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과 노랠 들으면서 드라이브를 할 때

 

바로 그 순간,

우린 무한한 자유를 느껴

 

인생이란 끝을 알 수 없는 터널과 같다. 어두컴컴한 터널을 지나며 부정적인 생각과 고민, 그리고 회의감에 막막해질 때가 있을 것이다.

 

삶이라는 유한성과 평생 존재하지 않을 완벽함. 우리는 그 속에서 갈팡질팡하며 불확실한 나날들을 보낸다. 그렇지만, 지금 당장은 엉망진창의 불량품이더라도, 나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한다면 조금 더 나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터널 속에서 일어서 바람을 즐기는 샘, 그 옆에서 도시의 불빛을 바라보는 찰리와 패트릭, 그리고 그들이 잊어버린 괴로웠던 기억처럼. 언젠가 길고 긴 터널을 지나 아름다운 밤하늘과 눈앞의 이정표를 바라보며, 이미 지나간 것들은 버려두고 새로운 앞날을 기대할 수 있길 바란다.

 

 

[강소림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