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인치(inch) 안의 세상과 삶의 하이라이트 [사람]

글 입력 2023.11.07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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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의 아침에는 잠이 덜 깬 듯 어수선한 공기만 묘하게 맴돌고, 무채색의 옷들로 가득하다. 사람들은 귀에 저마다 이어폰을 끼고 있고 표정은 아무 일도 없는 듯, 틈틈이 무표정으로 작은 화면 안의 세상을 바라본다. 재밌는 것들에 대한 웃음은 손이 대신하고 있었고, 여전히 표정은 없었다. 그렇게 주어진 일을 하고 일에 대한 보상으로 잠깐 쉬며, 미디어 속 세상을 둘러보며 볼거리를 찾는다. SNS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기쁨이 게시되어 있었고, 성공의 지표들이 가득했다.

 

무표정인 본인의 모습과는 달리 그들은 환해 보여, 스스로의 모습과 비교한다. 그렇게 다음날, 다시 무채색으로 물든 열차 안으로 몸을 싣는다. 쳇바퀴처럼 하루는 똑같은 루틴으로 지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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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소리는 소음이 되어버렸고, 작은 이어폰으로 귀를 막아버리며, 타인과의 소통을 차단해버렸다.

 

그러나 이해도 되는 게, 세상은 내게만 집중할 수 없도록 복잡하게 시끄러웠다. 타인과의 비교, 자격지심과 얼마나 잘 먹고 잘 살아가는지 남들에게 보이는 것들을 집중했다. 곧게 바라보는 시선보단 꼬인 시선들이 많았고 삶에 대한 격려와 위로보단 비판과 무언갈 도전하면 안정적임을 논하며, 걱정인척하는 비난 섞인 충고들이 나왔다. 그런 세상에 대해 귀를 막고 오로지 듣고 싶은 것만 들으며 혼자만의 세상을 구축시켜갔고, 그렇게 우리는 같이 살아가는 세상을 더 바스러지게 말렸다. 

 

미디어 속 세상은 다채로운 색들과 화려함으로 가득 찼다. 세상엔 24시간을 쪼개서 알찬 삶을 살아가는, 이를테면 '갓생'을 사는 사람들은 많았고,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몇억을 모을 수 있었던 이유를 게시하는 사람들도 늘어갔다. 젊은 나이에 부를 쥐고 자랑하는 사람들도 여러 인맥들과 함께하는 화려한 셀럽들도 많았다. 이러한 미디어의 영향으로 사람들은 이러한 삶을 동경하기도, 그저 SNS에서 보이는 것들로만 판단해 섣부른 생각을 하기도 한다.

 

나는 이런 화려한 미디어의 영향이 가끔은 아쉽기도 하다. 이러한 사람들과 자신의 삶을 비교하며, 회의감을 가지고 자신의 삶의 템포를 잃어 무리하게 내가 아닌 나를 만들어 내는 것 같아서. 무언갈 이루거나 하는 게 없으면 나태함으로 치부되는 삶의 형태. 사실 이건 한때 21년 코로나 팬데믹 시절, 가장 무력감에 빠져있을 때의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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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도 선호하는 것도 없었던 나는 무던한 성격의 사람이었다. 그때 누군가의 분위기가 부러웠던 적이 있다. 취향이 확실한 게 멋져 보였고, 항상 해바라기같이 밝고 행복해 보이는 삶이 걱정 하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 사람을 따라 해본 적이 있다. 넓게 사람들과 친해지려고 했고, 내게 맞지 않은 옷들을 입었다.

 

다른 사람들이 열심히 살면 나는 더한 경쟁 속으로 뛰어들어 더 열심히 살고 싶었다. 그래서 일을 하고 있음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아 마음이 불안했던 적이 있었다. 성과가 주는 뿌듯함의 보상에 쉬는 법을 잃어갔다. 당연히 편할 리 없었고, 22년 겨울에 나는 21년에 쓴 일기장을 보았다. 그때 나는 삶의 초점이 나의 행복에 맞춰진 것이 아닌, 행복해 보이는 누군가를 따라가려고 애쓰며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았고, 그때의 충격으로 나는 나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 지금은 나의 취향이 무엇인지도 나는 어떤 사람인지도 알게 되었고, 건강한 삶을 지속하기 위한 노력들을 하고 있다.

 

SNS는 삶의 가장 빛나는 순간들을 기록하는 일기장이라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가끔 일기를 쓰다 보면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은 일기가 있다. 누군가 봐줬으면 하는 뿌듯한 일기들. 그런 것들을 기록하여 나중에 다시 돌아보면 SNS라는 일기장 안에는 내 삶의 가장 찬란한 순간들로 기록되어 있을 테니. 나도 원래 인스타그램에 게시물보단 스토리만 짧게 올리는 스타일이었는데, 이번 연도에 내가 눈에 담은 행복한 순간들을 기록하고 싶어 게시물을 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단편적인 기쁨을 올린다 해서 내 삶에는 오로지 기쁨만이 가득 차 있는 것은 아니다. 내겐 남들에겐 말하지 못할 슬픈 일도, 억울한 일도 화로 가득한 하루도 있다. 그러니 이러한 보이는 삶에 대해 너무 스스로와 비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스스로의 삶의 방식이 있는 것이고 사실 삶의 방향성과 믿음은 스스로에게서부터 오는 것이니까.

 

자신을 믿고 확신했으면 좋겠다. 무언갈 이루거나 해내지 못했다고 해서 나태하거나 뒤처지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그 과정 속에서도 배움이 있었으니 거기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추고 더 발전할 나 자신을 믿고 다시 도전하면 된다. 취향을 찾는 법은 어느 순간 우연히 찾게 되는 것 같다. 나는 스스로와의 데이트를 준비하며, 나의 취향을 좀 더 찾아갔던 것 같다.

 

이제 나를 알고 세상을 바라보니, 내가 추구하는 세상에 대한 시야로 삶의 방향은 확장되었다.

 

조금 더 따뜻한 세상을 원한다. 어릴 땐 아파트여도 우리 동과 다른 동을 넘나들며, 아는 동네 사람들과 물건도 주고받고 인사도 했었는데, 이젠 우리 집 옆에 사람이 사는지도 잘 모르겠다. 비대면은 일상화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히려 비대면이 편해지기도 했다. 사회에는 사건 사고가 너무 많았다. 함부로 호의를 베풀면 안 되는 세상이 되었다. 호의를 베풀다, 상처를 받는 경우도, 때로는 그런 호의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경우도 있었다.


더불어 살아가야 할 동그란 세상은 가시가 돋아, 찔리는 이들이 많았고 조심하기 위해 서로가 예민해졌다. 어려운 누군가를 돕기 위한 순수한 마음을 이용해,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늘었고 함부로 어려운 사람을 도울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슬픈 누군가의 마음을 위로해 주기보단 타인의 슬픔과 끝없이 비교하며, 슬픔에 의문을 남긴다. 요즘은 젊음을 무기로 노년층을 상대로 하는 범죄를 볼 때면 정말 이러한 사회가 안쓰럽다고 느껴진다. 입금자명을 101만 원으로 한 뒤, 실제 입금 금액은 1원으로 해두고, 다시 택시요금만 빼고 ATM기를 이용해 돈을 보내달라고 하는 사기 범죄. 눈이 어두워 잘 못 보시는 어르신을 대상으로 한 범죄라고 한다. 이외에도 한 중학생이 지하철에서 70대 노인의 목을 졸랐지만, 촉법소년이라 처벌받지 못하는 것. 이런 세상의 '보호'를 악용한다는 점이 세상의 마음을 싸늘하게 만드는 것 같다.

  

지금까지 내가 말한 것들은 사회의 그늘진 부분이지만, 세상 곳곳에는 아직도 사람들 간의 따뜻한 온정을 나누는 사회가 도사린다. 나의 시선은 대개 다정하고 따뜻한 부분들을 보는 시선 쪽으로 머물러있다. 사회는 어르신들께 1000원으로 따뜻한 밥의 온정을 대대로 나누기도 하고, 유기 동물들을 구조하는 사람들도, 옆으로 넘어진 구급차를 보곤 우르르 달려와 구급차를 사람의 손으로 일으켜 보내는 기적을 선물하기도 한다. 또한 우리가 평소에 하는 배려와 양보들도 다 따뜻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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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참 넓다. 비행기를 타서 창문 밖을 바라봤을 때, 사람들은 아주 작아 잘 보이지도 않았다. 당장 내 눈앞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과 마주하고 지나치지만, 결국 하늘 아래 인간은 다 똑같다고 생각한다. 무한한 경쟁 사회로 우리는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지만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세상은 고요하다.

 

인치(inch) 안의 미디어 세상에 갇혀, 나의 삶을 바라보고 비교하기엔 세상이 너무 넓다. 그리고 세상에 태어난 이상, 삶의 주체는 나다. 그러니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지는 스스로가 정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말 세상이 나를 미워 하나 싶을 때도, 출발선이 달라 억울하기도, 내가 잘 살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 날도 있겠지만. 우리에겐 선물 같은 인생이 주어졌으니, 그 선물을 잘 풀어 스스로를 위해 누리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개인적으로 배우 김혜자 선생님을 좋아하는데, <눈이 부시게>라는 드라마에서 나온 마지막 대사가 위로가 참 많이 되어서 남긴다.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래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새벽에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부는 달큼한 바람, 해 질 무렵 우러나오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한 가지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거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엄마였고, 누이였고, 딸이었고, 그리고 나였을 그대들에게."

 

- 드라마 <눈이 부시게> 마지막 대사

 

 

인간은 인간으로 상처를 받고 치유받는다. 비록 차가운 세상은 인간이 자처해 만들어 가지만, 이러한 세상 속에서도 따스함의 작은 불씨는 살아있고, 언젠가는 다시 타오를 따스함을 기대하며 오늘도 다정하게 살아간다.

 

 

[황수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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