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월요일이 8번 남았다

글 입력 2023.10.31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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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유튜브 파도에 몸을 싣고 흘러가고 있다.

 

어떤 날은 양어장에서 키우는 고양이 영상을 5시간 내리 보다가. 다음날에는 쿠바 여행 브이로그를 종일 본다. 바로 어제는 뮤지컬, 오페라 영상에 꽂혀 예술 공연에 갈증을 느끼다가. 국립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 무대를 보며 문득 달력 어플을 켰다.

 

올해가 얼마나 남았지?

 

10월이 엊그제 같았는데 벌써 11월이다. 지하철 출근길에는 여전히 반팔티셔츠와 코트가 공존하지만 시간은 착실히 흘러가고 있다. 그 말인즉슨,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이었다. 누군가는 아직 먼 얘기라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월요일을 8번만 보내면 2024년이 온다.

 

주 5일제의 평범한 회사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싫어하는 월요일. 너무 짧아 스치듯 지나가버린 주말을 끝으로 매주 찾아오는 그날은 월요병이라는 근거 없는 병치레를 안겨주며 한주의 시작을 알려온다. 월요일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테다.

 

그러나 우리는 희망찬 이야기를 좋아한다. '올해의 월요일'이라고 특정해 보면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얼마 남지 않은 시간들이 마냥 괴로운 것은 아니었다.

 

크리스마스는 올해의 마지막 월요일이다. 월요병에서 벗어나게 해 준 그날이 무척 특별한 날처럼 느껴졌다.

 

문득 눈 내리는 화려한 무대 위에서 꽃의 왈츠에 맞춰 춤추는 발레리나를 두 눈으로 보고 싶었다. 생활반경은 여전히 침대를 벗어나지 못했으나 특별한 날을 위한 외출을 감행하기로 한다. 고양이 털이 수북한 침구에 파묻혀 유니버설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을 예매했다. 크리스마스이브 공연의 1층 뒷좌석이었다.

 

연말 공연은 올해가 끝나가는 마지막이기에 즐길 수 있는 특권처럼 느껴지는데 호두까기 인형 역시 마찬가지였다.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즐기되, 아름다운 예술 공연을 볼 수 있는 최고의 선물. 티켓은 1 매였다. 함께 보러 갈 사람을 구할 수도 있겠으나, 공연은 본인만족이 컸기에 동행을 구한다면 온전히 즐기지 못할 것이 뻔하니. 차라리 외톨이가 되기로 한다.

 

관심사를 공유할 수 있다는 건 굉장한 행운이다. 나와 내 친구들은 다양한 경험과 시간을 보내며 점차 멀어지는 연습을 하고 있다.

 

나의 큰 관심사는 오로지 나 자신뿐이다. 가끔 만나 삼겹살에 소주를 기울이고, 회사 욕을 하고, 각자의 애인과 다녀온 여행 후기를 공유하지만 그것이 관심사를 공유하는 행위는 아니었다. 호두까기 인형 같이 보러 갈래? 그 말이 닿지 못할 것을 알기에 조금 단출한 연말을 보내기로 한 것이다.

 

설레기만 했던 연말이 무미건조해진 것은 그 때문일지도 모른다. 시끌벅적한 모임과 연례행사는 사라졌다. 올해의 월요일을 8번 남기고.

 

 

[이보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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