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하루의 마무리

나도 당신도, 결국엔 다 똑같은 하루
글 입력 2023.10.27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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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하루의 마무리를 어떤 방식으로 하는가?


소파에 기대어 시원한 맥주를 마실 수도, 밀린 드라마를 볼 수도,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또는 일이나 공부로 하루의 끝과 시작을 맞이할 수도 있겠다.


앞서 언급한 여러 예시들이, 그동안 내가 번갈아가며 현실에 적용하고 있었던 하루의 마무리이기도 하다.


그러던 어느 날,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게스트로 출연한 ‘보이는 라디오’ 재방송을 보게 되었다. 평소 나는 영상 길이가 짧을수록 집중도가 올라가는 숏폼 소비 습관이 있었다. 하지만 아티스트와의 대화를 끝까지 듣고 싶은 마음이 소비 습관을 이길 만큼 매우 컸고, 약 한 시간 이상의 분량을 앉은 자리에서 모두 시청했다.


‘아, 실시간으로 라디오 방송에 참여할걸...’


녹화된 라디오를 보는 내내 아쉬운 감정만 가득 찼다. 지금까지 라디오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아쉬움, 실시간으로 라디오를 듣지 못 한 아쉬움, 주제에 적합한 사연을 적을 수 있었는데 그 기회가 날아간 아쉬움 등으로.


녹화된 보이는 라디오를 끝까지 다 봤을 때의 시간은 밤 11시를 살짝 넘었었다. 마침 그날 예정되어 있던 라디오가 실시간으로 진행되고 있었고, 바로 프로그램 홈페이지로 이동해 다시 이어폰을 꼈다.


오프닝으로부터 한참 지난 후에 참여한 터라 앞부분은 못 들었지만, 하루 동안 힘들었던 일을 속 시원하게 말하는 코너가 진행되고 있었다. 친구와 다퉈 마음이 복잡하다는 고등학생의 이야기, 낮은 자존감이 고민이라는 이야기 등 제각각의 사연이 라디오 dj 입으로 전달되고 있었다.


분명 내가 겪은 일이 아닌데 너무나도 공감 되었고, 내가 그 상황에 처해있다면 어떻게 했을지 상상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뒤에 나오는 dj의 답변은 나와 같을 때도, 신박한 다른 해결책을 제시할 때도 있었다.


속담에 ‘바늘 가는 데 실 간다.’가 있다면, 라디오에는 ‘사연 가는 데 노래 간다.’라는 묘미가 있지 않은가. 본인 사연에 딱 들어맞는 노래 제목으로 신청하기도 했고, 반어법의 의미가 담긴 노래를 신청하여 재치를 발휘하기도 했다. 노래의 범위는 시대, 나라를 초월하여 추억을 불러일으키기도 했고 나의 플레이리스트에 추가되기도 했다.


실시간으로 진행된 라디오는 마지막으로 흘러나오는 노래와 dj의 클로징 멘트와 함께 끝이 났다. 곧 12시가 되었고,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었다.


나는 그 새로운 하루를 기점으로 매일, 라디오 청취로 하루를 마무리 짓고 있다.


어떤 날에는 게스트가 나와 dj와의 대화를 엿듣기도 하고, 어떤 날에는 오로지 청취자 사연만을 다루며 소통하기도 한다. 라디오 속에는 ‘오늘’이라는 같은 시간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게는 기쁜 일이, 누군가에게는 안타까운 일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 라디오에 함께하는 사람들끼리 기쁨을 공유하고 위로를 전하고 있었다.


결국 라디오는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사람과 사람 간의 이야기, 사람과 사물 또는 자연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고, 사람으로서 느낀 감정을 말로 풀어내기도 했다. 저마다의 스토리텔링이 녹아든 라디오는 오로지 사람에 의해 만들어지고 움직이고 있었음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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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같은 시간에 돌아오는 라디오 dj의 목소리는, 보이지 않는 시간을 언어로 정리해주고 전달해주는 힘이 있다. 매번 달라지는 주제를 던져주며 오늘의 나를 되돌아보게 해주고, 다른 이들의 하루를 대신 경험하게 해준다.


똑같은 하루가 반복되고 있다고 느끼던 요즘, 라디오를 들으며 ‘하루’의 의미가 더 소중해졌고 내일의 라디오가 기다려지고 있다. 라디오를 들으며, 나 혼자서만 생각하고 있는 고민들은 사실 모두의 고민일 수도 있고, 별것 아닌 시시한 생각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평범한 일들도 ‘사연’이라는 이름이 붙는 순간 특별함이 발휘된다고 생각한다. 이 글을 읽는 당신 역시 라디오와 함께하며, 오늘의 모든 순간들을 다른 이들과 나누고 특별한 하루로 마무리 지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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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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