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고독한 사람들의 도시 [도서/문학]

그저 나인 채로 여행을 할 수밖에 없는 시간이 있다.
글 입력 2023.10.14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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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과 구름


 

 

말해 보라, 불가사의한 이여. 그대는 무엇을 가장 사랑하는가? 

그대 아버지, 어머니, 자매, 아니면 형제?

  

나에게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자매도 형제도 없소.

 

친구라면?

 

당신은 내가 지금까지도 헤아리지 못한 단어를 사용하고 있소.

 

그대 조국인가?

 

나는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오.

 

미녀는?

 

기꺼이 사랑하겠소, 불멸의 여신이라면 말이오.

 

황금은?

 

당신이 신을 증오하는 만큼이나 나 또한 그것을 증오하오.

 

이런! 그렇다면 자네는 무엇을 사랑하는가, 기이한 이방인이여?

 

나는 구름을 사랑하오... 저 흘러가는 구름을... 저기... 저기... 저 근사한 구름을!

 

이방인( L' étranger)/ 보들레르

  

 

프랑스 작가 보들레르의 시 이방인 中, ‘무엇을 사랑하느냐’는 물음에 이방인은 가족도, 친구도, 조국도, 아름다운 (그러나 필멸일) 여인도, 돈도 마다한다. 그가 낸 답은 구름이었다. 그것도 잡는 것이 불가능한, 흘러가는 저 구름을 사랑한다 답한다.


얼핏 느끼기에 엉뚱한 이 답은,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이 과연 영원히 곁에 있을지, 혹은 있었는지를 생각해 보면 의외로 맞는 답이 된다.


구름이라는 것은 결국 흘러가기 마련이다. 오늘 본 구름이 내일 같은 자리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혹여나 비라도 내린다면 형체조차 남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물은 순환하고, 그렇게 생각하면 구름은 언제나 우리 곁으로 돌아오는 셈이다.

 

어쩌면 이방인의 답은 삶 그 자체를 상징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가족도, 친구도, 조국도, 아름다운 여인도, 그리고 돈도. 단지 모두가 바라는 것처럼 영영 이상적인 형태로 남아주지만 않을 ‘중심이 아닌 것, 흘러가는 것, 희미해져 가는 것. 그러나 끝내 살아남는 것.’ 여행은 대개 익숙하지 않은 공간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삶과 닮았다.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며, 낯선 공간과 사람들 틈에서 나의 존재는 작아진다. 맛집을 탐방하러 가든, 힐링을 하러 가든, 여행의 목적이 거창하지 않아도 고독의 순간은 온다. 그러나 당연한 것에 지레 겁먹을 이유는 없지 않을까.  


책의 표지를 장식한 작가의 말에도, 원본의 이방인과 닮은 구석이 있다. 여행은 대개 익숙하지 않은 공간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삶과 닮았다. 여행을 하면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며, 낯선 공간과 사람들 틈에서 나의 존재는 작아진다. 맛집을 탐방하러 가든, 휴식을 취하러 가든, 여행의 목적이 거창하지 않아도 고독의 순간은 온다. 그러니 당연한 것에 지레 겁먹을 이유는 없지 않을까.

 

 

 

예술가들의 도시를 여행하다


 

'고독한 사람들의 도시'는 작가 개인의 여행 이야기를 담아낸 여행에세이이다. 호텔 안내원과 예약 시간으로 아웅다웅한 일화부터 깜빡 잠든 숙박집 주인이 문을 열어줄 때까지 추위에 떨며 기다린 이야기까지, 작가는 유럽의 도시 이곳저곳에서 자신이 겪은 일을 진솔하게 묘사한다. 중간 중간 이 곳에 있었던 이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목에서는 도시와 사람들을 향한 잔잔한 애정이 느껴졌다.

 

모든 도시에는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의 중심에 선 것은 예술가들이다. 그들이 거닐었을 바로 그 거리에서, 작가는 예술가들의 삶을 하나 하나 되짚으며 이야기한다. ‘마왕’을 작곡한 슈베르트는 거의 평생을 떠돌이로 살다, 자신의 곡이 겨우 인정받게 되었을 무렵 병에 걸려 서른한 살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키스’를 그린 클림트는 20대에 성공을 거두어 바람둥이로 이름을 날렸지만 결혼하지 않고 50대까지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고 한다. 이름만 대도 아는 유명한 이들도 있었지만, 이 책을 계기로 처음 알게 된 이들도 있었다. 자칫 모를 수 있었던 사람들을 알게 된 것이, 이 책을 읽으며 받게 된 또 다른 선물이았다.

 

 

 

완벽하지 않은 여행이라 해도 


 

 

그런 일이 생긴대도 나쁠 것이야 없겠지만, 여행을 떠났다고 해서 어느 순간 완전히 새로워진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일이 모두에게 일어나지는 않는다. 그저 나인 채로 여행을 할 수밖에 없는 시간이 있다. (228p)

 

 

사실 나는, 은근히 극적인 변화를 바라곤 했다. 이 유튜브 강의를 들으면 금방 외국어를 잘할 수 있게 되겠지. 이 포스트를 읽으면 더 부지런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거야, 생각하며 수확도 하지 않은 호박이 넝쿨째 굴러오길 바랬다. 그러나 되돌아 보면, 살면서 내가 느낀 성취감은 대부분 꾸준한, 그리고 오랜 기간에 걸친 노력과 마음가짐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것은 절대로 완전하고 새로운 변화라고 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여행 역시 생각대로 되지 않는 일 투성이인 행위이다. 책 속 작가의 수난, 그리고 그가 적어내린 고독함에서도 느낄 수 있었지만 개인적인 경험 역시 그랬다. 기대와 달리 여행은 언제나 낭만과는 거리가 멀었다.


코로나 사태가 터지기 이전 홍콩으로 여행 갔던 것을 기억한다. 여행 첫날, 와이파이 기기를 깜빡하고 못 챙겨나와 아침부터 저녁까지 문명과의 단절을, 그것도 외국에서 강제로 체험했다. 겨우 길을 물어 천장이 개방된 시티버스에 타게 되었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영어가 ‘글로벌 언어’라 믿은 것은 안일한 생각이었고, 홍콩의 언어를 몰랐기에 서브웨이에서 참치 샌드위치를 주문하는 것마저 고역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재미, 해방감, 즐거움 등을 느끼고 싶어서 여행을 하고, 나 또한 그랬다. 그렇기에 사건사고를 겪은 뒤에는 여행이 생각했던 것만큼 즐겁지 않았다는 것에 의문, 심지어는 죄책감까지 느끼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고독한 사람들의 도시는 위로와도 같았다. 작가의 진실된 경험을 통해, 그리고 실패와 좌절 속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나아간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통해 과거의 경험을 달리 볼 수 있었다. 


고독한 것도, 실패하는 것도 결국 삶의 일부분이지 않은가. 삶 또한 하나의 여행인 만큼, 실패에 연연하지 말아야겠다는 깨달음을 얻게 됐다. 실패하는 나 또한, 그저 나일 뿐이니까.

 

 

[안세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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