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 옛날이여 [영화]

글 입력 2023.10.22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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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에 충실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도 좋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행복한 미래를 그리는 것도 좋지만, 이따금 찬란했던 과거가 그리워지는 순간들이 있다. 다시는 그때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한없이 서글퍼지는 때가 있는가 하면, 아름다운 추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 한 켠이 조금씩 따뜻해지는 경우도 있으니, 마음 속에 가득 차오르는 과거에 대한 향수를 애써 외면할 것 없이 가끔씩은 그 위를 한가로이 유영해 보는 것도 괜찮을 성싶다. '그 시절'에 대한 향수로 가득 차 있는 레트로 영화 몇 편이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나는 우리에게 멋진 길동무가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그때 그 음악, <유열의 음악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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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간절하게 보고 싶은 사람이 있죠.

그 사람을 어떻게 하면 만날 수 있을까요?"

 

- 정지우, <유열의 음악앨범> 中

 

 

1994년부터 2007년까지 약 13년간 가수 유열이 진행을 맡았던 KBS 2FM의 라디오 프로그램 '유열의 음악앨범'. 해당 프로그램의 제목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제작된 2019년의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은 그 시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음악들을 적절히 활용함으로써 관객들이 순식간에 과거의 추억 속으로 흠뻑 젖어들도록 만드는 작품이다.

 

이야기는 1994년의 어느 빵집에서 시작된다. 어머니가 자신에게 남겨준 빵집에서 일하던 '미수'는 가게에 우연히 찾아온 '현우'를 만나 예기치 못한 인연을 쌓아가며 조금씩 설레는 감정을 느끼기 시작하지만, 머지않아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인해 만남은커녕 서로 연락조차 닿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하고 만다. 이후 기적처럼 다시 마주하기도 하는 한편, 재회의 기쁨을 느낄 새도 없이 줄곧 엇갈리는 상황과 시간 속에서 헤매는 두 사람. 과연 '미수'와 '현우'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유열의 음악앨범'을 함께 듣던 행복한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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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의 훌륭한 연기와 과거의 향수를 자극하는 감각적인 연출 모두 좋지만 뭐니뭐니 해도 영화 속 등장하는 음악들을 빼놓고서는 <유열의 음악앨범>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을 듯하다. 모자이크의 '자유시대', 핑클의 '영원한 사랑', 루시드 폴의 '보이나요' 등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90년대와 2000년대를 화려하게 수놓은 불후의 명곡들이 영화의 깊이와 감성을 한층 더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유열의 음악앨범>은 과거 '유열의 음악앨범'을 즐겨 듣던 청취자들에게, 혹은 당시 방송을 즐겨 듣지는 않았더라도 여전히 그 시절의 음악을 추억하고 있는 이들에게 짙은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애틋한 작품으로 남게 되었다. 이따금 '그때 그 시절'이 그리워지는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한 번씩, 이 영화를 소중히 꺼내 보기로 하자.

 

 

 

옛날 옛적 할리우드에서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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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네에선 모든 게 눈 깜짝할 새 바뀌어."

 

- 쿠엔틴 타란티노,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中
 

 

<악마의 씨>, <차이나타운>, <피아니스트> 등 영화계 역사에 길이 남을 불세출의 걸작들을 남기며 수많은 영화 팬들의 찬사를 이끌어냈지만, 동시에 과거 아동 성범죄 전력이 드러남에 따라 많은 이들의 지탄을 받는 등 명과 암이 극명하게 갈리고 있는 영화 감독 로만 폴란스키. 하지만 이처럼 화려한 필모그래피와 성범죄 논란 외에도 '로만 폴란스키'라는 이름이 대중에게 강렬히 각인된 사건이 또 하나 있었다.

 

일명 '폴란스키가 살인사건'으로 일컬어지는 1969년의 비극이 바로 그것이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이 자리를 비우고 있던 사이, 약에 취한 히피 집단이 그의 집에 무단 침입해 아이를 임신하고 있는 그의 아내 샤론 테이트를 포함하여 집에 있던 사람들을 전원 살해한 끔찍한 사건이었다. 그야말로 개인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잔혹한 비극이었고, 이 사건의 영향인지는 몰라도 이후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는 다소 어두운 분위기를 지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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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폴란스키가 살인사건을 주요 소재로 다루고 있는 영화가 바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니 상당히 어둡고 우울한 영화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해당 사건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을 뿐 아니라, 1969년 당시 할리우드 특유의 정취를 그대로 재현해내는 데에도 상당한 심혈을 기울인 영화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202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미술상을 수상할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영화의 세트 디자인은 관객들로 하여금 60년대 할리우드에 대한 짙은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무수한 호평 세례를 이끌어내는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는 데 성공했으니 말이다. 대체 1969년의 할리우드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그리고 해당 영화가 폴란스키가 살인사건이라는 비극을 어떤 식으로 재해석하고 있는지 궁금하다면,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를 통해 직접 확인해 보도록 하자.

 

 

 

영원히 잊지 못할 그 날의 여름, <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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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에만 담아두기엔 우리 곡들이 아까워."

 

-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레토> 中

 

 

모스크바와 함께 러시아를 대표하는 도시 중 하나인 상트페테르부르크. 지금이야 상트페테르부르크라는 명칭이 상당히 널리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근 30년 전까지만 해도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블라디미르 레닌의 도시'라는 의미인 '레닌그라드'라는 이름으로 불리곤 했다. 혹시나 과거 소련 시절을 기억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면, 이쪽이 훨씬 익숙한 이름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레토>는 1980년대 레닌그라드에서 활동했던 두 명의 전설적인 록 뮤지션 '마이크 나우멘코'와 '빅토르 초이'의 찬란했던 시절을 그리고 있는 일종의 전기 영화이다. 당시 레닌그라드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러시아 언더그라운드 록 씬의 분위기와 풍경을 담아내는 데 주력하며 평단과 관객들로부터 뜨거운 찬사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한 걸작이라는 설명이야말로 <레토>에 딱 걸맞은 서술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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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레토>는 오롯이 완성되기까지 상당한 우여곡절을 겪은 영화이다. 해당 영화의 연출을 맡은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은 현 러시아 정권에 상당히 비판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인물로 유명한데, 정부에게 미운 털이 박힌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이 정치적 탄압의 일환으로 구속되기에 이르자, 남아있는 배우들과 제작진이 감독 없이 영화를 완성시켜야만 하는 말도 안 되는 촌극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어렵사리 완성된 <레토>는 2018년에 개최된 제71회 칸 영화제에 경쟁 후보작으로 출품되었는데, 덕분에 해당 영화제에서는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을 석방하라는 메시지가 담긴 <레토> 팀의 피켓 시위가 진행되기도 했었다.

 

1980년대 초 소련을 에워싸고 있던 혼돈, 거대한 억압 속에서도 자유를 위해 노래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던 두 명의 뮤지션, 그리고 위대한 두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이 영화에 담고자 했던 저항의 메시지가 궁금하다면, 지금 당장 <레토>와 함께 과거의 레닌그라드로 여행을 떠나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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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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