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삶의 물결 위에 유영하듯 - 생의 마지막 날까지 [도서]

세계적인 무용가에서 가장 자유로운 영혼으로, 명상가 ‘홍신자’의 인생 수업 <생의 마지막 날까지>를 읽고
글 입력 2023.10.16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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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종이 위에서 대화를 시작하기로 했다. 그러니 여기에 담겨 있는 이야기는 삶의 조건들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애썼던 나의 흉터들이다. 


262p 中


 

문득 삶이란 죽음을 수용하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그렇다. 깊은 상실감으로 채워진 유년 시절과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슬픈 이별의 의미, 항상 곁에 머무른다는 자각으로 인한 두려움까지. 삶의 허무로부터 의미와 존재를 향한 집착으로. 여전히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한 내게 죽음 앞에 초연함이란 평생의 과제일지도 모르겠다.

 


자연의 한 가운데에서는 탄생과 죽음이 한눈에 보인다. 생명이 끓어넘치고, 그 곁엔 죽음이 있다. 새로이 일어나는 화산과 한쪽에서 검게 굳는 용암처럼 말이다.


160-161p 中



유난히 미래가 불안해지는 밤이면 끝도 없는 고민에 날이 밝고야 겨우 잠에 들 수 있던 날들이 있었다.

 

지난 과오를 뒤적일수록 무기력해지던 어느 날, 오늘의 단잠이 영원한 숙면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아주 희박한 확률이겠지만 오늘이 내게 남은 마지막 날이며, 더 이상 내게 남은 ‘내일’이 없는 거라면.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예정에 둔 존재들이지만, 언제 어떻게 죽음을 맞게 되는지 완벽히 예측할 수 없고 또 어떤 죽음은 굉장히 갑작스레 찾아온다는 것. 그래서 실은 잠에 드는 이 어두운 밤이 반드시 눈부신 내일 아침으로 이어지리라는 법은 없다는 것을 새삼스레 자각했다.


그 순간 엄청난 공포가 몰려왔다. 모든 사람은 언젠가 죽기 마련이라는 것을 알고 어쩌면 지나치게 죽음을 의식하며 살아온 지난 삶이었지만, 나의 죽음을 진지하게 고려해 본 적은 없던 것이다. 먼 이야기인 줄만 알았던 나의 죽음이 당장 내일에라도 찾아올 수 있다는 생각에 한동안은 잠에 드는 것이 무섭기도 했다.


그다음으로 찾아온 것은 감사였다. 이루지 못한 거창한 꿈이 미련으로 남을 거라는 막연한 예상과는 달리 아주 사소한 것들에 슬퍼졌다.

 

따스한 아침 햇살, 선선한 새벽 공기, 까만 밤을 재운 포근한 이불. 정다운 대화, 실없는 웃음, 혼자서는 외롭지 않던 음악.


너무 당연해서 단 한 번도 고맙다고 느껴본 적 없는 모든 일상이 아주 큰 행복이었음을 깨달았다. 동시에 나의 삶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 순간이었다.


삶을 사랑하게 됐다고 해서 죽음의 공포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애착이 집착으로 번지기도 한다. 소중한 것들을 놓아야 하는 순간이 떠오르면 이제껏 누려온 것들을 감사해하며 덤덤히 수용하기보다는, 그 순간의 존재를 아예 외면하게 된다.


그럼에도 나의 죽음을 자각한 순간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불안한 미래에 이불 속으로 숨기만 했던 내가 일상에 감사함을 느끼며 모든 하루에 최선을 다하기로 다짐하게 했으니까.

 


나는 늘 '지금'이 좋다. 나는 '지금'을 살고 '지금'을 사랑하고 '지금'에 대해서 생각한다. 161p 中

 

나는 노화라는 단어를 성숙이라는 단어로 바꾸어 말하고 싶다. 끝도 없이 늙는 게 아니라 끝도 없이 성숙해지는 것이다. 성숙이라는 과정 속에 삶이 있고, 죽음으로 그 삶이 완성되는 것이다. 165p 中

 


이런 내게 홍신자 선생님의 이야기는 동질감과 동시에 이질감을 느끼게 하며, 결국엔 그녀의 ‘자유'를 닮아가야 한다고 느끼게 했다. 완숙되기에는 한참 모자란 나 역시 삶의 흐름에 따라 수많은 성숙의 과정을 거치고 나면 죽음이라는, 생에 가장 큰 두려움 앞에 초연해질 수 있을까.


지나온 과거에 대한 후회와 막막한 미래를 향한 불안에서 벗어나 오직 '지금'에만 충실한, 완전한 자유의 경지에 이를 수 있을까. 그분의 예사롭지 않은 삶의 여정을 생각하면 지극히 평범한 내가 닿을 수 있는 곳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자연적인 존재 중에서 이토록 자유를 찾는 것은 오직 인간뿐이다. 나무도, 들풀도, 그 어떠한 자연물도 자유를 부르짖지 않는다. 그들은 이미 자유롭기 때문이다.


260p. 에필로그 中



진정한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비워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감정에 솔직해지고 의미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 내가 아는 나는 표현에 서툴고 때로는 지나치게 생각이 많다. 표현하지 못한 감정은 고이게 되고 행동하지 못한 생각은 미련이 된다.


표현을 미루지 말아야겠다. 당장 내일이 없을 수도 있는데 전하지 못한 마음을 후회로 남기고 싶지 않아졌다. 내 곁을 지키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더 많은 감사를 표현해야겠다.



자유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웃음으로, 울음으로, 표정으로, 그리고 말과 글로 모두 쏟아내야 한다.


152p 中

 


정답이 없는 문제에 지나치게 의미를 두지도 말아야겠다. 어떤 생각은 삶을 건설적인 방향으로 이끌기도 하지만 때로는 지나친 생각이 사람을 피폐하게도 만든다.


나에 대한 집착이 너무 많아서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에 의미를 붙이려는 버릇이 있다. 진정한 자유는 결국 '나'라는 관념에서 벗어나는 것일 텐데. 무거운 생각이 나 자신에 과도한 힘을 주게 만든 것은 아닌가.

 

어쩌면 나를 비워내는 것이야말로 결국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 자유의 경지에 이르는, 가장 완성된 상태일지도 모르겠다.



고독한 시간이 있어야 진정으로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법이다.  (중략)  결국 모든 일은 나에게서 시작하고 나에게서 끝이 난다. 주어진 시간과 주어진 감정을 온전히 느끼는 것이 지금을 누리는 가장 자유로운 방식이다. 


214p 中

 

 

홍신자 선생님처럼 일상에서 ‘명상’을 시작해 보려고 한다. 명상이라는 것이 번거로울 것 같지만, 천천히 식사를 하는 것 또한 명상이 될 수 있다고 그분은 말한다. 이른바 ‘식사 명상’이다.


나는 언제 가장 생각이 비워지는가를 떠올려봤다. 수영을 할 때는 잡생각을 거의 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햇수로는 2년 남짓이 지났지만 중간중간에 휴식기를 반복하다 보니 아직도 초보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하지만 여전히 낯선 물속에서 헤엄칠 때면 사소한 일상의 고민부터, 나를 짓누르던 무거운 생각에서 벗어나 나의 호흡과 몸의 움직임에만 집중하게 된다. 까딱 딴생각에 빠졌다가는 코로 물이 들어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수영이 좋은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수영을 할 때야말로 가장 자유로운 내가 된다는 게 가장 좋다.

 


한때는 물살을 거슬러가려고 애썼던, 혹은 저 먼 강 건너편에 이르려고 서둘렀던 사공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 나는 빈 배로 떠있겠다. 더러 바람에 흔들리고 물결에 일렁이겠지만, 바다로 향하는 순조로운 흐름에 무심히 실려 있겠다.


235p 中

 

 

머리가 복잡해질 때는 물속에서 헤엄을 친다는 생각을 하며 나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벗어나 보려고 한다.

 

삶 역시 흘러가는 물과 다름이 없다면, 산 골짜기의 물이 마침내 바다에 닿을 때까지 물살의 흐름에 맞춰 유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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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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