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마음 챙김’의 음악 [음악]

글 입력 2023.10.13 14:33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얼마 전 친구들과 ‘마음 챙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친구들은 저마다의 방식을 주고받았다. 자신의 어떤 고충을 어떻게 헤쳐나갔는지, 그때의 마음을 어떻게 다스렸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마음을 돌보고 있는 듯 보이기도 했다. 그들의 방식과 닮은 듯 다른 나의 마음 챙김 방식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나의 마음은 쉽게 흐트러지고 뭉개진다. 쉽게 망가지는 마음을 위해 단단한 벽을 세워보기도 했고 만능 지우개를 준비해두기도 했었다. 하지만 벽은 공허함만을 남겼고 모든 것을 지우는 만능 지우개는 기억까지 침범했다. 모두 포기에 한 걸음 다가가게 할 뿐이었다. 그래서 부서지면 바로 고칠 방법을 찾아 헤맸다. 마침내 찾은 방법은 계속 ‘듣는 것’이었다. 자연의 소리와 마음의 외침, 그리고 수많은 음악을 듣고 또 들었다.


*


가수들은 때로 팬들이 전하는 사랑이 경이롭다고 말할 때가 있다. 같은 팬으로서 바라보아도 조건 없는 사랑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느껴진다. 그래서 그들의 말을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나는 그들을 통해 마음을 챙긴다. 그들이 나의 마음을 먼저 챙겨준다.


지난달 8일부터 10일까지 총 3일에 걸쳐 터치드의 단독 콘서트 ‘remnant’가 진행되었다. 그들의 신보 ‘Yellow Supernova Remnant’의 수록곡 ‘Shut Down’ 무대를 선보였다. 그리고 공연을 마치고 딱 한 달이 지난 10월 10일에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당시 무대가 공개되었다. 영상은 윤민의 멘트로 시작했고 그의 말 사이에 채도현의 반주가 흘러들어왔다. 마이크를 잡은 윤민은 말을 고르며 차분히 이야기한다.


“존재만으로도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걸 꼭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무한테 사랑받지 못하더라도, 여러분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정말 모든 사람이 여러분이 미워해도 딱 다섯 명만큼은 여러분을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그 다섯 명이 이 노래를 들려드리겠다는 말을 끝으로 미(美), 미(me)의 기준을 남에게 두지 말라는 노래의 전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다른 시선은 중요하지 않아

/가장 너다운 패를 보여줄 시간이야

/미의 기준을 남에게 두지 마

/미래의 날들을 남에게 주지 마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방황했다. 현재 하는 일이 유의미한 결과를 낼지 장담할 수 없었다. 시간 낭비가 아닐지 계속해서 의심해야 했다. 유의미한 결과가 아니라면 실패하리라는 생각을 떨칠 길이 없었다. 사회가 말하는 성공의 기준에 지나치게 목을 맸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이 삶에서 충분히 행복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다. 그런데 통상적인 성공과는 거리가 먼 상황은 나를 가만두지 않는다. 현실에 안주하기 위한 핑계에 불과하다고 의심하게 만든다.


터치드의 ‘Shut Down’은 그 의심을 지워내는 음악이다. 성공의 기준은 나에게 있다고 일러준다. 모든 사람이 나를 미워해도 사랑해줄 사람이 있다. 나의 행보에 말을 얹고 함부로 재단하는 사람들의 입을 틀어 막아준다. 내가 그들의 팬인 이상 나의 기댈 구석은 사라지지 않는다.


최근 또다시 고질적인 무기력증이 도졌다. 할 일이 많다는 말만 입에 달고 지냈다. 미루고 미루다 마감날이 임박해서야 일을 마무리했고 그렇게 체력이 고갈됐다. 그러면 또다시 무기력한 일상에 빠지고 그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유일한 방법은 휴식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무기력하게 보내는 시간 속에서 온전한 휴식을 취하기는 힘들었다. 그래서 택한 방법은 꽉 막힌 마음을 빠르게 허물어버리는 것이었다. 가장 품이 많이 드는 방식이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10월 9일, 심규선의 정규 앨범 ‘#HUMANKIND’가 발매되었다. ‘월령: 上’의 ‘생존약속 生存約束’에 이어 심규선은 또 하나의 기둥을 선물했다. 세 번째로 수록된 ‘Care’가 또 다른 버팀목이 되었다.


무기력을 떨치지 못하고 멍하니 거실에 앉아있었다. 불안정함을 다스리기 위한 수단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하얀 머그잔에 담긴 채 솔솔 김이 올라오는 초콜릿 라테는 여전히 따뜻했다. TV 화면을 채우는 유튜브 피드가 빠르게 움직였다. 볼 영상을 찾으려는 강박에 가까운 움직임이었다. 결국 보고 싶은 영상을 찾지 못한 채 음악의 카테고리로 넘어갔고 최근 발매된 음반 중 심규선의 노래를 재생했다. ‘생존약속 生存約束’보다 직접적이고 그 어떤 기도보다 간절한 외침이 이어진다.

 

 

내가 여기 있을게 무심한 천사들에게

너를 맡겨둘 순 없을 만큼 밤이 기니까

/내가 사랑할게 이제 와 항상 영원히


내가 여기 있을게 지독한 악마들에게

너를 빼앗길 순 없을 만큼 절실하니까

/내가 이해할게 이제 와 항상 영원히

 

 

혼자인 것이 익숙했고 홀로 감내하는 것이 당연했다. 아픈 밤은 길었고 단 한 번도, 그 누구도 나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았다. 심규선은 그런 고통의 밤에서 꺼내어 이해하고 사랑하겠다고 말한다. 그의 다짐이 직접 피부로 스민다. 그 목소리와 가사가 형체 없는 손으로 등을 토닥인다.


뭉개지고 뭉치기를 반복한 마음이 끝내 힘을 잃기 전 찾아온 도움이었다. 혼자가 익숙했던 것만큼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었던 마음을 먼저 알아주었다. 테이블 위에서 식어가던 온기가 어느새 눈가에 맺혔다. 따뜻한 물방울이 볼을 스쳐 내렸다. 시큰해진 코끝을 만지고 일어섰다. 식은 라테를 데워야 했다.


*


결국 이 모든 것이 '괜찮은 마음'을 만든다. 끊임없이 노력해도 끝내 다시 망가지는 마음을 고쳐준다. 이제는 외면해버리고 싶다가도 그들 덕분에 한 번 더 챙기게 된다. 벼랑 끝까지 내몰려도 손을 잡아주는 이들이 있기에 새로운 하루를 살아간다.


나의 마음 챙김이란 이런 것이다. 수없이 반복하며 단단한 마음이 되는 것. 그 과정에서 만나는 은인들에게 항상 감사하며 살아가리라 다짐한다.

 

 

[박서현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