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타인의 고통이라 할지라도 - 괴물B [공연]

괴물 'B'의 육체에 새겨진 산업재해 노동자의 기억에 대한 이야기
글 입력 2023.10.13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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붙임. 괴물B_포스터.jpg

 

 

2019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산실 대본 공모에서 당선되어 2021년 알과핵 소극장에서 초연된 한현주 작가, 손원정 연출, 극단 코끼리만보의 〈괴물B〉가 2년 만에 서강대학교 메리홀 대극장에서 상연되었다.

 

인간도 아니고 성별도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존재인 괴물 'B'는 노동 현장에서 훼손된 몸의 조각들이 모여 탄생한 새로운 종(種)이다. 그의 육체에는 수많은 이들의 고통이 생생하게 서려 있고, 그들의 고통스러운 외침은 시도 때도 없이 ‘B’의 귓가를 맴돈다. 끝을 알 수 없는 이 고통을 끊어내기 위하여 죽기를 결심한 그는 자기 몸을 구성하고 있는 각 부분의 주인을 찾아 죽이려 한다.

 

혼자서는 마음대로 죽을 수도 없는 기구한 ‘B’의 운명은 마치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 산업재해 노동자의 고통을 형상화한 것처럼 느껴진다. 기계에 잘려 나간 손가락과 팔다리, 화재로 인해 타버린 젖가슴, 망가진 폐와 간. 한번 잃어버린 것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고 끔찍했던 사고의 순간에 대한 기억을 함께 엮어 그 자리에 영원한 흉터를 남긴다.

 

그렇게 ‘B’는 훼손된 신체의 각 부위가 유발하는 수많은 기억과 고통으로 몸서리치지만, 그는 학문에서도, 종교에서도 고통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지 못한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의 고통은 개인적인 맥락이 아닌 사회적인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하니까.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무시하는 노동 환경과 문제를 키우지 않기 위해 노동자 개인에게 책임을 회피하는 공장, 파업 중인 노동자들 사이에 분열을 일으키는 기업, 산업재해를 인정하지 않는 법,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가만히 묵인하는 사회.

 

그러나 노동자들은 산업재해를 겪고도 침묵을 강요당했고, 결국 고통스러웠던 그날의 기억이 세상에서 지워지지 않도록 지키기 위해 ‘B’의 육체를 빌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산재의 역사와 산재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온몸에 새긴 하나의 상징이 된 ‘B’는 그들을 대신하여 세상을 향해 이렇게 외친다. “우리의 몸과 이 사회의 인과관계는 누가 어떻게 입증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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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김솔, 제공 극단코끼리만보


 

이번 공연에서는 몸의 움직임과 이미지에 집중하여 산재로 훼손된 몸을 무대 위에 형상화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에 비해 연극 〈괴물B〉의 화법은 상당히 직설적이다. 병상에 누워 있는 손가락의 주인을 찾아간 ‘B’는 1953년에 제정된 근로기준법부터 시작하여 한때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각종 산업재해와 이러한 사건을 통해 새롭게 생겨난 법 조항 등 오늘날 우리 사회의 노동법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낱낱이 살핀다. 마치 뉴스 기사를 읽는 듯한 인물들의 설명적이고 딱딱한 대사는 전혀 연극적이지 않다.

 

그러나 이렇게 일차원적인 방식을 통해 아주 쉽게 전달된 이야기마저도 금방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마는 나를 마주하자, 무섭도록 이기적인 인간의 성질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인간은 어떻게 이토록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한 것일까. 연극 속에 나오는 괴물 ‘B’처럼 수많은 사람의 잊을 수 없는 고통의 순간이 새겨진 육체의 주인이 되어보지 않고서는 그들의 아픔을 온전히 느낄 수 없는 것일까. 그러지 않고서는 결국 잊을 수밖에 없는 것일까.

 

 

정확하게 말하자면, 집단적 기억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집단적 죄의식 같은 그럴싸한 관념들의 일부일 뿐이다. 그렇지만 집단적 교훈은 존재한다. 모든 기억은 개인적이며 재현될 수도 없다. 기억이란 것은 그 기억을 갖고 있는 개개의 사람이 죽으면 함께 죽는다. 우리가 집단적 기억이라고 부르는 것은 상기하기가 아니라 일종의 약정이다. 즉, 우리는 사진을 통해서 이것은 중요한 일이며 이것이야말로 어떤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알려주는 이야기이다, 라고 우리의 정신 속에 꼭꼭 챙겨두는 것이다.

 

- 수잔 손택, 《타인의 고통》

 

 

모든 기억은 개인적이라는 수잔 손택의 말에 의하면 우리는 직접 겪어보지 않은 타인의 고통을 마치 내 것처럼 온전히 느낄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타인의 고통에 전혀 가 닿을 수 없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타인을 나와 같은 땅을 밟고 살아가는 존재로 인식하며 그와의 연결을 느낄 수 있고, 사진과 같은 매체를 통해 그 속에 담긴 타인의 고통을 기억하려고 노력할 수 있다.

 

연극도 마찬가지다. 〈괴물B〉가 무대 위로 불러온 산업재해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객석 바로 앞에서 펼쳐진다. 배우들의 대사와 움직임은 허구적 세계와 현실 세계의 경계를 넘나들며 공연을 보는 관객들에게 끊임없이 현실의 장면들을 떠올리게 한다. 이렇게 연극을 통해 과거에 그들과 같은 노동자였거나 현재 그들과 같은 노동자이거나 앞으로 그들과 같은 노동자가 될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될 우리 사회의 한 면을,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겪은 고통의 무게를 적어도 마주하고 기억하려 노력하게 된다.

 

요즘 나는 매주 구의역으로 향한다. 친구들과 함께 연극을 준비하면서 조금이라도 비용을 줄이기 위해 집에서부터 멀리 떨어진 구의역 근처에 한 댄스 연습실을 빌렸기 때문이다. 몇 달간 연습실을 드나들면서 내 눈앞에서 수도 없이 열리고 닫혔던 구의역의 스크린도어를 떠올린다. 그 문을 지나 개찰구로 향하는 동안, 그리고 그 문을 지나 열차에 몸을 싣는 동안 나는 한 번이라도 7년 전 그곳에서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김군의 얼굴을 떠올린 적이 있었나.

 

 

괴물b 무대.jpg

 

 

연극의 마지막 장면이 생각난다. 각종 노동 현장을 대표하는 복장을 한 노동자들이 무대를 가로지르는 컨베이어벨트 위를 일렬로 걸었다. 죽은 것도, 그렇다고 살아있는 것도 아닌 그들의 느릿한 발걸음에서는 생명력을 느낄 수 없었다. 그들은 한을 풀지 못해 천국으로 가지 못하고 폐공장을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슬픈 귀신의 모습 같았다.

 

자동차 부품을 만들던 공장은 문을 닫고 바삐 돌아가던 컨베이어벨트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지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은 노동자들의 아우성은 멈추지 않는다. 그들의 아우성이, 그들의 고통이 멈추지 않는 한 우리는 절대 두 눈을 떼어서는 안 될 것이며, 그들을 향한 뜨거운 마음 또한 식게 두어서는 안 될 것이다.


연극 〈괴물B〉는 서강대학교 메리홀 대극장에서 오는 10월 15일까지 상연될 예정이다.

 

 

[윤채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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