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비록 삶이 우리를 슬프게 할지라도, 박시하 '우리의 대화는 이런 것입니다' [도서/문학]

그래도 '우리'이니까.
글 입력 2023.10.09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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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는 것은 생각보다 명확히 이유라고 부르기 어려운, 설명하기 힘든 느낌으로 모호하게 '좋다', 라고 와닿을 때가 더 많다.

 

길 한가운데 서서 공기의 온도를 가늠해 보려고 애를 쓰는 기분이다. 그렇게 희뿌연 향기를 맡아두면 어느 날 어떤 순간에 그 마음의 향기를 구별할 수 있게 된다. 그때 시는 이해된다.

 

말이 먼저 찾아올 때가 있다. 읽어둔 시는 내 안에 고요히 있는지도 모르게 떠돌다가 문득 어느 날 갑자기 떠오른다. 그럴 때면 하루종일 그 문장이 왜 떠올랐는지 나를 들여다보게 된다.

 

이런 운명 같은 순간을 경험하다 보면 종일 나를 들여다보는 일도, 문장을 더듬으며 아리송함을 확신으로 바꾸는 일도 즐겁게 와닿는다. 경험하고 나면 입맛이 당겨서 시집을 또 펼치게 된다. 그렇게 시에 빠져든다.

 

도서관에서 빛에 바랜 푸르스름한 표지가 마음에 들어 시집 하나를 들고 왔다. 잠들기 전에 펼쳐 조금씩 맛보던 시. 잘 읽고 싶어서 욕심이 나 낭독도 묵독도 하며 해설을 들춰가며 시를 읽었다. 그래도 여전히 내게 시는 어려웠다. 아쉬움을 안고 잠에 드는 날이 무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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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외우고 있던 문장 하나가 찾아왔다.

 

“우린 단지 죽지 않으려고/ 사랑했던 거란다.” (박시하, 「마리골드」)

 

나는 그날 조금 울었고 그 문장을 하루 종일 곱씹었다. 때로는 완전히 이해되지 않아도 위로로 와닿는 글들이 있다. 나는 이것도 이해의 한 면이라고 생각했다.


박시하의 시는 고요히, 부드럽고 낮은 한숨처럼 찾아온다.

 

슬픔이 가져다 준 침묵 속에서, 맞붙어 있던 입술 사이로 한숨처럼 흘러나온 말 같다. 슬픔으로 이루어진 그의 시는 읽는 이를 말하게 하기보다 침묵하게 한다. 슬픔에 겨워 말할 수 없음이 가져다 준 고요는 시어를 따라 내 마음을 돌아보게 한다.

 

“구체적으로 살고 싶어”하는 시인은 사물이 되어 슬픔에서 조금 벗어나고 싶어 하기도 한다. “언젠가 삶은 사라지게 될 거야/아무것도 슬프지 않을 거야.” 시인은 말한다. (「구체적으로 살고 싶어」)


“내가 가장 슬펐을 때가/검고 탁하다고 해서/ 밤이 밤이 아닐 것을 바랄 수는 없었다.” (「밤」)

결국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이 슬픔을 안고 갈 수밖에 없다는 잔인한 사실을 담담히 말해보는 시인. 행간의 여백을 틈타 슬픔의 수면 위로 잠시 고개를 빼 들어 숨을 쉬어본다.

괴롭고 아파 유서를 쓰게 되기도 하지만, “우린 단지 죽지 않으려고/ 사랑했던 거란다” (「마리골드」)라고 허무하게 읊어도 보지만, 결국 이 발화는 허무를 향하지 않는다. 그것은 시인이 슬픔을 아는 자이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사랑이 우리를 살게 한다는 삶의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픔에 잠겨도 보고 물 위로 떠올라보기도 하며 시인의 시들을 읊는다. “아름다움 쪽으로 시들어” 가더라도 (「꿈―J에게」) 나는 혼자가 아니라 ‘우리’일테니. 슬픔을 읊어주며 독자와 함께 해주는 화자가 있어, 결국 ‘우리’이기에 외롭지 않다.

“너는 슬픈 시를 쓰는구나.
슬픔이 시가 되었으니 안 슬퍼야 할 텐데.
시가 된 슬픔은 어느 다른 나라로

잠시 여행을 간 거야.
어느 날 건강히 다시 돌아올 거란다.”

(박시하, 「일요일」 중)

 

시집을 읽고 있으면 슬픔이 건강히 다시 돌아올 것만 같다. 그러길 바라며, 책을 끌어안아 본다.

 

 

[박하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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