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단문의 대가를 파고드려는 시도 [도서/문학]

작가 김훈의 책에 끊임없이 도전하다
글 입력 2023.10.03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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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4학년부터 꾸준히 추천을 받아왔던 도서가 있다. 인문학 수업을 듣던 도중 선생님께서 책장에 꽂혀 있던 책 한권을 발견하시곤 저 책을 읽어보았냐 물으셨다. 당연히 내가 읽진 않았고 아버지께서 가져다 놓은 책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선생님께서는 그 책을 읽어보고 싶었는데 마침 잘되었다며 일주일간 빌려가셨다. 다행히 우리 집에서 그 책을 읽고 있던 자는 아무도 없었기에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았다.

 

다음 주가 되자 책을 다시 들고 오신 후 꼭 한번 읽어보라고 말씀도 해주신 후 책을 돌려놓으셨다. 사실 책을 빌려가셨던 건지, 아니면 책을 읽으신 후 나에게 주신 건지 기억이 정확하진 않다. 그저 나에게 꼭 한번 읽어보라고 권하셨던 기억이 날뿐이다. 그 책이 바로 김훈의 《라면을 끓이며》이다.

 

 

 

아직 못 이룬 목표


 

김훈 책.JPG

 

 

김훈의 책을 읽으려는 시도는 여러 번 했다. 그러나 문학을 원체 읽지 않는 탓에 김훈의 책은 가깝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가 쓴 대작들 가운데 에세이나 산문 역시 그를 알지 못하는 채로 쉽사리 책을 들기 어렵도록 만들었다. 지금까지도 그렇지만 명확한 이유가 없으면 책을 읽지 못한다. 지금도 그런데 어릴 땐 오죽했을까. 훨씬 즐거운 것들이 널렸는데 굳이 김훈의 책을 읽으려 들 이유가 있진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첫 시도는 《라면을 끓이며》가 아니라 다른 책이 차지했다. 김훈이 쓴 글 중 단연 유명한 《칼의 노래》를 학교 과제로 읽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1학년이 되어서 읽어보는 책이었는데, 그때까지 책을 거의 읽지 않았다. '어린이를 위한~'과 같은 책이야 여럿 읽어보았지만 이것들과 '일반 책'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미숙한 아이들을 위해 살을 잘 발라낸 생선은 생선이 맛있다고 생각해주는 첫 단추이다. 그 이후는 생선 가시를 잘 발라낼 능력을 길러주는 단계이다. 김훈의 책으로 그 단계에 들어섰다는 것을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하다. 그보다 쉬운 책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데 하며 안타깝게 느꼈다. 지금도 어려운 그것을 고작 17살 아이가 읽을 수 있었을까? 다행히 다른 책을 읽지 않으니 비교 대상잉 없어 꾸준히 읽었던 모양이다.

 

아직도 책에 남아 있는 끈 한줄이 160여 쪽을 가리키고 있다. 과제 기한 전까지 열심히 읽었지만 겨우 160쪽 밖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러나 읽어본다면 이 책의 밀도가 상당히 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적은 분량 속에 담긴 의미는 참 깊었다. 아무리 책을 잘 몰랐더라도 그 점 하나만은 상당히 인상깊었던 모양이다. 책의 표현에 대해서 과제 발표 중 흥미롭다는 듯 말했던 기억이 난다.

 

고등학생이 공부를 해야지 다른 걸 할 시간이 어딨겠는가? 물론 공부 외에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을 때 한정으로 사용하는 말이다. 게임은 예외이다. 축구도 예외고... 결국 이런 일들이 자주 벌어지니 책은 당연히 읽지 않았다. 대략 1년 이상은 책이란 단어를 접하지 못한 채 살았다.

 

그러던 중 고등학교 3학년 시절을 보내면서 잠시 시간이 남던 때가 있었다. 오전 중에 있던 공강 시간에는 자유롭게 쉴 수 있었고, 그 당시 도서관에 평상 위 편한 의자가 있어 자주 애용했다. 여럿이  그 의자 - 정확히는 의자보다 라꾸라꾸 침대에 가깝다 - 위에서 잠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지 못한 날은 가금 책장을 뒤져보았다.

 

그러던 중 그 책이 눈에 띄었다. 《공터에서》와 함께 놓여있던 《라면을 끓이며》를 발견하게 되었다. 《공터에서》를 잠시나마 펼쳐 보았지만 흥미가 생기지 않아 결국 다시 덮었다. 곧바로 《라면을 끓이며》를 집어들고 읽어보았다. 어디까지 읽었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그러나 여전히 그의 높은 장벽은 완독만큼을 막아섰다.

 

 

 

어렵지만 도전하게 만드는 거성


 

라면을 끓이며.JPG

 

 

김훈의 어법은 상당히 단순하다. 그가 느낀 것을 짧게 툭툭 던진다. 이런 문단이 어떤 철저한 계산 속에서 나왔다기 보다 그가 내뱉는 말은 애초부터 완성도 있는 모습으로 탄생한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 그의 사고 속도를 따라갈 사람이 많지 않을 거라 생각된다. 다만 그의 머리에서 탄생하는 독보적인 언어를 눈으로 감상할 수 있다는데에 의의를 둘 수 있을 것이다.

 

가만보면 예찬으로 보이지만 이는 엄연히 장단이 나뉘는 작가의 특성이다.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독자의 스펙트럼이 넓을수록 상업적인 이득을 취하기 좋다. 그러나 글을 쓰는 이유가 그것이 아니라면 결코 자신을 내려놓는 일은 쉽지 않다. 김훈은 다행히 그런 길을 벗어나 자신을 지지해주는 거대한 팬층을 형성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이만큼이나 특징적인 글이 유지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에서야 다시 도전할 용기가 생기지만 현생에 치이며 바쁜 삶을 살 때 책을 손에 쥐는 일만큼어려운 일이 없다. 지하철을 타면서 책을 보는게 왠지 모르게 부끄럽다던 친구의 말을 이해하지만 하루 3시간 여 분을 도로 위에서 버려야 하는 나에게 이는 효율의 문제다. 책을 다시 손에 집으며, 특히 김훈의 책을 들고서 다시 바쁜 일상 속으로 돌아가게 된다.

 

 

 

윤지호.jpg

 

 

[윤지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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