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거품 없는 예술을 향하여 [미술]

예술사회학을 지나야 예술철학이 나온다 – 작가편
글 입력 2023.10.01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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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관에 입장한다. 한쪽 벽에 빼곡히 적힌 서문을 바라본다. 이런-저런 담론에 주목하고, 끝없는 문장과 의미 부여들이 이어진다. 누군가는 이를 읽고 이렇게 물을 것이다. ‘아... 그래서 이게 뭔데, 혹은 정말 이런 의미라고?’라고 말이다. 어렵게 복잡한 작품의 의미를 읽고 지나가기만 하는 것은 수박 겉핥기만 하는 듯하다. 전문적으로 쓰인 글들은 스스로 곱씹을수록 생산적인 의미가 많이 생성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곱씹는 과정의 문턱을 넘기까지 오래 걸릴뿐더러, 스스로 인내심을 지니고 관심을 기울여야 가능하다.


그렇다면 '미술과 관련된 글들은 과연 어렵기만 한 것인가?' 이 질문에서 중요한 점은 읽기 난이도보다,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좋은 글인지 아닌지에 더 중점을 두는 것이다. 어렵지만 좋은 글은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반면 어렵고도, 지나치게 포장한 글은 좋은 글은 못될 것이다. 심한 의미 부여로 ‘예술을 위한 예술’이란 과거의 장벽을 쌓는 글이 그 예시가 될 수 있다. 그래서 대체로 '이게 뭐지'라는 의문을 던지고 증발해 버린다.

 

또한 이런 글이 담긴 전시는 관객에게 어떤 것을 느끼라는, 무언의 압박을 줄 때가 많을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질문들에, 서울대학교미술관 전시실에서는 《예술사회학을 지나야 예술철학이 나온다 – 작가편》을 통해, 유쾌하면서도 통찰력 있는 답을 제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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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시는 거대 포장된 이면 말고, 진짜 이야기해야 하는 주제에 대해서 ‘까놓고’ 말하고 있었는데, 각 큐레이션된 작품 중 일부만 소개하고자 한다. 실라스 퐁의 작은 책자같은 작품인 <어휘 – 여러분의 미대 교수님을 이해하고, 인생을 쉽게 만드세요>엔 미대 교수님의 레퍼토리 같은 말들이 쓰여있다.


“You look tired. Did you sleep well?”

“Your breath is full of alcohol, Get rid of your hangover before class.”


모든 미대 교수님이 그렇다는 건 아니겠지만, 미대 교수님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빼곡히 적혀 있는 작은 단어장에 쓰인 말들을 미리 알게 된다면, 인생이 쉬워진다는 제목에 씁쓸한 웃음이 지어진다. 한편 김영규 작가의 <연봉 1억 미술작가 되는 법>이라는 제목의 책들도 베스트셀러의 코너에 있듯이 많이도 놓여 있었다. 크게 제작된 <전국 미술작가 모의평가 문제지 연습문제2> 역시 보기부터 읽으면 더 큰 쓴웃음이 나오게 되는데, 아래는 시험지 내용 중 일부이다. 함께 문제를 보며 답을 생각해 보자.

 

 

1. 한 작가를 가장 짧은 시간에 스타 작가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은?

1) 대통령

2) 전 미국 대형 갤러리 큐레이터

3) 국내 미술품 경매 최고가 기록 작가

4) 한국에서 개인전을 하고 있는 일본 유명 작가

5) 중국의 대부호 기업가


2. 미술 작품의 가격을 결정하는 주요 부분은?

1) 작가의 유명세

2) 작품의 크기

3) 작품의 재료

4) 작가의 생존 여부

5) 그날의 컨디션


8. 예술가 평균 연봉이 낮은 가장 큰 이유는?

1) 상위 5%가 다 해 먹어서

2) 일반인들의 예술품 거래에 대한 무관심

3) 영화와 대중음악에 돈을 다 써서

4) 작가들의 작품 수준이 높지 않아서

5) 작가들이 게을러서

 


심지어 작가는 유튜브에서 위와 같은 주제로 강의하기도 하며, 시원한 풍자를 날리고 있다. “예술은 체계화되는 만큼 소멸한다”라고 쓰인 전시장 문구처럼, 오늘날의 미술은 점점 더 자본주의의 흐름에 종속되어, 그 존재적 힘이 약해져 감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진정한 예술은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서문에서는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인식하는 것이 그것을 넘어서는 첫걸음이다. 예술이 전체주의적인 거대한 짐승의 무리로 변해가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반란의 환상, 주도권의 환상, 자유의 환상을 주는 기술에 포섭되는 모습을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 이 시대의 고통, 강요된 침묵과 도덕적 고립, 사람들의 불행과 접촉면을 잃지 않아야 한다. 지식은 사건(들)의 발생으로 시작해 몸집을 불려 나가는 과정 없이는 공허한 상상에서 시작해 덧없는 환상으로 막을 내리는 여정이 되기에 예술사회학의 경유지들을 지나야 가치의 긴장 안에서 진동하는 사유로 상승하는 길이 나온다."

 

- 심상용 서울대학교미술관 관장

 


즉 예술에서 ‘철학’은 ‘사회학’이라는 필터를 통해서 나와야 하는 듯하다.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이 세계의 사회적 현상들을 배제하지 않을 때, 진정한 예술철학을 수립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삶과 사회에 귀 기울이지 않은 예술철학의 힘은 당연히 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유쾌하지만 생각할 거리가 많은 이 전시는 거품을 걷어내고, 건강히 우러나는 깊은 맛을 선사하고 있다.

 

 

* 위 전시 서문을 참고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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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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