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모두가 되고 싶은 어른이 되는 건 아니다 - 태풍이 지나가고 [영화]

글 입력 2023.09.26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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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지나가고

Afrer the Storm, 2016

 

감독 : 고레에다 히로카즈

배우 : 아베 히로시, 마키 요코, 키키 키린, 요시자와 타이요

 

과거의 영광을 잊지 못한 채 여전히 소설가를 꿈꾸는 사설탐정 ‘료타’는 돈이 될 만한 아버지의 유품을 노리는가 하면, 걸핏하면 도박에, 이혼한 아내의 뒤를 조사하는 등 찌질한 인생을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태풍이 휘몰아치던 밤에 헤어진 가족과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이에 료타는 어디부터 꼬였는지도 모르는 자신의 인생이 다시 풀리지 않을까 희망을 가진다.

 

***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린다.


태풍이 온다고 했다. 어머니는 미리 화분들을 안에 들여 놓았다. 그러다 나무 하나를 가리키며 기억하냐고 물었다. 기억하고, 말고. 내가 심은 나무였으니까.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꽃도 열매도 안 나지만 너라고 생각하고 매일 물을 주고 있어. 그말에 속이 뜨끔했다. 민망한 웃음이 터져나왔다. 어머니는 아랑곳 않고 말을 이어갔다.


"그래도 애벌레가 이 잎을 먹고 자랐단다. 나중엔 나비가 됐지. 꼬물꼬물 하더니 파란 나비가 됐어. 어쨌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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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지나가고>는 태어나 처음으로 극장에서 본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다. 내 고향은 작은 소도시였고, 그런 곳에도 극장은 있었지만 소위 말하는 블록버스터 영화만 상영하기에도 바빴다. 이런 작은 영화는 끼어들 자리가 없었다.


하지만 서울은 달랐다. 사람들의 머릿수만큼이나 영화관도 많았고, 덕분에 이 작은 영화도 당당히 한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컴퓨터, 혹은 핸드폰으로만 보았던 최애 감독의 영화를 거대한 스크린을 통해 볼 수 있다는 것.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 순간을 절대로 잊지 못할 것이다.


물론 이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최고작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렇지만 그의 수많은 필모그래피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세계라는 것만큼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개봉 후 벌써 7년이 지났지만 그 세계는 여전히 반짝이고, 따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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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태풍이 지나가고>는 감독의 전작인 <걸어도 걸어도>와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에 뿌리를 두고 있는 작품처럼 보인다. 우선 주인공의 이름(료타)이 똑같다. ‘나비’와 ‘자동차’와 ‘집’으로 이어지는 디테일도 똑같이 등장한다.


인물을 입체적으로 바라보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시선 역시 그대로다. <걸어도 걸어도>에서 아버지는 준페이가 목숨을 바쳐 구해낸 요시오가 별 볼일 없는 직업을 가진 청년이 되자 ‘저런 놈 때문에 내 아들이 죽다니’라며 한탄했다. 그런 아버지와 달리 요시오에게 다정했던 어머니 역시 준페이의 기일마다 찾아오는 요시오가 괴로워 보인다며 그만 부르자는 료타의 말에 ‘그래서 부르는 거야’라며 잔인한 속내를 드러냈다.


한편 <태풍이 지나가고>에서 료타는 아버지의 유품을 훔치거나, 어렵게 번 돈을 도박으로 족족 날렸다. 아들에게 신발을 사주기 위해 일부러 흠집을 내며 가격을 흥정하기도 했다. 직원들을 살뜰히 챙기던 흥신소 소장은 조사일수를 부풀려 고객들에게 더 많은 돈을 뜯었고, 사람 좋아 보이던 료타의 어머니 역시 아무도 보지 않을 땐 몰래 쓰레기를 버렸다.


이렇듯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세계 속 인물들은 적당히 선하고, 적당히 악하다. 어떻게 보면 현실 세계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과 퍽 닮아 있다. 우리를 닮은 이들이 살아가는 세계를 지켜보며 관객은 남겨진 료타네 가족이 태풍이 지나가고 어떤 변화를 맞이할지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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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그렇다고 해서 <태풍이 지나가고>와 <걸어도 걸어도>가 같은 곳을 바라보는 영화라는 건 아니다. 두 작품 사이에는 상당한 온도차가 존재한다. <걸어도 걸어도> 속 료타는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야 어머니가 궁금해했던 스모 선수의 이름을 떠올렸지만 그걸 어머니에게 알려주지는 않았다. 어머니 역시 뒤늦게 떠올린 스모 선수의 이름을 아들은 물론, 곁에 있던 남편에게조차 알 것 없다며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했다.


반면 <태풍이 지나가고>는 피겨 선수의 이름을 기억해 낸 어머니가 곧바로 딸에게 그 이름을 알려주며 시작했다. 말해주지 않는 것과 말해주는 것. 두 작품의 차이는 바로 거기서 나온다. 단지 이름을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서늘하던 전작과 달리 <태풍이 지나가고>는 봄바람처럼 따뜻하다. 그리고 이 훈풍은 함께 뼈대를 이루고 있는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과 이어진다.


영화 속에서 료타는 지질한 삶을 살고 있다. 잘 나가는 소설가를 꿈꿨으나 작업은 지지부진했고, 가족은 뿔뿔이 흩어질 위기에 처했다. 그런데도 그는 아버지의 유품을 훔치려 하거나, 도박에 빠져 돈을 족족 날리는 등 철없는 모습을 보였다. 점수를 따도 모자랄 상황에 아내와의 약속에도 매번 늦었다. 그런 그의 모습이 얼마나 한심해 보였는지 오죽하면 그의 고객(?) 중 하나였던 한 고등학생은 ‘당신 같은 어른이 되기 정말 싫어’라며 소리쳤다.


료타의 어머니 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 젊었을 땐 교사를 꿈꿨지만, 그 꿈을 이루기는커녕 40년 넘게 좁은 연립주택조차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들 내외의 재결합을 바라며 일부러 자리까지 만들었으나 그 바램 역시 이뤄지지 않았다. 하물며 평생을 고생만 시켰던 남편조차 잊지 못했다. 어떻게 보면 두 사람의 삶은 실패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리고 그 사실을 자신들 역시 잘 알고 있다는 듯 료타와 그의 어머니는 버릇처럼 ‘정말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를 중얼거렸다.


그런데 정말로 그들은 실패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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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당신 같은 어른이 되기 싫다는 한 고등학생의 말에 료타는 ‘되고 싶은 어른이 된다고 쉽게 생각하면 큰 오산이야’라며 항변했다. 모두가 되고 싶은 어른이 되는 건 아니다. 이 말은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각본을 쓸 때 맨 처음 적었던 문장이기도 하다. 따지고 보면 꿈을 이루지 못했다고 해서 그 삶을 실패했다고 말하는 건 가혹하다. 당장에 나만 하더라도 어린 시절 꿈꿨던 것과 다른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그렇다. 그렇다면 우리는 모두 실패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걸까?


영화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은 가족의 재결합을 위해 화산이 폭발하기를 바라는 소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결정적인 순간에 소년 스스로가 소원 비는 걸 포기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자세히 설명하진 않지만 아무래도 소년은 화산이 폭발하면 다른 사람들이 고통받을 수 있다는 걸 고려한 것 같다. 다시 말해 나의 꿈이 타인의 꿈을 다치게 할 수 있으니 그 꿈을 이루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럼 소년의 삶을 실패했다고 봐야 할까? 아니, 오히려 그 반대다. 꿈을 이루진 못했으나 소년은 한뼘 더 성장했다. 더 나은 사람, '어른'이 되었다. 


<태풍이 지나가고>는 어떠할까. 이 영화의 결말도 크게 다르지 않다. 태풍은 가족이 한 자리에 모일 기회를 주었지만, 결국 료타와 아내가 재결합하는 일은 없었다. 여전히 소설은 한 편도 쓰지 못했다.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지만 그게 이 영화가 새드엔딩이라는 뜻은 아니다.


태풍이 지나간 후에 세상은 이전보다 더욱더, 맑게 반짝인다. 태풍의 의의는 깨끗이 정리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태풍에 날아가버린 복권과 함께 료타는 미련 가득했던 과거의 자신 역시 바람에 실어 날려 보냈다. 움켜쥔다고 모든 걸 가질 순 없다. 손을 놓았을 때 비로소 들어오는 것들이 있다. 가족은 헤어졌고, 여전히 소설도 쓰지 못했지만 료타에겐 아직 많은 날이 남아있다. 아내와 아들을 배웅한 후, 집에 돌아가면 그는 전에 거절했던 만화 원작의 소설을 써볼 것이다. 그래서 돈을 벌어 아들을 만나고, 놀이터에서 보냈던 밤과 같은 추억을 한번 더 만들 것이다.

 

 

"꽃도 열매도 안 나지만 너라고 생각하고 매일 물을 주고 있어."

"말씀 얄밉게도 하시네.."

"그래도 애벌레가 이 잎을 먹고 자랐어. 나중엔 나비가 됐지. 꼬물꼬물 하더니 파란 나비가 됐어."

"어쨌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있어."

 


꿈은 삶의 충분 조건이지, 필요 조건은 아니다. 꽃도, 열매도 나지 않지만 괜찮다. 꿈꿔왔던 삶은 아니지만 그래도 괜찮다. 귤나무 덕분에 애벌레는 나비가 되었으니까. 어쨌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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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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