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내가 공연을 볼 때 [사람]

글 입력 2023.09.03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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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이 될 때까지도 공연에는 관심이 없었던 나였다. 뭐든 담백한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연극이나 뮤지컬은 마치 조미료를 듬뿍 넣은 음식 같았다.


그러던 내가 스물한 살이 되었을 때, 친구가 조심스럽게 연극 한 편을 같이 보지 않겠냐고 물어왔다. 분명 내가 좋아할 거라는 친구의 말에 혹해 함께 그 연극을 보러 갔다.


연극은 스릴러 장르였고, 나는 그 작품을 정말 인상 깊게 봤다. 예측 불가능한 전개, 한눈에 들어오는 작은 무대 위에서 모든 것을 표현하는 연출, 순식간에 몰입하게 만드는 배우들의 연기. ‘내가 그동안 공연에 대해 가져왔던 생각은 선입견에 불과했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들었던 작품이었다.


그 뒤로 나는 공연에 빠졌다. 하지만 매일 학교에 다니며 이것저것 하기에도 빠듯했던 내 시간은 공연 관람에 선뜻 그 자리를 내어주지 못했고, 새로 나오는 공연 포스터들은 그렇게 그림의 떡이 되었다.


치열했던 3년간의 대학 생활 이후 과감하게 휴학의 길을 선택했다. 학교생활에 치여 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해보리라는 다짐으로 휴학을 시작한 나는 그간 못해왔던 공연 관람을 하기 시작했다.

 

*

 

혜화역에 내려 출구로 나오면 다양한 극장들이 나를 반긴다. 극장 앞에 붙어있는 공연 포스터들은 호기심을 자극하며 시놉시스를 찾아보게 만들고, 이곳저곳 두리번거리다 보면 어느새 내가 가야 할 극장 앞에 다다른다. 티켓을 받아 특유의 나무 냄새가 나는 공연장 안에 들어가 착석한다.


거의 일주일에 한 번씩 이 루틴을 거쳐 공연을 보다 보니, 극 관람을 하는 날의 내가 특별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집에서 1시간 30분 남짓 걸려 부지런히 혜화에 가고, 도착하면 티켓을 수령하기 위해 줄을 서 꽤 긴 시간을 기다린다. (그리고 오래 앉으면 허리가 아픈 객석에 앉아 2시간가량의 공연을 관람한다.) 이 모든 과정이 웬만한 열정과 애정 없이는 자주 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됐다.


나도 모르는 새에 나는 공연을 정말 애정하게 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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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극을 보고 난 뒤, ‘아, 재밌었다’에만 그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관람 중에는 배우들의 대사, 가사를 정확히 듣기 위해 노력했고, 공연을 본 후에는 프로그램 북에서 연출, 음악, 조명, 의상을 담당하신 분들의 인터뷰를 꼼꼼히 읽어보았다.


무대 위의 크고 작은 요소들 하나하나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깨달아 가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흔히 말하는 ‘덕후’가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렇게 극 하나를 샅샅이 살피고 나면, 지인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이 느낀 것과 이해한 것들이 듣고 싶어진다. 같은 경험을 공유하고, 그것으로써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은 큰 기쁨이자 소중함이니 말이다.


여담이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티켓값이 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비싼 돈을 내고 봐도 나올 때는 기분 좋게 나올 수 있을 만큼 좋은 극을 보여줘야 할 것 같다는 약간의 부담감이 생겨나는 요즘이다.

 

*

 

나는 공연을 ‘휘발성 예술’이라 정의하고 싶다. 공연은 영화나 드라마처럼 언제든 다시 볼 수 있는 예술이 아니라, 오롯이 내 기억에 의존하는 예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휘발의 정도를 가름하는 것은 ‘내가 어떤 장면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는지’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덕분에 나는 ‘순간이 주는 소중함’이라는 말을 항상 마음속에 새겨 두고 있다.


글을 올리는 오늘도 나는 공연을 보러 간다. 이 플랫폼에 정식으로 첫 발걸음을 내딛게 해준 소중한 뮤지컬 <와일드 그레이>가 어느새 마지막 공연을 맞이해 보러 가게 되었다.


나는 오늘도 1시간 30분 동안 혜화에 가고, 2시간 동안 딱딱한 의자에 앉아 공연을 보는 애정 가득한 열정을 발휘할 것이다. 하지만 오늘의 공연이 끝나면 이 모든 순간이 그리워질 것만 같다.


오늘만큼은 집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소중히 여기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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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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