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개강을 앞두고 [문화 전반]

휘황찬란한 계획들과 소박한 목표
글 입력 2023.08.31 0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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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강이 코앞이다.

 

시간표를 짜고, 수강 신청을 하고, 높은 확률을 벗어나지 못해 조금은 일그러진 시간표를 갖게 됐다. 이제 눈을 몇 번 감았다 뜨면 나는 교수님과 한 공간에서, 눈을 반만 뜬 채 무언갈 머릿속에 집어넣게 되겠지? 와, 기대가 마음 저편에서 샘솟는다.

 

벌써 5번째로 하는 개강이건만, 늘 기대를 놓지 못하고 이것저것 계획을 세운다. 이번 학기에도 어김없이 계획을 세웠다. 외국어 공부하기, 운동하기, 책 많이 읽기, 글 많이 쓰기, 강의 성실히 따라가기. 이번 학기에는 여기에 교환학생 준비까지 더해져서 조금 더 빡빡한 계획이 되었다.

 

매번 실패하면서도 계속해서 계획을 세우는 건 ‘더 나은 나’ 때문이다. 더 건강한 사람이 되고 싶고, 더 똑똑한 동기가 되고 싶고, 더 상냥한 선배가, 더 친절한 한국인이 되고 싶다. 머리가 어느 정도 크고 나서부터 나는 항상 그랬다. 잘 되진 않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요즘같이 우울한 시대에 ‘더 나은 나’를 꿈꾸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더 나은 나’ 따위의 꿈은 하늘로 훌렁 던져버리고선 눈앞의 이익만을 좇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나와 다른 사람들을 향한 악의가 너무 짙어서 그들에게 해가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려는 사람도 너무나 많다. 직업의 소명과 모두가 바라봐야 할 대의를 철저히 등지는 사람들. 나라 안에서 그런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일하고 있다.

 

요지경이 된 나라 안에서 살다 보니 나까지 팍팍하고 인색한 사람이 되는 것 같다. 복지 예산을 삭감하고, 대학 등록금 인상을 예고하고, 외국인 노동자의 이동을 제한하고, 장애인 이동권 시위를 폭력으로 진압하고, 치안을 명목으로 실탄을 허가하고, 환경보호를 나 몰라라 하고, 독립운동가를 깎아내리는 모든 발언과 행보들에 너무나 화가 나서 오히려 기력이 없다. 내가 무엇을 해도 바뀌지 않을 저 사람들의 존재가 괴롭다.

   

그래도 나는 ‘더 나은 나’를 생각하며 계획을 세운다. 각박하고 파괴적인 세상의 꼴에 ‘더’는 조금 희미해졌을지언정, 그 뒤의 형용사는 형형히 빛나는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어두운 세상에서도 환히 눈을 뜨고 싶다. 그래서 이번 학기의 새로운 계획에는 교환학생 준비 외에도 두 가지를 더 넣어보았다.

 

하나는 매일 하나씩 뉴스 감상문을 쓰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작성자의 요지와 비판점을 써보려고 어설프게나마 양식을 만드는 중이다. 더 나아간다면 나의 개인적인 감상을 적거나 관련된 뉴스를 더 찾아 달아두는 것까지 가능하지 않을까? 고등학생 시절 가끔 했던 활동인데, ‘스스로 뉴스를 보는 눈’을 키우라던 선생님이 무척 강조하셨던 기억이 난다. 지금이야말로 그 눈이 가장 필요한 시점이다. 스스로 생각하고 날카롭게 비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머지 하나는 수영 배우기이다. 새로운 무언갈 시도하며 설렘으로 우울을 밀어내보려 한다. 돌아오는 9월부터 나는 어렸을 적 코로 물을 먹는 것이 무서워 중간에 포기했던 수영에 다시 도전한다. 늘 생각만 했던 수영 강습을 드디어 신청했다. 수영용품들이 생각보다 비싸 쩔쩔매는 중이지만, 물에서 마음껏 헤엄칠 내 모습을 상상하니 슬그머니 미소가 지어지는 것 같다.

   

이번 학기의 계획들은 비장하고도 가볍다. 늘 피하던 학습량 많은 강의를 조심스럽게 시간표에 담았고, 뉴스를 냉정하게 분석할 눈을 키울 감상문을 쓸 계획이다. 거기에 틈틈이 복잡한 출국 서류들을 준비해야 하니, 쉽지 않은 학기가 될 테다.

 

그래도 나름의 즐거움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 수영 강습을 냅다 신청했고, ‘1시 전에 자기’라는 목표를 쓴 포도알 칭찬 스티커 판을 벽에 붙였다. 아직 하나밖에 붙지 않은 포도알 스티커가 언제쯤 풍성한 포도 한 송이가 될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잘 익은 포도를 보면 기분이 좋을 것이라는 건 분명하다.

 

정신없이 휘몰아칠 한 학기가 불안하고, 뒤로 가는 세상에 우울하다. 그러나 바쁜 나날들에 하나하나 칭찬스티커를 붙일 설렘이, 언젠간 나에게 힘을 줄 분노가, 빼놓지 않고 기억할 수많은 순간이 나를 이끌어 줄 것이다.

 

후회하지 않을 한 학기가 되기를!

 

 

[박주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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