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방황하는 현대인들을 위한 귀가 프로젝트 - 고잉홈프로젝트: 심포닉 댄스

글 입력 2023.08.12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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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홀한 모험의 세계로 이끄는 클래식 선율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한국인 음악가와 한국을 사랑하는 세계 음악인들이 모여 환상적인 하모니를 이룬 고잉홈프로젝트가 2023년 8월 1일, 2일, 3일 롯데콘서트홀에서 각각 <신(新)세계>, <볼레로: 더 갈라>, <심포닉 댄스>라는 이름으로 성공적인 공연을 마쳤다. 이중 나는 8월 3일에 진행된 <심포닉 댄스> 공연을 관람했다.


공연은 중간 휴식 시간을 두고 크게 2부 구성으로 나뉘었다. 1부에는 이사크 두나옙스키의 '그랜트 선장의 아이들' 서곡과 나이젤 웨스트레이크의 '스피릿 오브 더 와일드' (오보에를 위한 협주곡)이 연주되었고, 2부에는 공연의 제목이기도 한 라흐마니노프의 최후작 '심포닉 댄스'가 연주되었다. 올해로 라흐마니노프의 탄생 150주년과 서거 80주년을 맞아 젊은 나이에 전 세계인의 인정을 받은 지휘자 발렌틴 우류핀이 '심포닉 댄스'의 지휘를 맡았다.

 

처음 연주된 '그랜트 선장의 아이들' 서곡은 무더위에 지쳐있던 나의 정신을 일깨워 클래식의 세계로 인도했다. 어수선한 몸과 마음 상태가 한순간에 정리되고 곧바로 연주자들이 빚어내는 강렬한 선율에 빨려들어갔다. 건조한 일상에서 역동적인 모험의 세계로 초대된 기분이었다. 

 

이어진 '스프릿 오브 더 와일드' (오보에를 위한 협주곡) 연주도 인상적이었다. 클래식 연주를 생각하면 대표적으로 피아노나 바이올린, 첼로 정도만 떠올렸던 나로서는 오보이스트가 전면에 나서는 공연이 특별하게 다가왔다. 

 

같은 곡이라도 음원으로 들을 때와 라이브 공연으로 들을 때 다른 이유는 클래식 공연이 단순히 청각적인 예술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라이브로 듣는 클래식은 마치 음악에 영혼을 내맡긴 것처럼 열연하는 연주자들의 모습까지 포함해 청각적인 요소는 물론 시각적인 요소까지 만족시키며 완성된다. 이 공연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오보이스트 함경은 훌륭한 연주는 물론 역동적인 제스처로 수많은 악기가 현란한 선율을 빚어내는 와중에도 강렬한 존재감을 자랑했다. 

 

휴식 시간이 주어지고, 이 공연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라흐마니노프의 '심포닉 댄스'가 발렌틴 우류핀의 지휘 아래 연주되었다. 라흐마니노프는 내가 처음 클래식에 관심을 가졌을 때 입문용으로 열심히 들었던 작곡가다. 그만큼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은 입문자가 시도해도 만족스러울 정도로 듣기 편하다. 

 

'심포닉 댄스'는 고잉홈프로젝트를 통해 처음 듣는 곡이었다. 그러나 역시나 낯섦은 전혀 느끼지 않았고, 오랫동안 즐겨 들었던 것처럼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마냥 친숙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곡의 분위기가 전환되는 지점이 아주 다양해서 40분이 넘는 곡을 듣는데도 전혀 지루할 새가 없었다. 고요했다가도 격동적으로 변하는 '심포닉 댄스'를 들으며 이 곡이 어떤 곡인지 섣불리 판단하려 했던 시도가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집을 잃은 우리에게 필요한 고잉홈프로젝트


 

공연이 열리는 롯데콘서트홀에 도착하기까지 나의 기분은 썩 좋지 않은 상태였다. 별다른 일은 없었고, 그날 날씨도 좋았다. 나의 기분은 순전히 거짓이라고 믿고 싶은 뉴스들 때문이었다. 

 

당연한 소리지만 뉴스가 다루는 내용은 충격적이고 이례적이어야 한다. 그것이 뉴스의 본질이라는 것을 알지만, 최근 몇 년은 그 내용이 대부분 부정적이고 지나치게 자극적이었다. 공익의 목적은 보이지 않고 관심 끌기에만 연연하는 언론의 행태에 혐오로 얼룩진 시민들은 열렬하게 호응했다. 

 

이러한 사회 현상에 진작에 체념했지만, 지난 몇 주 동안 접하는 뉴스 소식들은 양상이 달랐다. 놀랍고 충격적이었지만 새삼스럽지는 않았다. 하나의 원인으로 촉발된 것이 아닌, 오랫동안 곪은 한국 사회의 병폐가 기어코 모습을 드러낸 사건들이 대다수였다. 

 

절망적인 뉴스를 보면 이전엔 분노를 느꼈지만, 요즘엔 무력감이 더 크게 느껴졌다. 더 나은 방향으로 세상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데, 그 노력이 무색하게도 세상은 따라잡을 수도 없을 만큼 빠르게 악화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런 세상에서 나는 '어차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는데 뭘'이라는 핑계로 최선을 다해 외면했지만, 그럴수록 나 자신에 대한 환멸감만 더해질 뿐이었다. 

 

공연장에 도착하고 연주가 시작되는 순간, 끈적한 무더위처럼 달라붙은 무기력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환멸과 무력감과 분노에 몸서리치던 나는 순식간에 연주자들이 초대하는 클래식의 세계에 빠져들어갔다. 온몸을 바쳐 연주하고 지휘하는 그들 덕분에 잠시라도 비참한 현실을 잊을 수 있었다. 

 

연주자 한 명 한 명을 유심히 지켜보면서 예술의 유용함에 대해 생각했다. 예술은 실용과 정반대 지점에 있다. 예술은 인간을 배부르게 만들지 못한다. 예술을 향유하지 않아도 사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그래도 나는 그런 단기적인 실용성은 없더라도, 장기적으로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한다고 믿으며 예술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왔다. 그러나 갈수록 더욱 처참한 소식만 전하는 뉴스들이 그러한 예술가들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것 같아 침울했다.

 

공연 내내 진지하게 분석하려는 마음은 내려두고 편안하게 즐기는 마음으로 감상했다. 눈을 감기도 하고 다른 생각에 젖어보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뜨고 연주자들을 보며 지금의 무대를 위해 쏟은 그들의 노력이 절대 무용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지금 연주를 듣는 내가 잠깐의 평화를 누렸으니 말이다. 

 

공연이 끝나고 집에 가는 길이 개운했다. 이런 사소한 일상의 행복이 소중하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현실의 풍파에 치이다 보면 자꾸만 잊게 된다. 예술의 역할은 그 당연한 사실을 일깨워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라흐마니노프의 '심포닉 댄스'를 들으며 이 글을 쓰는 지금, 그날 공연에 대한 감상이 명료해졌다. 나는 그 공연이 참으로 고마웠다. 고잉홈프로젝트 덕분에 '일상'이라는 집에 돌아올 수 있었으니 말이다. 

 

 

[진금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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