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일본에 가다 2

나라와 오사카, 그리고 다시 한국으로
글 입력 2023.08.15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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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차 : 나라


 

오전 일정이자 교토에서의 마지막 방문지인 여우신사를 가기 위하여 아침부터 캐리어를 끌고 길을 나섰다. 밖을 나오자마자 훅 불어오는 강한 열풍과 그것이 머금은 물기가 벌써부터 땀이 날 것을 예고하였지만, 그것도 나름대로 여행에서의 설렘이라 생각하며 걷기 시작하였다.

 

아침 출근길은 일본이나 한국이나 비슷하게 각자의 째깍거리는 시간으로 바빠보였다. 전날 오사카에서 교토를 갈 때보다는 교토 시내를 경유하는 지하철이 훨씬 생기있어 보이는 차이점은 있어서, 미소를 띄고 주변을 둘러보며 사람들의 삶을 구경하였다.

 

특히나 인상 깊었던 것은, 한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학생들이 웃음을 가득 지으며 친구들과 함께 등교하는 모습이었다. 많이 더워보임에도 교복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학생들이 무언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는지 활짝 웃으며 서로를 바라보고 쉴새없이 입을 움직이는 모습을 보니 참 어여쁘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청소년이 주는 싱그러움과 그것의 순수함이 얼마나 아름다워 보이는지, 학생들은 알까 싶어서 눈을 떼지 못하고 지나갔다.

 

여우신사를 올라가기 위하여 캐리어를 끌고 언덕을 오르니 정말 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그 날은 검은 상의와 흰 색의 치마를 입었는데, 가뜩이나 상의가 빛을 다 흡수하는데 하의의 속치마가 걸리적거려서 피부를 짓무르게끔 하는 것이었다. 너무 힘들어서 결국 신사 입구까지만 올라가고 발걸음을 돌렸는데, 그 앞에서 사진을 남기기 위해 거친 숨을 몰아쉬고 포즈를 취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니 대단한 것을 넘어 경이로운 감정이 들 정도였다.

 

복잡한 철도 노선 덕분에 그늘이 하나 없는(그 때 크게 깨달은 것은, 아무리 바람이 따뜻해도 빛을 차단하는 그늘이 있다는 것자체가 더위를 삭히는 데에 매우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뙤약볕 아래서 땀을 훔쳐가며 캐리어를 끌었는데, 눈이 부시도록 빛나는 햇살과 그것을 받아 윤슬이 반짝이는 천이 옆에 흐르고, 반대편엔 오밀조밀한 가정집들이 쪼르르 나열되어 있는 게 우리나라의 도시 혹은 시골과는 다른 특유의 감성을 불러일으켰다. 전반적으로 채도와 명도가 낮지만 분명하게 자신이 각자의 모양으로 살아있음을 알리는 듯했다. 킨테츠 나라역을 가기 위해 간 역에도 여우가 그려져 있어 바이바이, 손 인사를 하고 나라로 이동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일본의 풍경은 정말 애니메이션을 볼 때나 볼 수 있었던 시골 풍경이었다. 푸른 논밭이 흑빛을 내뿜는 청색 기와와 회갈색의 벽들의 집들을 드넓은 자연의 품에 안고 있었고, 하늘은 자신의 푸름을 하얀 뭉게구름으로 부끄러운 듯 가리려 하였다. 문득 히사이시 조의 'summer'가 떠올라서, 여우씨와 함께 풍경을 쳐다보며 들었다. 뭔가 장엄한 노래도 어울릴까 싶어, <모노노케 히메>의 재앙신 테마도 들어보았으나 그 조촐하면서도 아기자기한 것을 살리기엔 역부족이었다. 차라리 <이웃집 토토로>의 '바람이 지나가는 길'을 들어볼 걸,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나라에서의 일정은 단순했다. 먼저, 지하철 코인락커에 짐들을 모두 보관한 후, 역 출구를 나오자마자 바로 보이는 나라공원에 방문한 후, 바로 근처에 있는 도다이지에 방문하는 것이 끝. 나라공원은 사슴이 유명한데, 사슴이 얼마나 귀엽겠나 싶어 더위에 땀을 훔치고 있었던 그 순간, 눈에 보이는 사슴 경고 표지판. 드디어 뭔가 본격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필자는 왜 그 때 사슴의 귀여움을 얕잡아보았는지 아직까지도 민망하다.

 

사슴들은 정말 너무 귀엽게 걸어다니며 관광객들의 손에 들린 먹이를 뺏으려 하거나, 그늘에 앉아 눈을 게슴츠레 하게 뜨며 되새김질을 하거나, 자고 있었다. 그 충격적인 귀여움에 놀라 먹이를 사서 나눠주었는데,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슴들이 바로 날 쫓아오기 시작했고 급기야 치마를 물어뜯기까지 해서 겁에 질려버렸다. 급하게 언덕 위로 올라가 피신(?)하였지만 사슴들도 똑같이 그것을 올라와 주둥이를 내 몸에 쿵쿵 박아대서, 먹이를 순식간에 다 빼앗기고 말았다. 아, 사슴에게 협박당하는 기분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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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먹이를 사고선, 사람들이 어떻게 먹이 배부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사슴들과 교감하는지 관찰했다. 일단 천천히 사슴들을 유인한 후, 머리에 손을 대면서 조금씩 공평하게 먹이를 나눠주었다. 그것을 따라해보니 사슴 개체와 눈을 마주치는 것도 가능해서, 그 때서야 사슴의 눈이 얼마나 맑고, 속눈썹이 길게 내려앉고, 우아하게 품위를 유지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도다이지를 가는 길목에 계속 사슴들이 있었는데, 아기 사슴의 경우 엄마 사슴과 함께 있어서 그들의 경계를 받을 뿐만 아니라, 그것들도 스스로 겁이 많아서 멀리서 눈을 마주치는 걸로 교감할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이기에 천천히 도다이지로 갔는데, 어떻게 된 것이 절 바로 근처까지도 사슴이 사람들에게 먹이를 달라고 쫓아다니고 있어서 사슴들의 먹이를 향한 강한 욕망을 확인할 수 있던 시간이었다.

 

우리나라 절은 대부분 산 근처에 있고 규모가 작아서 그 안에 계시는 본존불 또한 신이라기보단 일상 속에서 가르침을 주는 존재와 같은 크기다. 그래서 필자는 어마어마한 규모로 위압감을 주는 부처상을 도다이지로 처음 보았다. 고개를 들고 들어도 정말 커다란 조각상은 양 옆에도 역시 커다란 조각상들이 있어서, 정신적으로 경건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고대부터 지금까지의 일본인들도 아마 그 거대함에 자신의 간절한 불심이 전달되길 바라며 도다이지에 갔을 것이다. 그 불을 중심으로 한 바퀴를 크게 돌았는데, 어느 각도에서 보아도 그 위대한 불상이 전혀 가려지질 않아서 계속해서 놀라웠다. 그리고 또 하나 재밌었던 것은, 그곳의 조각상들이 빨간 망토 같은 것을 두르고 있었는데, 청수사에서도 그 모습을 보았다는 것이다. 무언가 말하고자 하는 게 있을까, 싶어 궁금증으로 남겨두고 왔다.

 

거대한 부처가 자그마한 불생들을 바라보는 숭고함에 계속 감탄하다 보니 지칠 대로 지쳐버려서, 당장 시원한 물과 밥을 먹고 싶었다. 연거푸 자판기에서 칼피스를 뽑아 마셔가며, 어지러울 때마다 그늘에서 잠시 쉬어가며 도착한 식당은 상호조차 '카레'인 작은 카레집. 동네 맛집 느낌이 절로 났던 그 곳은 소박한 일본 가정의 느낌이 물신 풍기던 곳이었다. 아기 사진을 걸어두고, 오래된 수납장이 있던 그 곳에서 뵌 두 노년의 여성분들은 정말 친절하셔서, 얼음물을 계속 들이키면서도 그들의 서비스에 계속 감사함을 표했다. 스몰 사이즈의 카레를 시킨 필자는 자고로 자기가 시킨 음식은 최대한 다 먹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절반 분량을 남길 만큼 양이 정말, 정말 정말 정말 많았다. 여우씨가 미디움 사이즈를 시킬 때 리뷰에서 본 '밥 3~4공기'가 떠올라 계속 우려했는데, 역시나 나온 음식을 보고 여우씨도 당황할 정도였다. 나는 밥의 고슬고슬한 구수함이 좋았고 여우씨는 감칠맛이 끝에서 계속 도는 카레 소스를 좋아했기에 그것은 우리가 일본에서 경험한 가장 맛있었던 식사에 손꼽힌다.

 

많은 체력을 쏟고 난 우리는 짐을 다시 챙기고(여담이지만, 코인락커를 처음 이용할 때 서비스의 나라 일본 아니랄까봐, 노년의 남성분께서 도와주시기 위해 서계시길래 부담을 느낀 우리는 종종걸음으로 자리를 피했다.) 오사카로 다시 돌아왔다. 도톤보리를 걸었던 첫 번째 날과는 좀 다른 코스로, 우메다 지역을 가보기로 했다. 정말 쉬고 싶었지만, 우메다 백화점이 문을 닫기 전에 가려면 당장 출발해야 했다. 그곳에서 날 가장 감격케한 것은 역시, 지브리 샵이었다. 아동용 토토로 모자를 보고 왜 성인용은 없는지 깊게 탄식하였을 뿐만 아니라 여러 종류의 손수건을 보면서 정말 소장하고 싶다는 강력한 소비욕이 생겨버렸지만, 후에 도쿄에서 지브리 파크를 방문해서 더 많이 눈에 담고 고민해보기 위해 꾹 참았다. 이 때도 감격하여 눈물이 고였던 것은, 주제곡들에 맞추어 그 눈물을 삼킨 것은, 민망한 주책이다.

 

우메다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아무래도 이치란 라멘을 먹은 게 아닐까. 필자는 남들이 하는 것을 안 하는 괜한 반골 기질이 있음에도 그 유명하다는, 그 맛있다는 이치란 라멘이 막판에 먹고 싶어져서, 여우씨와 함께 긴 줄을 섰다. 그의 말로는 이 정도면 그렇게 긴 줄은 아니지만 현지인들이 줄을 서서 먹는다는 점에서 먹을 가치가 충분하다 하였다. 입성해서, 그 말로만 들은 1인석에서의 이치란 라멘을 받고나니 일단 양이 푸짐하다는 것에 놀랐고 국물이 내는 엄청난 깊이에 놀랐다. 면발이 탄력적으로 입가를 자극했고 차슈의 그 식감이란, 절대 다른 곳에서 따라할 수 없을 것이다. 심지어 배가 어느 정도 부름에도 밥을 말아 먹어 끝내 그 그릇 바닥에 적혀있는 감사의 인사까지 보고 말았다. 배를 두드리며 지하철을 타고 거리의 사람들 속에서 하나의 인파가 되어가는 기분은 끝내주게 환상적이었다.

 

 

 

4일차 : 오사카


 

마지막 날에 오사카로 돌아온 이유는 간사이 국제 공항과 가까운 점도 있지만 오사카 성을 마지막으로 구경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한국인이기 때문에 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대한 반감은 있었지만, 그 아름다운 청록색의 기와를 보고 싶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깊은 숲같은 입구를 지나 무한한 것 같던 계단을 오르고, 또 줄을 서서 티켓을 받은 후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까지 올라가 6층과, 이어지는 7층 전망대를 보고 왔다. 엄청 대단해서 참을 수 없다 정도의 경치는 아니였지만 봄이나 가을에 왔었더라면 꽃과 단풍이 보여주는 절경과 함께일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뒤늦게 느낀 거지만 그 많은 계단을 오르며 왼쪽 무릎을 삐었는데, 점점 고통이 심해져서 한국에서까지 당분간 절뚝거려야 했다. 오른쪽 오금에 물린 오사카의 산모기와 더불어 일본이 준 매운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평범하게 쉬고 나니 나아져 있어서 좀 아쉽기도 할 정도였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좌석에 앉아서, 창밖을 바라보니 공항 관계자들이 손을 흔들다가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그들에겐 보이지 않았겠지만 필자도 손을 천천히 흔들어주었다. 비행기가 이륙해 구름을 가르니 무언가 울컥하는 기분이 들어 잠깐의 눈물을 흘렸다. 그 눈물은 왜 난 것일까 하고 곰곰히 고민을 해보았는데, 매체에서나 볼 수 있었던 일본의 그 풍경과 정서와 기분좋은 복작거림을 내가 느끼고 왔음에 그제서야 실감하였던 것 같다. 그 감격과 아쉬움의 눈물이 흘러가며 하늘의 구름을 담아 푸르고 하얀 눈물방울을 만들었는데, 겨울엔 삿포로를, 언젠간 꼭 도쿄를 가서 지브리에 대한 나의 한을 풀고야 말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 그래도 지브리 스튜디오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신작인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를 포스터만 보고 실제로는 보고 오지 않았기에 한국에서 이 작품이 하루라도 빠르게 개봉하길 지금도 필자는 두 손 모아 바라고 있다.

 

지금까지가 인생의 첫 번째 일본 여행기이다. 아마 이 글을 읽으면서 고작 일본 한 번 간 것으로 유난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실제로 지브리 샵에 갈 때마다 감격해서 운 것은 필자도 머쓱하다. 하지만, 잊을 수 없는 여행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묻고 싶다. 당신에게 잊을 수 없는 여행이 존재하는가? 만약 있다면, 언제인가? 그 기억을 가슴 소중히 기억하길 바란다. 그리고 또 잊을 수 없는 여행을, 다시 한 번 더 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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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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