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일본에 가다 1

일본으로의 첫 여행
글 입력 2023.08.03 14:27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필자는 일본의 문화를 좋아한다. 작품성을 인정받은 재패니메이션 명작들을 좋아하고, 일본 음식의 츠유(쯔유) 향을 좋아하고, 잔잔하지만 화려한 일본의 풍경을 좋아한다. 그러나 한 번도 간 적이 없었던 일본. 어쩌면 일본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건 매체에서 보여지는 일본의 모습만을 좋아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충동적으로, 월요일에 비행기 티켓과 숙소를 예매하고, 수요일에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얼렁뚱땅 시작한 일본 첫 여행을 두 편에 나누어 회고해본다.

 

 

 

1일차 : 오사카


 

인천국제공항에 약 12시 반 쯤 도착했다. 빠르게 수속을 마치고 면세점이 있는 탑승구에 도착했다. 마지막으로 제대로 된 비행기를 탄 것이 6년 전이기 때문에 오랜만에 보는 비행기들과 세로로 길게 뻗어있는 창문이 주는 푸른빛이 약간은 낯설기도 했다. 눈이 부실 정도로 새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들은 그제서야 내가 일본에 간다는 것을 실감하게끔 했고 신나는 마음에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3시가 살짝 넘은 시간, 지연된 만큼 힘차게 활주로를 질주하는 소리가 들렸고, 부웅- 하는 소리와 함께 비행기는 하늘로 날아올랐다. 낮게 깔린 구름부터 높게 솟은 구름까지 하얀 것을 헤치며 비행기는 끝없이 비상했다. 약간 힘든 점이 있었다면, 필자는 심한 만성 비염을 앓고 있기 때문에 기압 차이에 의한 두통이 생겨버렸고, 덕분에 기내에서 계속 잠을 자거나 눈을 감고 있어야 했다는 점이다. 중간에 난기류를 만난 것인지 비행기 동체가 크게 흔들릴 땐 깜짝 놀라 눈을 떴지만, 어차피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자각한 후론 다시 눈을 감고 일본을 꿈꾸길 반복했다.

 

어느 순간, 갑자기 비행기 전체에 엄청난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곧 비행기가 활주로에 도착했다는 뜻이며, 필자가 오사카에 도착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두근거리는 마음과 함께 수하물을 찾고 공항 밖으로 발을 내딛자마자 "앗"하고 약간의 탄식을 내뱉었다. 일본이 한국보다 습하다는 것은 익히 들어왔지만 숨이 막힐 정도로 습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약간 과장해서, 한국의 더운 여름 낮에 달리기를 미친듯이 뛰고 땀을 흘리며 숨을 몰아쉴 때 느낄 수 있는 기분을 느꼈다. 그 당시엔 '오사카가 해안 도시라서 더 덥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했으나, 한국에서 이 후기를 작성하고 있는 지금은 과거의 자신에게 콧방귀를 뀌고 싶다. 습한 더위와의 신경전이 시작된 것이었다.

 

일본에 도착한 시간 자체가 5시를 넘겼었기 때문에 곧바로 숙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유명하다는 도톤보리라는, 정신 없는 거리 근처에 있는 숙소였다. 분명 필자는 일본에 관광하러 온 것인데 들리는 소리는 한국어나 중국어라서 '여기가 을지로인가 명동인가' 하는 생각에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곳곳에 보이는 일본어 간판들과 신호등, 표지판 등이 이 곳이 한국과는 분명히도 다른, 일본이라는 나라임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숙소를 나와서는 근처의 편의점들을 돌아보며 그토록 먹고 싶었던 편의점 간식들을 구경하기도 했다. 또한 글리코 상으로 대표되는 도톤보리의 다리를 건너보며 일본의 번화가를 느껴보았다. 물론, 금강산도 식후경이기 때문에 튀김꼬치와 타코야끼, 당고를 먹어가며 구경했다. 특히 당고가 기억에 남는데, 숯불에다 떡을 굽고 중탕하던 소스를 발라 전반적으로 따뜻하고도 고소한, 쫀득한 떡꼬치를 먹는 기분이었다. 어둑한 거리를 거닐며 필름에 풍경을 담으니 벌써부터 인화한 이후의 사진들이 기대가 되었다.

 

 

3716822894_dmngbIWp_osaka-2225441_1280.jpg

 

 

 

2일차 : 교토


 

아침 6시 20분에 기상하고, 빠르게 짐을 꾸리고 교토로 이동했다. 7시가 살짝 넘은 시간에 밖을 나왔는데 한국에서는 오후 3시나 4시가 되어야 느낄 수 있는 더위와 습기가 온몸을 뒤덮어서 또한 숨이 '턱' 하고 막히는 기분이었다.

 

동전을 헐레벌떡 찾아가며 지하철 표를 끊고, 일본에서의 아침 지하철을 경험했다. 많은 사람들이 다 비슷하게 흰색 셔츠에 검은색 정장 바지를 입고 있던 게 신기했고, 지하철 안이 적막으로 정말 조용했던 것이 너무 놀라웠다. 한국에서는 아침마다 '지옥철'을 견뎌가며 많은 사람들의 웅성거림을 아침 산새 소리마냥 듣는 것이 일상인데, 일본은 조용한 지하철이 당연한 문화가 개인적으로는 가장 놀라웠다. 캐리어를 손에 쥐고 의자에 앉아있었는데, 중년의 여성분께서 나를 보며 미소짓다가 내리셔서 약간은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몇 시간 뒤에 필자는 데자뷰를 겪게 된다.

 

데자뷰란 무엇인가, 한다면 청수사와 은각사, 금각사를 방문한 이후 료안지로 넘어가기 위하여 잠시 버스를 기다리며 숨을 돌리고 있을 때, 또 어떤 중년의 여성분께서 나를 뒤돌아보시며 얼굴에 웃음을 띄고 계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여행을 와서 더위에 지쳐있는 내가 안쓰럽고 재밌어보이셨던 것 같다. 당시의 난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는데, 내게 도움을 주시려고 했던 것 같다.

 

청수사와 금각사는 '화려한 일본'을 보여주는 것마냥 색채가 다양했고 채도가 진했다. 청수사의 주황빛과 금각사의 실제 금이 내뿜던 빛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은각사의 조용한 일본식 목조 건축물과, 료안지의 잔잔한 돌 정원이 더욱 기억에 남았다. 특히 이우환 작가의 관계항 작품들을 좋아하는 필자로선 일본의 절제하면서도 선을 지키는 그 고요한 정서를 좋아하고, 그것이 드러난 차분한 은각사와 료안지가 무척이나 인상 깊었다.

 

은각사 근처에서 먹었던 냉우동이 주던 차가운 츠유(쯔유)의 국물과 4시를 조금 넘긴 시각, 니조성 앞에서 입장 제한 시간에 걸려 반쯤 좌절하고 반쯤 행복했던(아침부터 쉬지 않고 걸어다녀서 굉장히 힘들었었다) 순간에 소나기가 쏟아진 것도 잊을 수 없다. 필자는 짝꿍 여우씨와 함께 이번 여행을 다녀왔는데, 둘 다 땀인지 비일지 모를 것에 푹 젖어서 숙소로 돌아가며 웃었던 것이 참 어여쁜 기억으로 남았다. 평상시라면 꼼꼼하게 우산부터 챙겼고, 그 우산을 펼쳤을 우리지만 여행이기에 경험할 수 있었던 돌발 상황이었고, 여행이기에 경험할 수 있었던 색다른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교토의 저녁은 백화점에서 산 싼 음식들이었다. 감자 고로케와 고기 고로케, 카이센동으로 이루어진 간단한 저녁이었지만 충분히 배가 기분 좋게 부를 정도의 맛과 양이었다. 저녁을 먹으며 그 날 하루를 돌이켜보았는데, 분명히 덥고 습해서 땀이 눈물 흐르듯 쏟아지긴 했지만, 작년부터 가고 싶어 계획을 세워두었던 관광지들을 발로 걸으며 직접 눈으로 담고 왔다는 것이 내게 굉장한 행복감을 안겨주었다. 또한, 그 행복감을 더해주는 것에는 필자가 오래 전부터 너무나도 좋아했던 스튜디오 지브리의 굿즈를 판매하는 가게를 청수사를 오를 때 우연히 발견하였다는 사실도 있었다.

 

필자에게 스튜디오 지브리란, 그리고 미야자키 하야오란 삶의 큰 축을 담당하는 하나의 사랑이자 추억으로 존재하는 것인데, 그렇기에 일본에서 꼭 지브리샵을 가고 싶었다. 그럼에도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던 이유는 주요한 것들이 모두 도쿄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인데, 우연히 청수사를 오르는 언덕에서 지브리 샵을 보았다. 너무나도 익숙한 글자들과 캐릭터가 있어 정신을 못차리고 그곳을 구경하고 나왔는데, 들어가자마자 정말, 이유도 모를 눈물이 쏟아졌다.

 

그 감정은, 지금도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겠다. 감격, 혹은 그리움,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이런 감정 속에서 필자가 어릴 적부터 사랑했던 작품들의 캐릭터와 굿즈들을 마주하니 그 순간은 꿈에 있는 듯 했다. 여전히 필자에게 그 순간은 시간이 멈춘 듯하고 기억이 오히려 잘 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 기억을 소중하게 여기는 이유는, 어릴 적의 자신이 되어 순수한 행복을 느꼈기 때문이지 않을까.

 

 

- 2편에서 계속

 

 

IMG_0143.jpeg

 

 

[윤지원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