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멀어지는 빛을 가만히 바라보기

글 입력 2023.08.05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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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어지는 빛을 가만히 바라보기 



처음 군대에 가서 장교후보생 생활을 시작했을 때 하늘을 자주 봤다. 겨울철 아침 일찍 불려 나온 점호시간에는 아직 별이 떠있었고, 인원을 확인하고 체조를 하다보면 슬그머니 해가 밝아오며 멀어졌다. 나는 점호 내내 힐끗거리며 그 별을 바라봤다. 아침이 오며 멀어지는 그 빛이 왠지 밤사이 내내 나를 괴롭히던 생각들 같아서, 그리고 내가 그토록 곁에 붙잡아두고 싶었던 것들이 멀어지는 풍경 같아서였다.


곁에 있는게 영원할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걸 잠시 까먹었던 사이에 나를 쉽사리 떠나가고 말던 모든 것들을 떠올리면서 그 빛이 멀어지도록 두었다. 사실 그렇게 둘 수밖에는 없었다. 내가 무슨 수로 막을 수 있었을까. 그리고 그건 종종 내 삶의 태도가 되었다. 방법이 없다는걸 깨닫고는 아주 멀어져 작은 점이 될 때까지 한없이 바라보기.


이런 장면들은 나를 설명하는데 유효한 수단이 된다. 해가 뜨고, 빛이 내리고, 또 다시 멀어지는 그런 낮과 밤을 겪으며 핸드폰도 없이 사회와 격리되어 있던 몇 번의 훈련에서도 이런 장면을 찾을 수 있는데, 작은 수첩에 눌러쓴 문장들을 지금도 나는 가끔 꺼내 읽는다.


내가 가진 차분함과 약간의 무력함과 그 뒤에 숨어있는 단단하고 거침없는 태도 중 일부는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금 읽어보면 지나치게 감정적이고 감상적이지만 내 성격의 원형이 되는 순간들을 여기에서 찾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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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뜨는 빛



아침에 뜨는 해를 보며 재현의 욕망에 대해 생각했다. 스펙트럼으로 나열된 색의 배치를 보며 그 광경을 담아내고 싶었다. 옛 조상들도 그림을 그렸다는게 신기하다. 저 색의 풍경을 담아내고자 자연에서 비슷한 색을 찾아 물들이거나, 벽에 긁어냈을 상상을 하면 기분이 이상해진다. 물감도 없이 담아내는 세계.


언젠가 보았던 혹은 느꼈던 빛나는 순간과 그 감정을 잊기 싫어서, 다시 느껴보고 싶어서, 누군가에게 전해주고 싶어서, 때로는 이유도 모르면서 그렇게 해야 한다는 감정에 사로잡혔을 것이다. 내가 이야기를 쓰고 싶은 것도 그런 것일까.


절반은 맞지만 이미 겪은 것의 재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겪어보지 못한 순간들을 떠올리며 희망하는 희망도 있을 것이다. 때로는 희망 자체가 희망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떠오르는 해를 보며 어쩌면 조금 더 나은 세상을 꿈꿀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이야기를 통해서 그런 일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2021.1.4.)


대학교 때는 창작을 해야 하는 일이 너무 많아서 힘들어했었다. 차라리 공부는 다섯 번 읽고 열 번 읽으면서 시간을 투자하면 조금 더 외워지기라도 하는데 새벽까지 끙끙대도 몇 자 적지 못하는 날이 많았고 겨우 적어내도 전보다 나아보이지 않아 다시 지워야 하는 문장도 많았다.


겨우 만들어낸 결과물은 언제나 마음에 들지 않았고 객관적인 평가에 더해 교수님과 사람들의 정성적 평가가 많이 반영되기 때문에 언제나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행동에 제약이 생기고 내 시간을 내 맘대로 쓸 수 없는 환경이 되니까 뭐라도 쓰고 말하고 싶어졌다.


그렇게 떠나고 싶던 그 막막함과 자유로움이 그리워지는 순간. ‘참 쉽죠?’하는 말과 함께 그림으로 유명한 밥 아저씨도 젊은 시절 군에 있으면서 계속 예술을 꿈꿨다는데 나도 비슷한 마음이었던 것 같다. 어쩌면 나도 평생에 걸쳐 표현해야하는 하고싶은 말이 내 안에 있을지도 모른다.


앞으로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삶을 살든, 그 말을 정확하게 찾아내고 손실 없이 표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지, 떠오르는 해를 보고 자주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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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의 침묵



군대에서는 5시 반이 되면 노래가 흘러나온다. 짧은 노래가 끝나면 애국가가 나오는데, 하던 행동을 모두 멈추고 태극기를 향해 예의를 갖춰야 한다.(경계를 하거나 차렷으로 가만히 바라봐야 한다) 시간 뺏기는게 귀찮아서 애국가가 나오기 전에 도망치듯 들어가거나 불평을 하는 사람도 물론 있다.


애국가가 끝나면 아무 일 없었던 듯이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지만 그 짧은 순간, 그 시간만큼은 모두가 가만히 서서 태극기를 바라본다. 침묵의 시간. 비록 속으로는 각자 다른 생각을 하고 있더라도 많은 인원이 모든 것을 멈추고 서서 말없이 같은 동작을 취하는 그 순간에는 장엄함 같은 것도 느껴진다.


어떤 마음이든 그 많은 사람들이 같은 행동을 할 수 있다는게 이상하고도 신기한 일이다. 사람을 하나로 모으는 건 무엇일까. (2021.1.5.)


한 해 한 해 실감하는 건 사람이 정말 다양하고 우리는 모두 다르다는 사실이다. 서로 너무 다른 배경과 생각과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같은 마음일 수 있다는 것, 그게 아니라도 적어도 같은 행동을 어느 순간에 할 수 있다는 게 새삼 좀 신기하게 느껴졌다.


나는 이상주의자에 가깝다. 우리의 이해와 오해가 엇갈린다고 말하고 자주 다름을 실감하면서도 우리가 함께인 순간이라든지 서로의 마음이 전해지는 순간 같은 것들을 떠올리고 찾아다닌다. 그런데 그 날 서로 다른 불평들을 늘어놓고 다른 생각들을 하는 그 많은 사람들이 모여 일순간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을 보고 묘한 감정을 느꼈던 것이다.


그 날의 행동은 강제성이 전제된 것이고 이렇게 생각하기에 비약이 있는 것도 안다. 그래도 이렇게 희망을 가져보면 안 될까. 우리가 서로를 이해할 수도 있다고, 같은 마음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갈 수도 있다고, 서로 다른 마음으로도 같은 걸 바라보며 같은 행동을 나누며 살아갈 수도 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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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을 꺼내먹는 새벽



배고플 때는 달을 꺼내 야금야금 먹었다. 배고프다는 건 외롭다는 뜻이고, 달을 먹는다는 건 달이 줄어드는걸 보면서 시간을 센다는 것이다. 시간이 가길 기다리는 것이다. 삶이 버거울 때는 순간을 쪼개서 살아야 한다.


오늘도 밥 먹으면서 쓰려고 했던 내용이 있었는데 떠오르지 않는다. 생각이란 이토록 쉽게 휘발되어 버린다. 잠에서 깨어난 직후부터 지워져가는 꿈속 이야기처럼, 나는 기억나지도 않는 세계를 그리워한다. 지나간 세월 속 어느 날 어느 순간에 스쳤던 것들. 비슷한 냄새, 공기, 온도, 습도, 그리도 비슷한 바람만 불어도 가슴이 아려오는 때가 있다.


무슨 말을 쓰고싶었는지 아직도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나지 않는 미완의 세계. (2021.1.6.)


불면은 나의 오래된 습관이다. 그리고 나는 그런 밤을 달을 꺼내먹는 새벽이라 적었다. 누워있으면 자꾸 찾아오는 생각 덕에 많은 밤을 뜬눈으로 지새웠다. 그때는 딱히 좋다고 못 느꼈던 것 같은데 왠지 지나고 나면 그때가 그립다. 지금 앞에 놓여진 삶에 집중 못하는 건 정말 멍청한 일이다.


알면서도 그렇게밖에 잘 안 된다. 그래도 분명 좋았던 순간이었다는 뜻이겠지. 추억할만한 괜찮은 순간들을 가져봤다는 뜻이니까 그 나름대로 괜찮을지도 모른다. 달을 꺼내먹으며 한동안 멍하니 바라볼수밖에는 없지만, 어두운 새벽의 절절하고 혼란스러운 감정들도 결국 해가 밝아오면 자연스레 멀어지고 말테다.


그 빛을 오래오래 바라보며 마음속에 담아두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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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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