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riter] 관심법 종자

글 입력 2023.08.01 08:31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2038439701_aIy3Cf6c_5BED81ACEAB8B0EBB380ED99985DE384B7E3858D.jpg

 

 

난 애는 안 낳을 생각이에요. 나의 이런 종자를 물려주고 싶지 않거든요. 내 말을 들은 내 주위 열의 아홉이 모두 끄덕이죠. ‘그래, 이 관종아.’ 맞아요, 저는 관심병 종자, 앗, 아니, 그런 관심병 종자들을 미리 알아보는 관심법 종자에요. ‘아냐, 그래도 지구는 착한 관종이야.’ 그리고 누군가 꼭 이런 말을 덧붙여주는데, 흠,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어요.

 

어렸을 때부터 뭔가 이상했어요. 엄마는 어릴 때부터 “지구야, 너만 보게 된 다른 사람의 비밀이 있으면 암말두 하지 말고 그냥 눈을 감아. 꾸욱 감구, 그냥 잊어버려.”라고 말씀하시곤 했어요. 웃기지 않나요? 유치원생에게 친구들이랑 사이좋게 지내라는 걸 가르치진 못할망정, 그냥 눈 감으라니. 이젠 돌아가셔서 물어볼 곳도 없지만, 아마 엄마도 나와 같은 능력이 있지 않았나 싶어요. 우리 엄마도 우리 동네에서 나름 소문난 관종이었거든요.

 

곗돈 틀고 튀려는 계주 아줌마를 혼자 터미널에 잡으러 갔다가 얻어맞아서 얼굴이 눈탱이밤탱이 되고,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 대상으로 목돈 투자하라는 사기꾼 아저씨 말 듣지 말라고 집집마다 찾아다녔다가 그 아저씨가 집 앞까지 쫓아와서 쌍욕하고 위협하고. 하여튼 난리였어요. 웃긴 건 우리 엄마는 그 계나 투자에 참여도 안 했단 사실. 엄마는 본인이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되는 누군가의 피해, 그리고 그걸 외면할 수 없는 삶을 살며 많이 고단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엄마의 종자를 받은 나는 그런 삶을 살지 말라고 해 준 조언이 아니었을까.

 

그러면 뭐해. 애초에 알 지知에 구할 구求로 지어준 내 이름처럼 나도 아는 것을 바탕으로 구하러 다니는 삶을 살 수밖에요. 엠티에서 비밀 연애하는 남자친구가 새내기에게 은근히 추파 던지고 현장 쪽으로 오고 있는 여자친구 시선을 뺏으려고 흙바닥에서 대뜸 옆돌기해서 여자친구는 물론 그 엠티 전체의 시선을 다 집중시켜서 길이길이 남은 MT 전설을 만들었고요. 교수님이 유독 일찍 도착하신 걸 모르고 강의실에서 열심히 교수님을 까고 있는 동기들의 말을 듣지 못하게 “교수님 안녕하세요오~~ 저 수업 시작 전에 꼭 하고 싶은 질문이 있습니다아아~”며 성악 발성으로 복도에서 소리쳐서 동기들 사이에서 조수미를 이을 조지구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어요. 우리 학교에서 소문난 관종이 된 거죠.

 

그렇지만 나는 엄마보단 조금 더 부족하다고 할 수 있겠어요. 우리 엄마는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하는 관종이었다면, 나는 당장 그 순간을 무마하려고 하는 관종일 뿐이에요. 깊고 치밀하게 살펴보는 관심법이 아니라 짧고 단편적인 관심법에 그치는... 진짜 착한 관종은 우리 엄마쯤 돼야 할 것이고, 아마 나는 착함과 아님 사이… 관심병 종자와 관심법 종자 사이… 그 어디쯤 애매하게 걸쳐있달까요.

 

그래서 가끔 나 정도의 관심법 수준을 가진 사람들이 더 있지 않을까 생각하곤 해요. 우리 엄마만큼 하나의 동네를 구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나처럼 내가 속한 하나의 모임 정도를 구하는, 평범한 관종으로 위장한 관심법 종자들이 분명 있을 거라고. 그렇지 않으면 사회가 이 정도로 유지되지 못했을 거로 생각해요. 그런데 앞서 말했듯, 이건 정말 피곤한 운명이에요. 나쁜 의도를 가진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 게 눈에 보이거든요. 보이는 것 이면에서 꿈틀대는 음흉한 의도를 가진 사람이 왜 이리 많은지, 그리고 어쩜 그렇게 더 정교해지고 교묘해지는지.

 

왜 죄를 짓는 건 나쁜 사람들인데 상처 받는 건 무고한 사람들일까요? 왜 나쁜 사람들은 점점 많아지는데 이걸 해결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점점 사라질까요? 영웅이 달리 화려한 영웅이 아니라 이렇게 사회 속에서 타인을 위해 온 힘을 다하는 사람들 일 텐데. 이런 사람들이 더 많아질 수는 없을까. 하긴 나만 해도 다른 사람까지 구해야 하는 이런 운명이 너무 힘들어서 우리 애한테 물려주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니까요. 문득 엄마는 나를 어떤 마음으로 낳았을까 싶네요. 엄마의 기일이라 그런지 이런저런 생각들이 밀려오는 밤입니다.

 

 

 

주영지_컬쳐리스트.jpg

 

 

[주영지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6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