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뜨뜻미지근한 밀크티가 차가운 밀크티보다 더 달다 [음식]

일상 속 사소한 행복에 대하여
글 입력 2023.07.22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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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만나야 하는 친구가 있는데, 약속에 늦었다.

 

또 시작이다. 너무 목이 말라 잠시 편의점에 들러 생수를 사기로 한다. 버스를 타야 하는데 버스 정류장이 도로 한가운데에 있다. 다음 버스는 약 9분 뒤에 올 예정이어서, 횡단보도 바로 앞의 편의점에 들어간다. 바로 500ml 생수 하나를 집어 계산대로 가져오는데, 누군가 2L짜리 생수를 6개 또는 몇 개를 계산하고 있다.

 

버스는 4분 뒤에 오고, 신호등은 대략 2분에 한 번씩 바뀐다. 나는 불안하다. 점원은 여유롭고, 먼저 계산해달라는 말을 하고 싶지도 않다. 그때 마침, 내 앞의 손님이 특유의 푸근하고 편안한 말투로 “이 손님 먼저 계산해 주세요. 나는 천천히 해도 되니까”라고 말한다.

 

옅은 은발에 검은색 모자를 쓴 할아버지이다. 이 말 한마디에 나는 엄청난 감사함과 알 수 없는 느낌을 느끼며 위로를 받는다.

 

매번 약속에 늦거나 하는 일상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 사소한 배려는 나의 일상이 숨 쉬고 두근거리는 느낌으로 흘러가게 한다.

 

그냥 지나가는 일상도, 아무런 의미 없지 않은 찰나의 소통으로 이어져 있다는 걸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대화를 나누거나, 아는 사이가 아니어도 말이다. 굳이 행복이란 단어로 이러한 것을 정의하고 싶지는 않지만, 뜨뜻미지근한 밀크티가 차가운 밀크티보다 더 달다.

 

                      

차가운 밀크티.png

 

 

뜨뜻미지근한 밀크티는 언제나 달콤하지만, 계속 먹다 보면 차가운 밀크티가 마시고 싶어지기도 한다. 반복되는 잔잔한 일상 속 행복은 더 이상 만족스럽지 않고 나는 당장 뜨겁거나 차가운 밀크티를 마시고 싶다.

 

반복되는 일상은, 여행을 가고 싶은 마음으로 이어지곤 한다. 여행에서는 뜨겁게 내리쬐는 햇살 같은 밀크티의 달콤함이 찾아온다. 뜨겁거나 차가운 밀크티처럼 찾아오는 행복들은 나에게 힘을 준다. 그러나 얼음이 든 차가운 밀크티는 시간이 지나면 밍밍해지고, 뜨거운 밀크티는 너무 뜨거워서 혀를 데일 수 있다.

 

우리의 일상은 뜨겁고 차가운 밀크티와 미지근한 밀크티의 연속이다.

 

일반적으로 단맛은 20~25℃에서 가장 잘 느낄 수 있으며, 체온에 가까울 때 강하게 느낀다고 한다. 단맛은 체온 이상이나 이하로 멀어질수록 약하게 느껴지는데, 온도가 낮을 때일수록 이런 현상이 강하게 나타난다.

 

결국 같은 음료의 경우, 따뜻한 밀크티보다 차가운 밀크티에 설탕을 더 많이 넣을 수밖에 없다.

 

 

밀크티 사진.png

 

 

그러나 혀를 데이면 더 이상 아무런 맛도 느끼지 못한다. 일상의 모든 것들은 무미건조해지기 마련이다. 더 이상 뜨뜻미지근한 밀크티의 달콤함이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시원하거나 뜨거운 달콤함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이상의 강력한 달콤함이 숨겨져 있다.

 

우리는 적절한 휴식과 적절한 스트레스 해소, 일상으로부터의 도피 등을 해야 한다. 누구나 쾌락을 추구하며 그리고 현실 속으로부터 도망갈 수 있지만, 다시 안정의 궤도나 혼돈으로 돌아갈 수 있다.

 

뜨거운 밀크티에 혀를 데이지 않도록 조심하고, 차가운 밀크티가 덜 달다고 점점 설탕을 너무 많이 넣어서 먹지 말자. 그러면 일상 속 사소한 행복을 점점 등한시하게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뜨뜻미지근한 밀크티의 달콤함을 소중히 하자.

 

 

 

에디터 심선용.jpeg

 

 

[심선용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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