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현대무용의 효능 [문화 전반]

무용(無用)하지 않은 무용(舞踊)의 효능
글 입력 2023.07.22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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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취미로 현대무용을 한지 8년이 되어간다. 이 사실을 말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두 개로 나뉜다. 한 취미를 ‘8년이나’ 했다는 것에 놀라는 반응과 그 취미가 ‘현대무용’이라서 신기해하는 반응.


8년 전 현대무용을 알기 전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보면 같은 반응일 것 같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어렸을 때 발레를 잠깐 배웠던 것 말고는 춤과 거의 연이 없다시피 살아온 사람이었다. 학창 시절에는 체육 시간을 수학 시간 다음으로 제일 싫어했고, 현대무용을 시작하기 전까지 어떤 종류의 운동도 취미로 삼아본 적이 없었다. 몸을 움직이는 종류의 것이 취미가 될 거라고 상상조차 해본 적 없을 만큼 나는 몸과 친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랬던 내가 대체 무슨 동력으로 8년이 넘어가는 긴 세월 동안 이름도 생소한 현대무용을 취미로 삼을 수 있었을까? 현대무용의 어떤 마성의 매력이 나를 이렇게 이끌었을까?


8년 차 취미생이 느낀 현대무용의 효능을 정리해 보기로 했다. ‘운동 효과’와 같은 당연한 것은 굳이 포함하지 않았다.

 

 


치유 효과 - 고민과 잡생각에서 멀어지기

 

나는 사무직 종사자로서 평소에 끊임없이 정신적인 노동을 한다. 일할 때뿐만 아니라 쉴 때도 정신노동을 한다. 영화를 보고, 책을 보고, 친구들과 만나 수다를 떨 때도 머리는 쉼 없이 돌아간다.


무용할 때만큼은 정신노동에 지친 머리를 잠시 쉬고 나의 몸과 움직임에만 집중할 수 있다. 물론 정신을 완전히 꺼놓는 건 아니다. 무용할 때 머리를 전혀 안 쓴다는 건 큰 오산인데, 끊임없이 나의 감각을 탐구하고 몸과 소통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몸에 집중하는 정신은 정신에 집중하기 위한 정신과는 분명 다른 경험이다.


몸을 움직일 때는 오로지 현재에 집중해야 한다. 당장 안무를 외우는 데 집중하고, 어떻게 움직여야 더 좋은 춤이 나올지 고민한다. 즉흥을 할 때도 계속 무슨 동작을 할지 생각해야 한다. 먼 미래에 대한 고민이나 잡생각을 떠올릴 겨를이 없다. 온전히 현재에만 살면서 내 몸에 집중하는 시간. 그렇게 정신적 스트레스로부터 해방된다. 한바탕 무용 수업에서 정신없이 춤을 추고 나오면, 그전까지 가졌던 온갖 고민을 멀찍이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일탈 효과 - 또 다른 나를 발견하기

 

나는 평소 나서는 걸 좋아하지 않고, 사람들의 주목을 받길 두려워한다. 남의 시선에도 신경을 많이 쓴다. 활동적인 편도 아니고, 외향적인 성격도 아니다. 그래서 무용은 내가 하는 행위 중에 가장 ‘나답지 않은’ 행위이다.


무용 수업 마지막에는 항상 그날 배운 안무를 선생님과 수강생들 앞에서 많게는 3-4명이서, 적게는 1-2명이서 춤을 춰야 한다. 프레젠테이션 시간을 가장 두려워하는 평소의 나라면 절대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다. 하지만 무용 수업에서는 곧잘 할 수 있다. 무용 수업이라는 시공간에서만 특별히 용인되는 어떤 분위기가 있는데, 그것에 취해있다 보면 평소에 부끄럼이 많은 나도 남들 앞에서 춤추는 게 가능해진다.


그래서 나에게는 무용할 때 느껴지는 일탈의 희열이 있다. 무용은 나 자신을 초월하는 것. 내가 아닌 내가 되는 것. 또 다른 나를 발견하는 것이다.

 

 


자기 성찰 효과 - 몸 탐구하기

 

정신 건강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세상이다. 심리 상담에 대한 수요가 늘고, 내면의 위로를 위한 책과 강의가 넘쳐난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몸의 건강은 그저 병의 유무로만 판단한다. 병원의 측정 기계 혹은 의사가 해주는 진단을 통해 수동적으로 검사만 받을 뿐, 우리는 스스로 우리 몸에 대해 주도적으로 공부하고 탐구할 시간을 갖지 않는다.


나의 몸과 소통하는 일은 내 정신을 돌보는 일만큼이나 중요하다. 심리 상담에서도 자신의 감정을 잘 알기 위해서는 신체적인 변화를 감지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한다. 그만큼 인간의 정신과 몸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몸의 소리를 듣지 않으면 온전한 나를 알 수 없다.


무용을 하다 보면 내 몸을 탐구하게 된다. 둔했던 몸의 감각이 예민해진다. 어디가 아픈지, 어디가 뻣뻣한지, 어디가 불편한지 스스로 알아챈다. 몸의 안부를 적극적으로 묻고 돌보는 것은 내가 나를 사랑하는 일과도 같다.


때론 어떤 동작이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몸이 따라주지 않을 수 있다. 그럴 땐 몸에게 왜 그런지 물어보게 된다. 그 답이 나의 잘못된 생활 습관에서 나오기도 하고, 나도 모르게 몸이 기억하고 있는 어떤 관성적 경험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머리로 의식하거나 기억하고 있지 않은 것들을 몸은 다 저장하고 있다. 그렇게 내 몸이 저장하고 있던 과거의 기록들을 하나씩 접하게 되기도 한다. 나를 더 이해하고, 포용하게 된다.

 

 

 

명상 효과 - 내 몸의 ‘존재함’을 느끼기


나는 아직 정통적인 방식으로 명상에 성공해 본 적이 없다. 눈을 감고 신체 특정 부위에 집중하라던가 호흡을 느껴보라는 식의 주문은 번번이 나의 복잡한 생각을 이겨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용에서는 명상의 효과를 자주 느낀다. 내가 생각하는 명상의 효과란 내 몸의 ‘존재함’, 즉 현존성(existence)을 느끼는 것이다. 여기서 정의하는 몸의 ‘현존성’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우선 내 몸의 각 부분에 대한 현존성이다. 이를테면 내 팔이 몸통 왼쪽과 오른쪽에 붙어있다는 감각, 다리가 나의 상체를 받쳐주고 있다는 감각, 내 머리통이 몸통 위에 얹혀있다는 감각이다. 대체 이게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인가 싶을 수 있다. 각자의 부위들이 몸 어디에 붙어있는지 우리 모두 그림으로 그려낼 수 있을 만큼 알고 있지 않나. 하지만 당연하게 아는 것과 그것을 감각하고 인지한다는 것은 아주 다른 경험이다.


우리는 우리 몸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떻게 움직이는지 본능적으로 감각하고 있다. 이런 감각을 ‘자기수용성감각(proprioception)’이라고 한다. 자신의 신체 위치와 방향, 움직임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감각을 일컫는다. 자기수용성감각 덕분에 우리는 직접 신체 부위를 눈으로 보고 있지 않아도 원하는 움직임을 할 수 있다. 예컨대 손을 보고 있지 않아도 다른 곳을 보면서 손으로 물건을 집을 수 있는 이유가 이 감각이 있기 때문이다. 자기수용성감각은 일상생활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아주 기초적인 감각이자 축복이다.


올리버 색스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는 자기수용성감각을 잃은 한 여성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 여성은 물건을 하나 집을 때 우선 자기 손을 쳐다봐야 하고, 물건을 집기 위해 어떤 손가락을 접고 펴야 하는지, 손을 들어서 어느 쪽 방향으로 옮겨야 하는지 등 손의 위치와 방향, 운동을 세세하게 계산하고 생각해 내야 물건을 집을 수 있다.


무용하는 것은 마치 자기수용성감각을 잃은 이 여성처럼 우리 몸의 구성과 원리를 새삼스럽게 발견하고 느끼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무의식적으로 당연하게 행해 왔던 움직임을 해체하고 재정의한다. 몸의 각 부위의 위치, 물성, 움직임에 대해 감각한다. 그리고 그 감각을 인지한다.


내가 말하는 몸의 현존성이란 또한 내 몸이 이 세계에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감각을 말한다. 내 몸의 부피와 질량을 감각하는 것이다. 인간은 우주의 관점에서 먼지 같은 존재라고 한다. 그렇게 아주 작더라도 이 세계에서 우리는 어떤 물성을 담당하고 있다. 무용은 내 몸의 물성을 느끼고, 이 세계와 나의 연결성을 느끼는 과정이다.


무용에서는 숨을 언제 들이쉬고 내쉬냐에 따라 움직임의 크기와 질감이 달라지기 때문에 호흡이 무척 중요하다. 특히 숨이 찰 때 나의 호흡을 자연스럽게 의식하게 된다. 나는 호흡하는 동물이었음을 새삼 깨닫는다. 무용을 하다 보면 신체적 고통이 올 때도 있다. 통각은 내 몸의 물성을 느끼게 해주는, 내가 살아있다는 몸의 소리이기도 하다. 그렇게 호흡과 고통을 통해 몸이 현존하고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를 온몸으로 감각하고 인지한다.

 

내 몸의 현존성을 감각하고 인지하는 것은 언제나 나에게 말로 설명하기 힘든 위로를 느끼게 해준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명상에서 얻는 효과일 것이다. 나처럼 추상적인 주문으로 머리를 비워야 하는 정적인 명상 방법을 어려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좀 더 동적이고 강제적인 방식으로 명상을 할 수 있는 무용을 적극 추천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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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현대무용의 효능’을 정리해 놓고 보니, 다른 취미의 효능과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예컨대 ‘조깅의 효능’이나 ‘뜨개질의 효능’이라 해도 치유, 일탈, 자기성찰, 명상 효과를 충분히 느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저마다 약간씩 세부 내용은 다를지 몰라도, 취미에서 우리가 얻는 것은 이렇듯 다 비슷비슷할 것이다. 그러니 이 글의 제목은 사실 ‘취미의 효능’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현대무용을 하는 나’는 내 정체성의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무용을 하면서 치유, 일탈, 자기성찰, 명상을 통해 나라는 사람의 일부분을 형성했다. 일상의 수많은 책임과 의무에서 탈피하여 오롯이 나의 순수한 애정으로만 해내는 것이 하나쯤 있을 때, 그것으로 비로소 삶은 완성되는 것 같다.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현대무용의 효능'은, 아니 '취미의 효능'은 궁극에는 삶을 완성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당신의 삶에도 그런 효능을 가진 것이 있는가? 어떤 것들이 있는지 몹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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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연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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