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인간의 어둠 [도서/문학]

[소설] 편혜영, 『밤이 지나간다』
글 입력 2023.07.20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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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그중에는 불안감이라는 감정도 있는데, 이는 다양한 유형을 가지고 있다. 자신에 대한 불안, 환경에 대한 불안, 정서적인 불안 등 여러 모습과 여러 이유로 자신만의 불안감을 가지고 이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소설에서도 불안감이라는 것은 굉장히 많이 표현되고 활용된다. 공감을 가지고 올 수 있고, 지극히 현실적인 인물을 그려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내면세계와 밤이라는 시간을 중심으로 소설 『밤이 지나간다』를 이야기해 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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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밤의 익숙함과 기이함


 

『밤이 지나간다』 속 단편들은 밤이라는 시간대를 모두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비슷한 면을 찾을 수 있다. 「야행」에서는 신체적으로 장애가 있는 여성이 등장한다. 그녀는 전기가 끊긴, 재개발을 앞둔 아파트에서 홀로 고립되어 있다. 거동이 불편하여 아파트 전체의 비상벨이 울려도 나갈 수 없다. 철거 예정일이 다가왔고, 아들로부터 자신을 찾아오겠다는 연락을 받아 짐을 챙기게 된다.

 

물건을 정리하며 추억에 빠질 수도 있지만 불이 없는 어두컴컴한 곳에서는 하나하나 살피며 이야기를 되돌아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시간상으로 밤은 그러한 존재이다. 어둠으로 인해 무언가를 살필 수 없는 시간인 것이다. 가려진 시야로 인해 물건이 무엇인지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고 물건들을 담으며 추억에 잠기지 않는데, 이러한 상황을 그녀는 오히려 시간을 단축하였다고 좋아한다.

 

그러나 잠시 후에 벌어지는 일에서 밤이라는 시간대가 가지고 오는 공포를 느낄 수 있다. 아들을 기다리며 홀로 방 안에 있던 그녀의 집에 갑작스럽게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밤이라는 시간대로 인해 얼굴도 그의 정체도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기이함과 익숙함. 어쩌면 밤은 우리에게 그런 존재이다. 매일 찾아오는 것이기에 우리는 밤이 언제 우리에게 오는 지를 안다.

 

그럼 기이함은 어디서 등장하는가. 바로 인간이 심리적으로 불안감에 놓여있을 때이다. 「야행」에서는 정체 모를 남자가 그녀의 집안을 열쇠로 열고 들어온다. 그 후에, 금방 또 다른 얼굴도 모를 존재가 등장한다. 여기서 그녀와, 독자는 기묘함과 이상함을 동시에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불안감으로부터 작용한다.

 

 

 

2. 은근함을 가진 공포


 

전반적으로 편혜영의 소설을 읽으면 왠지 모름 공포감이 찾아온다. 이것은 작가가 구축해 내는 세계를 통해서일까? 아니면 인물의 심리적 묘사로 인한 것일까? 「야행」에서만 해도 공포감을 불러올 만한 요소가 계속되어서 등장한다. 가장 먼저는 신체적 장애이다. 이러한 장애는 행동에 제약받게 만든다. 그녀는 다리를 지탱하여 걷지 못한다. 통증이 오는 주기나 횟수 역시 예측할 수 없다고 말한다. 강도나 횟수는 매번 달랐다.

 

 

통증은 살갗을 벼린 칼로 벴고 머리털을 뭉텅뭉텅 잡아 뽑았으며 날카로운 침으로 눈알을 쑥 찔렀고 심장을 사정없이 옥좼다. 호흡이 곤란해지고 청색증이 생기고 어떤 때는 혀를 깨물기도 했다. 통증이 오면 몸이 틀어지는 대로 앓고 그것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동안 간혹 짐승의 신음 같은 끙끙 소리를 내뱉었으나 대개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야행」, 11p)


 

작가는 그녀의 고통을 묘사를 활용하여 실감 나게 표현한다. 그녀가 신체적인 고통을 가졌다는 것은 소설 앞부분부터 이야기된다. 이는 공포감이 생기는 첫 단계이다. 꾸준하게 쌓아 올린 공포는 천천히 그리고 은근히 우리 곁에 다가온다.


두 번째는 고립이라는 공포이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현재 그녀는 재개발을 위해 철거 예정 중인 아파트에 살고 있다. 긴급 상황으로 비상벨이 울려도 그녀는 신체적 장애로 혼자서 대피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몸을 이끌고 베란다로 향한다. 내려다본 아래는 아무도 없다. 철거로 사람들을 내쫓기 위해 일부러 비상벨을 울렸을 수도 있지만, 어쩌면 그 아파트에는 아무도 없을지도 모른다. 이미 그녀는 아들로부터, 가족으로부터도 고립된 상태이다. 이야기에 마지막에서 집으로 찾아오는 남자의 정체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는다. 더욱더 그녀의, 노인의 고립을 극대화한다. 

 

마지막으로, 모르는 존재에 대한 공포이다. 「야행」은 결국 알 수 없는 존재와 밤으로 이야기가 끝이 난다. 이는 밤이라는 시간대로 인하여 더 큰 효과를 가지고 온다. 시야가 가려졌기에 누군지 모르는 것은 소설뿐만이 아니라 예능과 같은 매체에서도 활용된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모르는 박스 안에 손을 넣고 어떤 물건인지 맞히는 콘텐츠들이 종종 등장한다. 이를 체험하는 자들은 보이지 않는 것에 손을 넣고 만지며 공포를 느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가려져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에서 공포가 생성된다. 


소설에서 ‘불안감’이라는 감정은 우리에게 은근하게 다가오는 공포이다. 또한  심층적인 인물의 묘사로 오싹해지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이는 독자 역시도 심리적으로 불안감을 느끼게 만든다. 심리적인 묘사가 심층적으로 들어갔을 때 볼 수 있는 효과이다. 이에 따라 몰입감이 높아지고 화사의 불안감을 같이 느끼게 되는 것이다.


 

 

3. 비밀이라는 요소


 

비밀은 「야행」과 「밤의 마침」에서 등장한다. 같은 요소로 등장하지만, 인물들이 이를 대하는 태도는 상반된다. 야행에서 비밀은 실망감이다. 주인공에게는 아들에게 숨길만한 그럴싸한 비밀이 없다. 하물며 자신보다 일찍 죽은 남편에게도 그런 건 존재 하지 않았다. 비밀이 없다는 것을 열정이나 정념 같은 것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아왔다는 것의 문장으로 이야기한다. 그녀는 아들에게 비밀이 없다는 것을 비밀로 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알고 있었다. 자신에게는 딱히 털어놓을 것이 없다는 것을. 아무리 되돌아봐도 인생을 통틀어 지킬 만한 비밀이 없는 시시한 인생이라는 것이 그녀가 가진 유일한 비밀이었다.

 

(「야행」, 19p)


 

비밀이 있다는 것이 존재한다는 걸 안 인간은 어떻게 행동하는가? 가장 먼저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해하고 알아내려고 한다. 대개 인간은 자신이 모르는 것에 대하여 알고 싶은 욕망을 가진다. 그래서 그녀는 아들에게 비밀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자신의 인생에 관심이 없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반면 「밤의 마침」은 그에게로 전달되는 엽서로부터 비밀이 생성된다. 발신인이 없는 그 엽서는 자신에게 투영시킨 ’그‘는 주변 인물들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이 엽서를 가지고 오는 함께 근무하는 직원을, 태도가 달라진 아내를, 그리고 그 사건의 또 다른 당사자인 아이를. 그 엽서를 통해 그는 '자신의 비밀'을 드러낸다. 엽서를 자신과 동일화시켜 자신의 비밀 앞에 서게 되는 것이다. 작가는 혼자만이 가진 비밀 안에서 괴로움을 느끼는 인물을 그려낸 것이다.

 

 

한편으로는 두려웠다. 자신의 비밀을 아는 사람이 결국 자신뿐이라는 사실이. 그는 엽서에 비밀을 적은 사람의 나약함에 화가 났다. 이 세상에 자신과 비밀이 같은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뭔가 고백하고 싶어 하는 게 화가 나 미칠 지경이었다. 이제껏 비밀을 담은 엽서가 그를 외롭지 않게 해줬다면 앞으로는 비밀의 동지자 때문에 외로울 것 같았다.

 

(「밤의 마침」, 56p)


 

비밀은 누군가와 공유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이 비밀이라는 이름의 무게이다. 혼자만이 짊어지고 책임져야 하는 것. 공유하지 않는 이유는 다양하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러나 하나같은 점은 결국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래서, 비밀은 참 무겁다.

 

*


늘 인간은 어둠을 가지고 살아간다. 작가가 풀어낸 어둠의 키워드는 다양하다. 자기 자신 혹은 주변에서 만들어 낸 불안감일 수도 있고, 자신을 괴롭히는 고통일 수도 있다. 아니면 남들 몰래 저 멀리 숨겨둔 비밀일 수도 있다. 독자는 이를 읽으며 자신이 살아가며 느끼지 못했던 경험을 마주할 수도 있고, 자신이 직접적으로 마주했던 경험을 찾아낼 수도 있다. 인물에게 이입하고 심리를 공유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심리 공유는 독자가 이야기에 더욱더 몰입하게 만든다.


어둠은 늘 함께한다. 시간이 되면, 우리 곁에 늘 찾아오는 밤이라는 시간처럼. 인간의 심리에는 늘 어둠이 존재한다.

 

 

[김지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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