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로망의 나라로 향하는 방법 - 도서 ‘외국어를 배워요, 영어는 아니고요’

내 안에 살아있는 그 나라의 일원이 되고 싶다면
글 입력 2023.07.04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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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를 배워요_표1.jpg

 

 

외국어를 배운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것은 비단 언어를 알게 되는 것뿐만 아니라 그 언어를 통해 접할 수 있는 타지의 문화와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문의 열쇠를 쥐는 것이다. 언제인지도 까마득한 시절부터 나는 이국의 풍경을 동경해왔다. 이를테면 유럽의 오래된 건축물들이 지닌 고풍스러움, 투명한 바다 앞 선배드에 선글라스를 걸친 채 선텐을 즐기는 이들의 자유로움 같은 것들 말이다.


몇 번씩이나 그 풍경 안에 녹아든 나의 모습을 상상해보기도 했다. 강렬한 햇빛 아래 양산을 펴고 성벽을 따라 거닐며 마주치는 사람들과 인사를 주고 받고 안부를 묻는 그런 평범한 일상들까지도 그곳에서라면 무언가 특별하고 멋질 것만 같은 기분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언젠가는 한국을 떠나 집 밖만 나가도 내가 사랑해마지 않는 풍경이 펼쳐진 그곳으로 떠나리라 다짐하기도 했고 말이다. 


그러나 그런 나의 바램이 어쩐지 먼 꿈처럼 느껴지는 데에는 나의 비루한 외국어 실력이 단연 1순위로 기여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 입시 영어에는 나름 자신이 있던 나지만, 외국인 공포증이라고 하던가 막상 그들과 소통하려 하면 말문이 턱턱 막히고 식은땀이 나곤 했다. 머릿속에 완벽한 문장이 떠오르지 않으면 단 한 마디도 내뱉기 어려웠고, 남들이 내 회화실력에 실망하거나 비웃을까 걱정하기 바빴다. 


그러나 이런 태도로는 내가 꿈꾸던 모습과 절대 가까워질 수 없다는 사실을 나는 나의 제대로된 첫 해외여행이라 할 수 있었던 동유럽 여행 중 아주 제대로 깨달았다. 영어로 소통이 가능한 나라들을 방문했지만 무엇 하나 쉬운 일이 없었다. 간단한 회화로는 해결할 수 없는 역경 속에서 어떻게든 우리의 상황을 설명해야 했던 난관들이 펼쳐졌고, 소극적인 자세로는 절대 그 상황을 모면할 수 없었다. 


입국 심사 때부터 “너는 이곳에 뭐 때문에 왔고 얼마나 있을 생각이니?”, “숙소는 잡아 놓았니?” 등의 질문들이 쏟아지는가 하면 짐을 보관했던 락커가 열리지 않아 순환근무제로 근무하던 사무실 직원에게 두 세번씩 상황을 설명해야 했고, 호스트가 알려준 도어락 비밀 번호가 맞지 않아 전화를 걸어야 하는 일도 있었다. 


우리 중 아무도 영어를 원어민처럼 유창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 당시 나서서 상황을 해결했던 친구와 나의 차이점은 적극적인 태도의 차이에서 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저자의 남편이 그랬듯 그녀는 일단 모르는 단어가 있더라도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자신이 아는 모든 것은 동원했고, 입을 열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놀랍게도 몇 번의 대화가 오가고 나면 이 난관을 돌파할 실마리가 생기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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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도 아닌 외국어를 배우고 있다는 이 책의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 동경과 질투심이 동시에 들었다. 영어 회화조차 낑낑대고 있는 입장에서 한국어, 영어, 프랑스어까지 3개국어 능력자임에도 이탈리아어를 배운다는 저자가 부러움과 동시에 내가 오랜 로망으로만 접어둔 것을 실행하는 그녀에게 동경심이 들었다.


 

“많은 이들이 ‘다른 나라’를 마음에 품고 산다. 그것은 자신이 나고 자란 현재의 땅을 사랑하는 것과 별개의 문제다. 자발적인 선택이 대개 그렇듯이, 마음에 품고 사는 다른 장소에는 개인적이고 내밀한 취향과 꿈, 이상이 담겨 있기 마련이다.”

 

- 7P

 

 

이 부분을 읽고 저자의 표현에 온전히 동감할 수 있었다. 나는 내가 태어난 한국, 서울을 사랑하지만 그동안 살아온 세월동안 머물렀기에 익숙하고 때로는 애증의 감정을 느끼기도 하는 이 도시를 떠나 나의 마음 한 구석 자리하고 있는 이상적 도시로 떠나고픈 갈증을 언제나 느끼고 있다. 물론 그것이 신기루이거나 허상에 불과하더라도 그 곳으로 향하는 마음의 관성은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다.


 

“마치 거대한 유리벽이 있는 것처럼, 나는 이 나라에 그보다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다. (중략) 언어란 그런 것이다. 통하지 않으면 관계를 가로막는 유리벽 같은 것.”

 

- 14P

 

 

그러나 저자의 말처럼 내가 동경하는 나라에 물리적으로 가는 것만이 나의 로망을 해결해주는 방법이 아니기에 나는 주저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언어라는 거대한 벽 밖에서는 영원히 이방인이자 관광객으로 밖에 남을 수 없는 슬픈 현실은 언제나 달콤한 상상이 한 낮의 단잠과 같다는 점을 깨우쳐 준다.


그렇기 때문에 언어를 배우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자신이 마음 속에 품은 나라인 이탈리아에 그저 가까워지기 위해 이탈리아어를 배우기 시작한다. 취업을 위해서라거나, 그 나라 사람과 어떠한 연유로 소통해야 해서라는 구체적이고 가까운 이유가 아닌 조금은 머나먼 꿈과 로망을 이루기 위해서 배우는 언어 공부가 얼마나 까마득할지 알기에 그녀의 도전은 너무나 낭만적이고도 멋있지 않은가.


한 때 저자와 같은 이유는 아니었지만 회화 공부를 하기 위해 이러 저러한 시도를 하던 때가 있었다. 넷플릭스 속에서 흥미로워 보이는 콘텐츠를 골라 쉐도잉을 시도해보기도 하고, 회화 학원을 등록하여 그토록 싫어하던 강남역 주변을 오고 가기도 했다.


 

“외국어 공부란 신화 속 형벌 같다. (중략) 외국어를 배우는 일에 완성이 어디 있는가." - 100P

 

“묵묵하게 쉼 없이 꾸준하게 지속하다가 어느 순간 빛이 밝아 오면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간밤의 그 시간이 헛되지 않았음을, 그 시간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결과물을.” - 131P

 

 

끊임 없이 돌덩이를 산 꼭대기 위로 올리는 형벌을 받았지만, 매번 굴러 떨어지는 돌덩이 앞에서 좌절하는 신화 속 인물처럼, 언어를 공부하는 일만큼 꾸준한 고통을 받는 일도 없는 것 같다. 내가 얼마나 늘었는지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지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느 날은 말이 잘 트이는것 같다가도 어느 날은 언제 그런 적이 있냐는 듯 또다시 벙어리가 되어 버리고 만다.


언어 공부의 결과를 간밤에 내린 눈에 빗댄 저자의 표현처럼, 언어 공부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정말 꾸준함인 것 같다. ‘정말 이게 가능하기는 할까? 내가 할 수 있을까?’와 같은 숱한 의심들과 이쯤에서 그만둬도 될 것 같은 강렬한 유혹 따위는 전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것처럼 꾸준히 정진하여 나아가다 보면 어느새 일취월장한 내 모습을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


항상 꾸준함이 부족해 몇번이고 중간에 주저 앉아 있던 나이지만, 저자처럼 마음속 고향인 그곳과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이제 나아가야 할 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저자 ‘미성’이 새로운 세계로 향하기 위해 어떠한 시도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으며 꾸준히 이탈리아어를 습득한 것처럼, 나 또한 작은 시도라도 미루지 않고 해보려 한다. 꾸준히 노를 젓다 보면 어느새 그 나라 국경과 맞닿은 해변에 정착할 수 있을 그 날을 기약하면서 말이다.

 

 

 

컬처리스트 명함.jpg

 

 

[박다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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