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불의 변주 - 연극 육쌍둥이

글 입력 2023.07.02 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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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육쌍둥이 포스터.jpg

 

 

용산참사를 소재로 한 연극이지만 굳이 용산참사를 모르는 사람들이 봐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은 없을 것 같다. “불”이라는 소재를 다양한 의미로 변주한 점이 무척 새롭고 놀라웠다.


기저귀를 찬 배우들의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아마도 성인용 팬티 기저귀일텐데 맨 다리를 드러내며 연기를 하는 심정은 어떤지 궁금했다. 노인들 중 기저귀를 차는 분들은 그 사실을 숨기려 한다. 연극은 우리 모두 기저귀를 차는 어린아이로 이 세상에 왔고, 어쩌면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도 배설물을 스스로 처리하지 못해 가리기에 급급한 어린아이 같은 상태라고 말하는 듯하다. 작가의 답이 궁금하다.


하필 왜 여섯일까. 역시 작가에게 묻고 싶다.

 

쌍둥이라는 표현은 그럴듯하다. 인간은 모두 호모 사피엔스라는 쌍둥이니까. 한 어미의 몸에서 났지만 이름을 다 다르게 지어준 것도 참신한 발상이다. 가족이니 형제니 하는 구태의연한 설정에 갇히지 않고, 개별성을 드러낸 설정으로 이해했다.

 

인간은 다 거기서 거기지만 또 인간은 다 고유한 개인이라는 것. 아버지를 죽이고 형제들을 죽이고 아들을 죽이는 일련의 ‘죽음’은 기독교적인 발상으로 여겨진다. 폭력과 권력, 돈으로 대변되는 자본주의에 맞서는 방법은 뭘까.

 

 

육쌍둥이 공연사진_2.JPG

 

 

동반자는 무대에서 커다란 영정과 향이 별다른 역할을 못한 점을 아쉬워했다. 관객 입장에서는 처음부터 커다란 영정 리본이 있어 그 부분에 어떤 이미지나 극적 장치가 있을 걸로 기대했다고 한다.

 

반면 리어카를 사용한 연출은 아주 좋아했다. 특히 리어카를 끌고 다니던 경험이 있는 세대였기 때문에 리어카가 상징하는 개발과 이사, 철거, 고물상이나 엿장수 등이 다 떠올랐다고 한다.

 

다만 내가 보기엔 리어카 위에 배우가 올라선 상태에서 끌고 다니는 장면은 다소 아슬아슬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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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 역 조은아 배우의 연기가 좋았다. 발음도 좋고 몸의 움직임도 인상적이었다. 특히 헤어스타일과 의상이 잘 어울려서 처음 말없이 머리를 흔들거나 고개를 숙이거나 펄쩍펄쩍 뛰는 동작 때는 울컥하는 심정이 들기도 했다.

 

쌍둥이들이 폭력을 휘두를 때 강제로 얼굴을 가리는데 결국 조진내를 죽이는 건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겠다. 사실 조진내가 여인까지 죽일 거라고 예상했는데 말이다. 여인의 행동이 어떻게 구원의 계기가 될 수 있는지 궁금하다.


조진내 역 홍원표 배우는 발성이 특이했다. ‘불’을 발음할 때 ‘부우우우울’이라고 길게 발음하는데 처음엔 별로인 거 같았지만 들을수록 감동이 있었다. 기저귀를 찬 어린아이가 처음 말을 배운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히키코모리 같은 청년이 힘들게 세상에 전하는 말 같기도 했다. 캐릭터에 대해 연구를 많이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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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시작 전부터 두 배우가 나와 연기를 펼치고 있는데 관객들은 자리를 찾고 담소를 나누고 휴대폰을 끄는 풍경이 마치 현실에서 우리들의 모습처럼 여겨졌다.

 

천막을 치고 농성을 하는 사람들 사이를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는 우리들의 모습 말이다. 미안하고 어색했는데 공연이 시작되고 배우가 우리에게 말을 걸 때 이제야 들을 준비가 되었다는 걸 알았다.

 

어떻게 하면 서로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연극이 필요한 이유, 예술이 필요한 이유가 이런 데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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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오는 길에 도로를 질주하는 오토바이를 봤다.

 

저렇게 빠르게 위험하게 굉음을 내며 사람들에게 불쾌감과 위협을 느끼게 하면서 달리는 이유가 뭘까. 마음 속에 불이 있어서지.

 

먼저 이유를 생각해봐야지. 그렇다고 용서가 되나. 벌을 안 받아도 되나. 벌은 받아야겠지만 이유도 물어봐야지. 마음 속의 불이 생겨난 이유. 누가 무엇이 불을 질렀는지. 어떻게 하면 불이 꺼질 수 있는지. 그 불이 꼭 나쁜지. 필요한 불, 불가피한 불은 아닌지.

 

‘평화’와 ‘불’은 공존할 수 없는지.

 

 

[한승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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