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수영을 시작했다

글 입력 2023.06.30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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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을 물에 담그는 순간 한기가 올라왔다. 어린 시절부터 냉탕이라면 질색했던 나에겐 몇 번을 반복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순간이다. 입술을 꼭 깨문 채로 목까지 몸을 물에 담갔다. 왠지 모르게 심장이 더 빨리 뛰는 것 같다. 반대편에선 한 사람이 부드러운 몸짓으로, 그러나 맹렬한 파장을 일으키며 이쪽으로 헤엄쳐 왔다. 나는 숨을 들이쉬었다. 스프링처럼 몸을 굽히고 벽을 박찼다. 천천히 다리를 움직였다. 팔을 휘저었다. 그렇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올해 2월부터 수영을 시작했다. 지난해는 내내 허리 디스크에 시달렸었다. 오래 앉아있는 걸 피하라는 의사의 말(사실 그는 내게 퇴사를 권고했었다)에 회사엔 스탠드형 데스크를 신청했다. 늘 허리 보호대를 찼고, 불필요한 약속들을 줄였다. 운동은 당연히 금지였다. 좋아했던 산책도 금지였다. 주말엔 오전부터 병원을 다녀왔고, 가볍게 스트레칭을 했다. 하루 대부분을 누워 있거나 선 채로 보냈다. 지루하고 지난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1년을 보냈다. 다행히 허리는 조금씩 좋아졌다. 통증도 많이 줄었다. 대신 다른 곳들이 나빠졌다. 일단 살이 많이 쪘다. 당연한 일이었다. 먹는 건 그대론데 활동량은 요양원 환자와 비슷한 수준이었으니까. 하지만 해가 바뀌었고, 의사도 슬슬 내게 재활을 추천했다. 처음엔 재활 전문 PT를 받을까 했다. 허나 아쉽게도 가까운 재활센터는 이미 등록 인원이 마감이었다. 대신 어디서 수영이 재활에 좋다는 이야기를 들어 수영을 시작하기로 했다. 마침 집 근처엔 수영장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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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놀이를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 수영장은 작지 않은 도전이었다(내 생애 마지막 물놀이는 중학생 때였다). 수영을 배운 것도 20여 년 전의 일이었다. 제대로 물장구나 칠 수 있을까. 그래서 오죽하면 유튜브로 수영 강습 영상도 찾아봤다. 물론 그 모든 건 나의 기우였다. 몸은 오래전 새겨진 몸짓들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었다. 


대신 진짜 문제는 체력이었다. 고작 반 바퀴(25m)를 갔을 뿐인데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호흡이 거칠어지자 자꾸만 코와 입으로 물이 들어왔다. 다리는 모래주머니를 매단 것 마냥 무거웠다. 결국 두 바퀴 만에 항복을 선언했다. 물 밖으로 나오자 헛구역질이 나왔다. 다리엔 쥐도 왔다. 고작 1년 만에 몸이 이렇게 망가질 수 있구나. 기분 탓인지, 아니면 구역질의 영향인지 혀끝엔 씁쓸한 맛이 감돌았다.


이후로도 수영은 꾸준히 갔다. 일주일에 기본 세 번. 못해도 두 번. 엉망이었던 체력도 조금씩 나아져 이제 5-6바퀴 정도는 너끈히 돈다. 살도 많이 빠졌다. 허리는… 좋아졌을 거라 믿는다. 특별히 아픈 적은 없었으니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수영에 재미를 붙이지는 못했다. 난 여전히 물놀이가 싫으니까. 그냥 운동이니까, 필요하니까, 해야 하니까 한다. 그리고 가끔은 그런 점 때문에 수영이 매력적으로 보일 때가 있다.


물에 들어가기 전엔 여러가지 생각이 든다. 물이 얼마나 차가울지, 앞선 사람과 간격을 얼마나 유지해야 할지, 그럼 속도를 얼마나 내야할지, 지금 남은 체력은 얼마나 되는지 등등. 하지만 막상 수영을 시작하면 그런 것들은 중요하지 않다. 언제 숨을 쉬어야 할지, 팔은 어느 타이밍에 휘저을지 그것만 고민한다. 덕분에 수면 아래에서는 번잡하던 머릿속도 단순해진다. 그 단순함이 요즘의 나에겐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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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부터 경기는 급격하게 나빠졌다. 불경기에 기업들은 불필요한 비용을 줄인다. 마케팅 비용은 1순위 타겟이다. 광고로 먹고 사는 우리 회사에겐 치명적인 일이었다. 결국 회사의 대표는 비상을 선언했다. 연봉은 동결되었고, 일부 구성원들에겐 권고사직 메일이 날아갔다. 회사 분위기는 뒤숭숭해졌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우리 팀은 나쁘지 않은 성과를 거두었고, 조직 개편의 희생양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내가 바라는 건 딱 두 가지였다. 회사가 우리 팀을 건드리지 않는 것. 그리고 내가 하는 일을 방해하지 않는 것.


현실이 된 위기를 돌파하고자 퇴사 인원이 속출하는 혼란 속에서도 구성원들은 모두 애를 썼다. 허나 애석하게도 우울한 전망은 올해 초까지 계속 이어졌다. 결국 회사는 두 번째 조직개편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번엔 우리 팀도 피할 수 없었다. 이어진 개별 면담에서 실장님은 우리 팀이 하던 일을 다른 팀들도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말이 좋아 내재화지, 사실상 해체였다. 


그로부터 2주 뒤 우리 팀은 찢어졌다. 그 과정에서 상처받은 사람들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불과 2달 사이에 기존 팀원 9명 중 4명이 퇴사했다. 나 역시 마음이 쓰라렸다. 나는 회사 안에서의 관계는 회사 안에서만 머물러야 한다고 믿는 편이다. 굳이 그 관계를 사적인 영역으로 끌고 올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회사 생활을 하며 처음으로 애정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 사람들이 주변에 흔들리고 상처받는 모습을 보는 게 좋을 리가 없었다. 올해 초부터 내가 의욕적으로 추진해왔던 프로젝트가 한 순간에 날아간 것도 타격을 주었다. 지난 해 허리디스크로 쓰러졌을 당시 의사의 강력한 권고에도 들지 않던 퇴사에 대한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이후부터는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 모르겠다. 아니, 견뎠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솔직히 당장이라도 뛰쳐 나가고 싶었다. 그러나 당장에 갈곳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매여 있는 것도 너무 많았다. 가족들에겐 일단 올해까지만 버텨보겠다 했지만 사실 지금도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미처 마무리하지 못한 일들과 새롭게 밀려드는 일들의 사이에서 나는 마치 바다 밑바닥을 굴러다니는 조개처럼 이리저리 흔들렸다. 이건 견디는 게 아니라 휩쓸렸다고 해야 더 정확했을까. 물론 새로운 팀원들은 친절했다. 다만 내가 이곳에 더 이상 의욕과 애정을 가지지 못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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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하루가 있다. 살아내는 게 아니라 견뎌야 하는 그런 하루. 그때가 온 요즘 수영을 배워두기를 참 잘했다고 종종 생각한다. 일 때문에, 또는 스트레스, 불안 때문에. 혹은 그 무엇이든 우리를 둘러싸고 익사시키려 한다면 나는 이곳이 수영장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말했듯 수영에서 중요한 건 딱 두 가지다. 언제 숨을 쉬어야 할지, 팔은 어느 타이밍에 휘저을지.


어떤 하루를 견디는 방법도 마찬가지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 그 일을 하는 것. 하다 못해 청소나 빨래같은 허드렛일이라도. 그렇게 조금씩 나아가 보는 것.


오늘도 나는 수영을 마쳤다. 덕분에 마음이 쓰라린 와중에도 시간은 꾸역꾸역 흘러갔고, 퇴근 후 집으로 돌아왔다. 물론 앞으로 얼마나 더 헤엄을 쳐야 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당분간은 스스로를 이렇게 내버려 둘 작정이다. 소모적인 방법이지만 헤엄을 치다 보면 어느 순간 어디로 가야할지 길이 보이기도 하니까. 가만히 천천히 가라앉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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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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