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첫 글쓰기가 언제였더라.
유치원에 가기도 전 아주 어릴 적에, 신문을 보며 글씨를 그리고 있는 나를 보고 어머니는 한글을 가르치기로 했다고 한다. 한글을 배우고 나서는 혼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 책을 만들고 놀았다.
초등학생 때는 학교에서 일기 쓰기를 숙제로 내줬다. 일기장에는 그날 있었던 일을 쓰기도 했지만 당시 나에게 일기장이란 원할 때 원하는 만큼 원하는 글을 쓰면 정기적으로 내 글을 읽는 독자가 있는 일종의 플랫폼이었다. 그래서 장편 SF 소설을 일기장에 연재했다. 담임 선생님과 부모님이 내 독자였다. 글의 이해를 돕는 삽화도 그릴 수 있고 선생님이 댓글도 달아주시니 이보다 좋은 매체가 어디 있었겠는가.
그 즈음 집에 굴러다니던 메모지에 남몰래 소설을 쓰기도 했다.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남몰래 쓴 이유는, 가출 청소년 자매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어느 날은 그런 소설을 썼다는 사실을 누구도 알지 못했으면 해서 메모지를 모두 들고나가 아파트 단지 쓰레기통에 버렸다. 모범적인 학생다운 글만 써야 한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은데, 지금 돌이켜보면 아깝긴 하다.

이후로 독후감 대회, 편지 쓰기 대회, 백일장 등 글쓰기 대회라면 모조리 참여했다. 글을 쓰는 일은 재미있었지만 언제나 모범 답안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성 평등을 이루어야 합니다, 이 책은 매우 교훈적입니다, 비슷한 답을 전제하고 글을 쓰곤 했다. 마음속 한편에는 결국 쓰레기통에 버려졌던, 가출 청소년 이야기를 늘 간직하고 있었다.
고등학생이 되자 점차 학교생활은 대학 입시 위주로 바뀌었고, 나는 그림을 그렸다. 학교에서 글쓰기 숙제를 아주 많이 내줬지만 대충 썼다. 독후감은 서문과 목차만 읽고 써서 냈다. 그러다 한 번 직업 체험으로 일주일간 디자인 회사에 나갔다.
팀장님이 사무실에 있던 디자인 책들을 읽으라고 주셔서 읽고 있는데, 장난기가 많았던 사장님이 보시더니 "너 그거 다 읽고 A4 용지 앞뒤로 한 장 꽉 채워서 독후감 써라."라고 하셨다. 그렇게 쓴 독후감은 오랜만에 진심으로 쓴 글이었다.
대학교에 가서는 프랑스어로 글을 썼다. 에세이도 쓰고 작업 설명도 쓰고 논문도 쓰고 시험도 봤다. 외국어로 글을 쓰려니 한국어처럼 술술 써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한 교수님이 '다와다 요코'라는 작가를 알려 주셨다.
그는 독일어로 글을 쓰는 일본인 작가였다. 그의 글을 읽고, 외국어로 쓴 글이 매력적일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자신감을 얻어 마음 가는 대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문법도 틀리고 이상한 단어가 중간중간 들어갔음에도 재미있다며 깔깔 웃으시는 교수님들의 모습을 보고는 기분이 좋았다.
졸업 후에는 블로그를 만들었다. 내 경험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해서 정보성 글을 올렸다. 가끔은 문득 드는 생각을 길게 써서 올리기도 했다. 브런치 작가도 되었다. 그렇게 내가 원할 때 원하는 만큼 비정기적으로 글을 써서 올리다가 아트인사이트 28기 에디터에 지원하여 매주 글을 기고하게 되었다.

이렇게 한 플랫폼의 에디터로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으니, 내게는 미술이 전문 분야이지만 다른 분야의 글도 써보려 노력했다. 처음으로 영화 리뷰도 썼다. 스스로 뿌듯한 글도 썼지만 마감 시간이 임박해 마음에 들지 않는 글을 올린 적도 있다. 글감을 찾아 몇 년 전에 쓴 일기장을 뒤적이기도 했다.
아트인사이트 에디터로 활동한지 벌써 4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알게 된 점이라면, 나다우면서도 재미있고 나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담은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자극적이고 짧은 볼거리가 즐비한 2023년에도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글을 읽고 있고, 읽고 싶어 하며, 읽을 글을 찾아다닌다는 것.
좋은 글과 좋은 작업으로 앞으로의 나날을 채워나갈 작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