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삶이라는 농담

농담에 우는 사람이 있어서
글 입력 2023.06.26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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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류진 작가의 신작 <연수>에 적힌 작가의 사인이 너무 좋아서 몇 번을 들여다 봤다.

 

 

J와 어깨를 맞대고 울던 날 집에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나는 미처 확인하지 못한 지난 알람들을 확인했다. 눈에 띄는 알림은 별로 없었다. 뭔가 하나 시선을 끌기에 술에 흐려진 눈을 억지로 잡아 떴더니, 장류진 작가의 신작 소식이었다. 망설임도 없이 예약 구매 버튼을 누르고 잠에 빠졌다.


최근에 뭘 집으로 주문한 적이 없는데 택배가 온다고 해서 의아한 마음으로 집에 도착했더니, 그날 주문한 책이 왔다. 제목은 <연수>. 누군가의 이름일까,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 새로운 단어인가 했더니 첫 챕터에서 의문이 바로 해결됐다. 


운전 연수의 그 연수였다. 연수(硏修)는 무엇을 연구하고 닦는 행위를 뜻한다. 운전에 너무 딥한 단어가 붙는 게 아니냐 하고 웃었더니 J가 짐짓 정색을 하고 누군가에겐 목숨이 달린 일인데 연구하고 닦아야지,라고 맞받아쳤다. 


나의 운전 연수는 쉬웠다. 무언가를 관찰하기 좋아하는 습관은 보기만 해도 그럴듯하게 따라 하는 데에는 제법 도움이 됐다. 성격 급한 아빠의 운전 습관을 그대로 받아버린 것은 조금 에러긴 하지만(첫 도로 주행에 면허 취소 경험이 있냐는 질문을 들었다). 그래도 한 번에 면허를 따고 이래저래 무사고 경력을 유지하며 운전을 하고 다닌다. 운전 연수처럼 다른 연수도 쉬웠으면 좋았을 것을. 


삶에는 여러 연수가 등장하고 그것들은 자주 모습을 바꾼다. 어떤 해는 대학 입시가 되고, 어떤 해는 취업 준비가 되며, 어떤 해는 이별이 되고 어떤 해는 사랑이 된다. 


초보 딱지를 붙이고 사고도 내고, 옆 길로 잘못 빠지기도 하고, 아연한 얼굴로 차에서 내린 후 '탈락' 소리를 듣는 일은 운전이 아니어도 삶의 구석구석에서 얼마든지 발생하는 일이라. 그런 빈번함이 가끔은 무섭게 느껴진다. 우리는 대체 무엇을 향해 달려가기에...


엄마와 아빠는 50세가 넘은 나이에 대학원을 다니고 있다. 두 사람이 다시 펜을 잡기까지 무슨 다짐이 있었을지는 나는 아마도 평생 모를 것이다. 완전히 무지한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생각보다 많은 용기를 요구한다는 걸 삶의 매 페이지에서 느낀다. 가끔은 몰라도 될 정도의 무모함을 견디는 일이 삶을 지속할 정도로 즐겁고, 단숨에 멈추고 싶을 정도로 벅찬 일이라는 것도 매번 갑작스럽고 새롭다.


이직을 하고 나니 '요새 일은 어때'라는 말을 자주 듣는데 이젠 그 말이 공격처럼 느껴져서 움츠러든다. 나 사실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것 같아. 발 밑이 자꾸 부스러지는 것 같아서 호들갑을 떨면서 여러 땅을 두들기면서 살아. 너무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더니 미간이 좁아지는 것 같아서 거울도 자주 들여다 봐. 엉망이야. 

 

꾹꾹 참는 말이 조그만 자극에도 터져나오려고 해서 복어처럼 부푼 몸과 마음으로 주말까지 둥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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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갑자기 일어나는 일은 없을 텐데, 주변에 신경을 쓰지 못했더니 모든 일이 갑작스럽게 느껴진다. 어제까지만 해도 서늘해서 가디건을 들고 다녔는데 하루 만에 후끈해진 공기와 느닷없이 내리는 비에 '진짜 여름이네'라는 말을 습관처럼 한다. 올해는 한국의 여름보다는 좀 더 남쪽의 계절을 가져와 맞는 것 같다. 

 

그래도 여전한 것들이 있다...능소화가 피었다. 어느 날 출근길 갑자기 주렁주렁 피어난 능소화를 발견했다. 갑자기 피었네, 중얼거렸다. 아닌 걸 알면서도. 이사 온 동네를 사랑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집에서 내려오는 골목을 휘감고 있는 정체 모를 덩굴이 바로 능소화의 둥지라니, 매년 여름을 고대할 일이 생긴 것 아닌가. 나는 죽을 상을 하고 출근을 하면서도 능소화 밑에서는 잠깐 웃는다. 나는 잔뜩 메마른 땅을 위해서는 세찬 비를 기도하면서 너를 위해서는 가뭄을 기도한다. 

 

삶은 이토록 농담 같다. 

 

삶이 농담 같아서 다른 우스갯소리는 통하지를 않는다. 웃음과 여유를 잃고 싶지 않아서 발버둥을 쳤더니 다른 게 무너지고 있어서 여전히 나는 멀티형 인간은 아니구나 하고 때때로 좌절하곤 했다. 그래도 뭐 어때, 그 말을 나에게 던져주기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리겠구나. 이번 연수의 챕터는 조금 길겠구나, 그런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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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소중한 사람이 적재적소에 필요한 말을 해준다는 건 축복...그 이상

 


여름이 지나면 내 곁을 지켜주던 사람들이 몇 떠나게 된다. 어떻게 이렇게 소중한 사람들이 자신의 길을 알아서 척척 찾아서 덜컥 떠나버리는지. 미국으로, 영국으로, 호주로. 몇 개의 바다를 건너야 비로소 만날 수 있는 거리의 곳으로 떠난다. 

 

게 중에는 다시는 한국 땅을 밟지 않으리라 호언장담한 사람도 있다. 네가 없는 적막한 지구에서 난 어떻게 버텨야 하느냐. 우주로 가는 것도 아닌데 지구가 웬 말이야. 평소라면 그렇게 웃었을 그 사람은 자신이 좀 더 부지런해지겠다는 말을 돌려보냈다. 

 

왜 이런 말에 눈물이 날 것 같은지. 

농담에 우는 사람이 어딨어. 

그러게 말이야. 요새는 농담에도 눈물이 나네. 

그것도 농담 같다. 

그러게.

 

삶이라는 농담에 마음껏 웃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너를 위해서도 빌어주려 해. 네가 없는 여긴 적막하고 지루하겠지만. 우리 모두 농담처럼 또 갑자기 만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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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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