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교환학생이 스펙이 될까요? [사람]

글 입력 2023.06.17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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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환학생을 준비할 때 따라오는 질문이 하나 있다. "교환학생이 스펙이 될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지난 1년 동안 미국에서 교환학생으로 경험한 내용을 토대로 답해보려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스펙이 될 수도 있고 안될 수도 있다. 1년 동안 교환학생으로 타지에서 산 경험을 본인 미래에 어떻게 연결지을 것이냐는 본인에게 달렸다.

 

독자들은 이런 진부한 이야기를 들으려고 내 글을 읽는 게 아닐 것이다.

 

그럼 난 1년의 교환 생활 동안 무엇을 얻었는가?

 

 

1. 나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와 깨달음

 

교환학생 가기 전 친구들에게 떠들었던 나의 목표는 "Party Person (파티를 즐기는 사람)"이었다. 가기 전까지 스스로가 파워 E 성향, 외향형이라고 믿었던 나는 미국에 간 이상 매일이라도 파티에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외국인 친구들과의 교류, 그리고 한국과는 다른 서구 문화를 접하면 접할수록 내가 그렇게 외향적이지 않다는 것을, 내가 그렇게 시끄러운 곳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소수의 친구들과 만나 조금은 무게감 있는 주제들로 이야기하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다른 문화와 정서적 차이 때문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스스로가 혼자 있는 시간을 더 즐기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파티에 가지 않아도 외국인 친구들과 억지로 웃으며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홀로 있는 시간을 즐길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교환학생으로 지내는 1년이라는 시간 동안 미국내 9개의 도시와 캐나다, 프랑스, 영국 등 정말 많은 곳을 여행하면서 부딪히는 크고 작은 위기들을 만났다. 유심없이 토론토 시내 한 복판을 돌아다니기도 했고, 재즈의 본고장인 뉴올리언스에서는 총기 사고를 직접 목격했으며 영국에서는 "Stay No Fantasy (판타지에 머물지 말라)"는 시위를 마주했고 프랑스에서는 캐나다로 입국할 비자가 없어 비행기를 놓쳐 공항에서 하루를 꼬박 지새운 적도 있었다. 이렇게 여행지에서 만난 숱한 고난은 때로 나를 좌절시켰고, 부푼 기대를 안고 오른 여행길을 어둠에서 헤엄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런 크고 작은 위기들을 만나고 해결하면서 단단해진 나를 만나게 되었다. 인간은 그렇게 쉽게 죽지도 망하지도 않는다는 믿음이 생긴 것이다. 한국에 있을 때 나는 대단히 조급한 사람이었다. 일이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불안감에 떨었다. 시험 하나를 준비할 때도 한 번에 끝내야 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더 극한으로 내몰았다. 그랬던 내가 여행을 하면서 숱한 위기들을 만나면서 해결되는 과정을 몸소 겪으니 그렇게 심각한 일은 세상에 없다는 것을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신이 있다면 인간에게 견뎌낼 만한 딱 그만큼의 고통만 안겨준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딛고 일어서면 엄청난 안도감, 그럼에도 살아냈다는 행복을 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깨달으니 편해졌다. 때론 가까운 길을 버리고 돌아가는 먼 길에서 인간은 행복을 느낀다는 것, 나도 그렇게 돌아가는 길을 즐길줄 아는 사람이 된 것이다.

 

 

2. 추상적이었던 꿈, 세상에 내놓다


교환에 오기 전 나의 목표는 "내 글을 쓰는 것"이었다. 기회가 된다면 영어로 글을 써서 출판하는 것이 나의 큰 목표였다. 이 말을 듣던 교수님은 내게 외국인이 영어로 쓴 글이 받아들여지는 것은 꽤나 어려울 거라고 말씀하셨다. 그럼에도 나는 꿈을 접지 않았다. 홀로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낼 기회가 많았다. 미국에 있는 1년 동안 나는 블로그에서 총 47개의 글과, 브런치에서 12개의 글을 발행했다. 매달 5개의 글을 쓴 셈이다. 누군가 "왜 그렇게 많은 글을 썼냐"고 묻는다면 "쓰다보니 쓰게 되었다"고 답하는 게 맞을 것이다. 나도 내가 이렇게 많은 글을 쓰게 될줄 몰랐기 때문이다. 한국어로 글을 쓰는게 익숙한 한국인이 타지에서 그것도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미국에서 영어로 글을 쓴다는 것은 교수님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모국어의 바다는 넓어서 내 생각을 온전히 영어로 담아내는게 쉽지는 않았다. 저널리즘을 복수전공 하는 학생으로서 영문 기사를 작성하는 것은 나의 가장 큰 목표였다. 그리고 그 기회는 뜻하지 않게 찾아왔다. 영화 <기생충>의 흥행과 더불어 한국 라면에 대한 인기는 미국 내에서 높아졌고, 실제로 내 주위 미국 친구들도 한국 라면을 즐겨 먹고 있었다. 이를 주제로 미디어 수업에서 영문 기사를 작성했고, 수업에서 작성한 기사를 나이아가라 지역 신문에 기고할 수 있게 되었다.

 

2-1. 기회는 또 다른 기회를 낳고, 경험은 또 다른 경험을 낳는다

 

그렇게 자신감을 얻게 된 나는 에세이 '출판'이라는 꿈을 가지게 되었다. 미국에 오기 전에 팝아트 의 거장 앤디 워홀에 한참 빠져 작성한 글이 있는데, 영어로 번역하여 미국 사이트에 발행하고 싶었던 것이다. 목표가 생기자마자 교수님을 찾아가 피드백을 요청했다. 교수님은 나의 글을 천천히 읽으시면서 문법과 표현에서 수정할 부분을 알려주셨고, 나는 그것을 받아들여 최종본을 완성했다. 미국은 기회의 땅이라고 했던가. 미국 교수님들은 내가 먼저 두드리는 순간 모든 것을 가르쳐 주셨다. 운이 좋게 한 교수님께서 산문 대회, 출판과 기고와 관련한 사이트를 알려 주셨고, 실제로 나는 출판사에 직접 간단한 소개와 함께 내 작품들을 보냈다. 아쉽게도 출판은 할 수 없었지만 직접 커버 레터를 보내고, 내가 직접 영어로 번역한 글을 출판사에 보낸 진귀한 경험들은 꿈에 한 발짝 더 가까워지게 해주었다.

 

나는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수많은 미술관에 방문했다. 그때마다 한 번 보고 사라지는 그림에 대한 인상이 아쉬웠다. 내가 본 작품을 내가 본 인상대로 기억에 남기고 싶었다. 그래서 기록하기 시작했고, 이렇게 완성한 것이 브런치의 'Art Gallary'라는 매거진이다. 하나 둘 작성하기 시작한 것이 총 11개의 글이 되었고, 그중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 대한 글이 뉴욕을 소개하는 사이트에 소개되기도 했다. "내가 보고 느끼고 경험한 것들을 다 세상에 풀어내고 오자!"는 원대했던 나의 교환 목표는 현실의 윤곽을 갖추게 되었다.

 

 

3. 미국에서 경험한 삶의 현장

 

나는 미국 사회를 여행자가 아닌 현지인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싶었다. 학생의 신분으로 용돈벌이로 시작한 다이닝 아르바이트에서 나는 미국의 이면을 목격했다. 다이닝에서 일하는 순간에 나는 더 이상 외국인이 아닌 미국 노동자로 똑같은 대우를 받았다. 나는 그들과 함께 열심히 일을 했으며, 그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았다. 잠시 여행자의 신분에서 벗어나 현지인들과 함께 살을 맞닿으며 일한 경험은 나에게 있어 정말 값진 것이었다. 나는 고작 4시간을 일하고 뜨는 그곳에서 그들은 하루 반나절 이상을 일한다. 나는 잠깐하고 언제든 그만둘 수 있는 일터가 그들에게는 생계가 달린 것이다. 나는 미국 노동자들을 만났고 노동 환경을 경험했으며 근무 시스템을 보았다. 스파이마냥 노동 시스템을 눈으로 익혔으니 미국의 또 다른 면을 본 셈이다.

 

교환학생으로 첫 발을 내딛을 시점, 내가 목표한 마지막 말은 "그냥 잘 놀았네"가 아니었다. 교환학생에 대한 이미지가 어떠한지는 몰라도, 이에 따라오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탈바꿈하고 싶었다.

 

"1년 교환 갈 바에는 그냥 한국에서 자격증, 인턴, 대외활동 등을 하는게 스펙적으로 더 이득이 되지 않을까요?"

 

나라고 이 고민을 왜 안했겠는가. 그러나 나는 스펙보다는 경험의 가치를 믿는 사람이다. 

 

스펙(Spec)은 원래 컴퓨터 사양을 비교할 때 쓰는 말이라고 한다. 나는 앞으로도 컴퓨터가 아닌 인간으로 살고 싶다. 

 

끝으로 지난 1년의 교환학생으로 느낀 모든 것을 다음의 문장이 함축한다.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그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한참의 세월이 지나 오래전에 겪은 멀미의 기억과 파장을 떠올리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는 것. 생각해보면 나에게 여행은 언제나 그런 것이었다." - 김영하 <여행의 이유> 중


 

[박진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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