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것만 하고, 이것만 하고 나면 [사람]

때론 불완전함이 필요한 순간
글 입력 2023.06.15 11:20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그 남자는 부자가 되어야 행복할 것이다.

그러기 전까지는 그는 형편없는 인간에 불과하다.

그가 편협한 생각을 갖고 있는 건지는 모르지만

그는 남에게 친절 따위를 베풀 시간이 없다.

 

그 여자는 뚱뚱하다.

그래서 아무도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다.

자신이 왜 이런 불행을 타고 났는지

그녀는 이해할 수 없다.

효과적인 다이어트 법을 발견하지 전까지는

세상은 그녀에게 재미없는 곳이다.

 

또 다른 남자가 있다. 그는 인정받고 싶고,

명성을 얻고 싶다.

따라서 지금은 한가로이 웃고 지낼 시간이 없다.

그 모든 것을 손에 넣었을 때

그는 자신만의 아름다운 섬에서 살 것이다.

 

또 다른 여자가 있다. 그녀는 못 생겼다.

그녀는 사람들의 시선이 애정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는 걸 잘 안다.

때가 되면 그녀는 턱뼈를 깎고 코 수술을 할 것이다.

그때가 되기 전까지는

그녀 혼자 있게 내버려 두라.

 

그리고 또 다른 여자는 집안일 때문에 시간이 없다.

아이들을 다 키우고 나면

그때 그녀는 자신의 인생을 살 것이다.

그때가 되기 전까지는

계속 집안일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자신이 원하는 일을 뒤로 미루면서

 

이들 모두가 어떤 계기를 만났다면

틀림없이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고

모든 사람을 사랑했을 것이다.

더불어 그들의 영혼도 성장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너무 오래 기다렸다.

왜냐하면 그들 모두 죽었으니까.

 

<너무 늦기 전에>_덕 시니어

 

 

완벽주의를 주제로 잡고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곧장 필사 노트를 꺼냈다. 오래전 필사를 처음 시작했을 당시, 우연히 읽게 된 시로 나의 필사 노트 첫 장에 자리한 글이었다. 그때와 지금의 나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었기에, 당시에도 머리를 한 대 맞은 거 같은 기분으로 읽자마자 필사했던 기억이 난다.

 

어릴 때의 난 다이어트에 성공하고 나면 예쁜 옷을 사고 스스로를 꾸미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나에게 안 어울린다는 핑계로 예쁜 옷을 사지도 못하고, 자신을 가꿀 줄 모른 채 몇 년을 허비했다. 대학생 때의 난 시험만 끝내고, 자격증만 취득하고, 그 모든 걸 다 끝내면 친구들과 놀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그 어떤 것 하나 온전히 이루지 못한 채 친구들과의 소중한 시간과 추억을 날렸다. 졸업 후의 난 정말 가고 싶었던 회사에서 요구하는 스펙만 완벽히 준비하고 나면 지원서를 제출하겠다 다짐했다. 그러나 길어지는 준비 속에서 이미 채용이 이루어져 지원조차 하지 못했다.

 

모든 게 완벽해야 했다. 다음을 넘어가기 위해선 전 단계를 마무리 지어야만 했고, 행동하기 위해선 생각을 완벽히 정리해야만 했고,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선 지금 하는 일을 완전히 끝내야만 했다. 당장 눈앞에 놓인 것을 완벽히 해내지 않으면 다음은 없다고 생각했다. 준비만 완벽해지면 모든 게 순조롭게 진행될 줄 알았고, 완벽한 준비 끝에는 목표 달성과 성공만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다.

 

이것만 하고...

이것만 끝내면...

이것만 하고 나면...

 

늘 이런 식이었다. 그렇게 나는 눈앞에 놓인 완벽을 추구하느라 다음에 다가서지 못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다음을 놓쳤으면 눈앞에 놓인 것만이라도 완벽히 해내야 하는데, 그것조차 하지 못했다. 그냥 어정쩡하게, 애매하게, 찝찝하게… 이러한 단어들의 연속이었다.

 

 

실패나 실수를 용납하지 못하는 완벽주의자들은 '사는 재미'를 모른다. 매일같이 높은 목표를 세워 놓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오늘을 다 바치기 때문이다. 목표를 이루지도 못했는데 도중에 삶을 즐긴다는 건 그들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중략)

하지만 그들이 '이럴 땐 어떡하지?', '저럴 땐 어떡하지?' 하면서 경우의 수를 따져 볼수록 준비 목록은 더 늘어나고, 그에 대한 대비책을 세우느라 결국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한다. 계속 준비만 하다가 인생을 다 보내는 것이다. 그런데 모든 것이 완벽하게 준비되어야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하면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한다. 내일 당장 어떤 일이 벌어질 지 모르는데 그 모든 위험성을 예측하고 예방해 놓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_30p

 

 

위 내용은 마치 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온 내 모습을 작가가 감시 카메라로 지켜보고, 그러지 말라며 조언하기 위해 쓴 글 같았다. 나는 ‘사는 재미’를 몰랐고, 다음에 닿기 위해 준비만 하느라 현재를 놓치며 살았다. 불확실한 미래만을 바라보면 오늘 하루를 바치고, 이걸 끝내지 못한 상태에서 현재를 즐긴다는 건 사치라 여겼다. 바보같이 에너지를 나누는 법을 모른 채 준비에만 모든 에너지를 쏟으며 현재를 외면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이러면 안 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완벽한 준비에 눈이 멀어 다음을 놓쳤던 게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그런데도 머리와 행동이 따로 노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지금의 난 그때와 변함없이 여전히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있다.

 

이 글은 어쩌면 반성문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지난 날의 나를 책망하며 앞으론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하는. 내일 아침이 되면 또 같은 행동을 반복할 게 뻔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보는 이 곳에 반성문을 남기는 이유는 딱 두 가지다. 글을 통해 내 모습을 객관화시켜 1%라도 나아진 내 모습에 대한 기대. 그리고 수많은 완벽주의자들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 각자 어떤 형태의 ‘완벽’을 추구하는지 잘 알지 못하지만, 이 사실 하나만은 꼭 알려주고 싶었다.

 

가끔은 불완전함이 필요할 때가 있다고.

 

 

[지은정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7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