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짜장 빙수 없는 세상에서, 카레는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까 [영화]

<범죄도시> 시리즈에게 남은 숙제
글 입력 2023.06.15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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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은 한국 영화가 유례 없는 위기를 맞이한 시기였다. 코로나19 기간 동안에야 애초에 관객들이 극장에 오질 않으니 영화가 흥행하기 어려웠다지만, 팬데믹이 수그러든 지 한참이 지나도 한국 영화에 대한 관심이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니 문제였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 <스즈메의 문단속>,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3> 등 외국 대작들은 수백만 관객을 잘만 넘기는 상황에서, 한국의 대작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러니까 2022년 말에 개봉한 <올빼미> 이후, 2023년의 절반이 지나가도록 단 한 편의 한국 영화도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한 대참사가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여기 그 부진을 비웃기라도 하듯, 이미 손익분기점을 4배나 훌쩍 넘겨 버린 한국 영화가 있다. 바로 <범죄도시 3>이다. 처음엔 기대하지 않았는데 의외로 흥행한정도의 영화였던 범죄도시는, 후속작인 <범죄도시 2>20221200만 관객을 동원하면서 그야말로 대박을 터뜨렸다. 물론 이 시리즈의 제작 계획이 8편까지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땐, 같은 패턴의 반복이 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심심찮게 나왔다. 그러나 그럼에도 믿고 볼 수 있는 한국 영화 시리즈가 드디어 나오는 것이냐는 기대감도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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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의 희망 섞인 시선 속에 세상에 나온 <범죄도시 3>. 결국 또 한 번 1000만 관객 돌파를 눈앞에 둔 현 상황에서, IP의 흥행력을 의심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다만 압도적인 찬사를 받았던 1편과 2편에 비해, 3편에 대한 평가는 미묘하게 엇갈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 영화계에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는 이 IP는 어떻게 이렇게까지 뜨거운 관심을 받을 수 있었는지, 그리고 이들이 마주하고 있는 과제는 무엇인지 알아본다.

 

 

 

물리지 않는 카레를 만들려는 각고의 노력


 

최근 <범죄도시 3>을 음식에 빗대 폭발적 인기를 얻은 글이 있다. ‘<범죄도시 3>은 엄마가 끓여준 카레를 세 끼 연속으로 먹는 것 같다는 것이다. 댓글에 달린 질려서 밖에 나가면 짜장 빙수나 코코아 우동만 팔고 있어서 결국 돌아오게 된다는 언급도 함께 공감을 얻었다. 사실 범죄도시 시리즈와 작금의 한국 영화 시장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은 이 비유들로도 충분히 요약된다. 범죄도시 시리즈는 포맷이 신선한 것도 아니고 엄청난 울림을 주는 작품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막상 보게 되면 시간은 잘 지나가니 그조차도 해내지 못하는 일부 영화들보다는 낫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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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반응을 예상하기라도 한 듯, <범죄도시 3>에서 가장 크게 읽히는 건 물리지 않는 시리즈라는 인상을 주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다우선 원톱 주연인 마석도의 조력자들을 경찰서에서 광수대 형사들로 전면 교체했고전작과는 달리 메인급 빌런을 2명으로 늘렸다제작까지 맡은 배우 마동석은 대중이 좋아하던 익숙한 부분을 계속 유지하면 흥미가 떨어질 거라 생각한다이런 교체에 나름의 고민이 들어갔음을 분명히 했다.

 

스토리적 요소뿐 아니라 장르에도 변화를 줬다우선 액션의 양상이 판이하게 달라졌는데, ‘무술적인 요소가 크게 부각되지 않았던 전작과는 달리 마석도의 액션에 권투식의 움직임을 집어넣어 신선함을 느낄 수 있게 했다또 이런 장르 안에서의 변주뿐 아니라장르 자체를 바꿔 영화 전반에 흐르는 분위기를 바꿔놓으려는 시도도 빼놓지 않았다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답게 잔혹함이 강조된 1, 1편보다는 덜하지만 호러적인 연출이 자주 활용된 2편과는 다르게, 3편은 무섭다기보다는 웃긴’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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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에 대한 오마주, 영어와 일본어를 넘나드는 언어 유희, 찌질해서 웃긴 감초 캐릭터의 등장, 원초적인 몸개그까지. ‘코미디를 장르로 표방한 웬만한 작품보다 더 웃음 코드가 많은 이 영화는, 적어도 시원한 주먹 액션과 함께할 수 있는 새로운 장르적 재미를 개척하는 데는 확실히 성공했다. 높은 타율의 잘 짜여진 코미디로 극장 안의 관객들을 쉴새없이 웃겨대는 이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제작자로서의 마동석이 이 IP의 존속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만큼은 확실히 믿을 수 있게 된다.

 

 

 

빌런을 둘로 나누면?


 

아쉬움이 남는 변화도 있다. 관객들이 일관되게 지적하는 건 빌런의 무매력이다. 사실 지금껏 범죄도시 시리즈의 흥행을 견인해온 건 빌런 캐릭터의 매력과 흉악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느 히어로물의 빌런처럼 사연 있는 빌런은 아니더라도, 범죄물답게 인간 같지 않은 잔인한 짓들을 서슴없이 저지르는 그런 빌런 말이다. 1편의 장첸과 2편의 강해상은 그런 면에서, 단순히 극중 피해자들뿐 아니라 관객에게도 공포감을 줄 정도로 묵직한 서늘함을 가진 캐릭터였다. 그랬기에 장첸의 자만심을 드러내는 대사인 니 내 누군지 아니?’, 눈 하나 깜짝 않고 피해자를 협박하는 강해상의 너 납치된 거야도 엄청난 인기를 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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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본작의 빌런인 주성철과 리키는 그만큼의 포스를 보여주지는 못한다. 사실  문제는 배우의 연기력보다는 이번 영화의 각본 자체에서 비롯되는데, 우선 1편이나 2편과는 달리 3편에는 관객들에게 직접적인 공포감을 주는 스릴러적 시퀀스가 없다. 그들은 생각보다 멀쩡한방식으로 누군가를 죽일 뿐, 손가락을 박살내고 시체를 토막내거나(장첸) 팔을 자르는(강해상) 등 엽기적인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는다. 또 연출적인 면에서도 숨막히는 정적 속에서 인물을 노려보거나(장첸), 관객들만 볼 수 있는 곳에서 인물에게 성큼성큼 다가가는(강해상) 등 관객의 긴장감을 증폭시킬 장면들이 대폭 줄었다.

 

이야기의 소재상 빌런들이 일반인에게 위해를 가하는 장면이 사라졌다는 점도 크다. 조폭 보스인 장첸은 타 조폭의 두목이나 조직원뿐 아니라 룸살롱 매니저, 심지어 노인과 아이까지도 칼로 찔러대고, 납치범인 강해상 역시 무고한 인질이나 대낮에 거리를 활보하는 경찰들마저 죽이려 드는 무자비함을 보인다. 그러나 이번 작품의 경우 마약을 쟁탈하려는 범죄자들 사이에서만 싸움이 계속되다 보니, 두려움을 조성해야 할 빌런들의 싸움 장면이 천인공노할 악행이라기보다는 잘 짜여진 액션씬정도로 보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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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으로, 빌런이 두 명으로 분산되면서 재미도 분산됐다. 슬픔을 둘로 나누면 슬픔이 두 배가 되는지, 아니면 슬픔이 반으로 줄어드는지에 대한 소소한 논쟁이 있는 것처럼, 이 문제도 사실 빌런을 여럿 세운 것 자체가 언제나 좋거나 나쁘다고 판단하긴 어렵다. 다만 이번 3편을 통해 확실해진 건, ‘범죄도시라는 시리즈의 포맷 안에서는 한 명의 빌런을 두는 쪽이 더 몰입감 있다는 점이다. 시간 관계상 두 악인의 악행이 어정쩡한 수준에서 끝나다 보니, 마석도가 이들을 퇴치할 때의 통쾌함도 예전만 못해졌기 때문이다. 그래도 명색이 범죄도시인데, 범죄물로서의 완성도가 떨어졌다는 건 결코 좋은 일이 아닐 테다.

 

 

 

고착화를 영리하게 피하는 법 


 

물론, 이런 점은 어디까지나 아쉬움으로 남을 뿐 작품의 재미 자체를 크게 훼손하는 요소는 아니다. 결과적으로 스릴러의 장르적 요소를 덜어낸 딱 그만큼, 액션과 코미디에서의 쾌감은 늘었기 때문이다. 이미 성공한 시리즈라 해도 동어 반복에 빠지지 않기 위해 치열하게 활로를 모색하는 이런 자세는, 최근 이름값만 믿고 재미에 대한 고민을 놓아 버리다시피 한 한국 영화들과 비교할 때 분명 긍정적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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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언제까지고 한국 영화들이 정신을 못 차릴 거란 보장은 없다. 범죄도시 2, 3편이 대흥행을 거둘 수 있었던 건, ‘망해가는 한국 영화계 속 유일한 희망이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졌기 때문임을 부정하기 힘들다. 더 이상 한국 영화계에 짜장 빙수나 코코아 우동이 아니라 제대로 된 달달한 빙수와 풍미 있는 우동이 나오기 시작한다면, 그때도 카레에 해당하는 범죄도시 시리즈가 관객들의 압도적인 선택을 받을 수 있을까? 확신하긴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 범죄도시 시리즈는 고착화를 피해 신선함을 확보하면서도 기존 시리즈의 매력 포인트를 잃어서도 안 된다는, 어려운 과제 앞에 놓여 있다. 짜장 빙수 없는 세상에 대비하기 위해, 매번 색다른 재료를 넣은 카레를 선보이면서도 그 핵심이 되는 맛은 잃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기 위해, 이 시리즈는 무엇에 유념해야 할까?

 

결국 모든 문제는, ‘대중성과 작품성 사이의 줄다리기로 귀결된다. 앞서 언급한 스릴러에서 코미디로의 장르 변경 역시 유사한 맥락인데, 결과적으로 지금까지의 범죄도시 시리즈는 대중성은 점점 올라가지만 작품성은 조금씩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줬다. 만약 <범죄도시 4>가 같은 변화를 한 번 더 반복한다면, 그때는 영화로서의 짜임새가 크게 떨어지지는 않을지 우려되는 지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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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범죄 장르에서 인물의 서사나 추리 과정에 개연성이 떨어지는 점은 다소 치명적일 수 있다. 1편에서는 장첸이라는 인물이 악행을 저지르는 동기가 충분히 묘사되었고, 마석도가 그를 추적하는 과정 역시 속임수와 전략이 밀도 있게 배치되어 짜임새 있게 연출되었다. 그러나 2편에서 강해상의 경우 빌런의 행동이나 강함에 마땅한 개연성이 없다는 지적을 받은 바 있고, 3편에서 이런 문제는 더 심화됐다. 빌런 두 명의 서사도 부족할 뿐 아니라, 숨겨진 마약이나 범인의 정체를 찾아내는 추리 시퀀스 역시 중간 과정이 지나치게 생략되어 개연성에 타격을 입은 것이다. 물론 이런 단점들을 알아챌 새도 없이 빼곡히 들어선 양질의 코미디와 액션씬들이 이를 상쇄해주긴 했지만, 약점을 강점으로 덮기만 하려다간 한계에 부닥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결국 약점 자체를 없애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바로 마동석, 아니 마석도의 캐릭터성이다. 전작에서 마석도라는 캐릭터는 영화 속 세계 안에 존재하는 츤데레캐릭터로만 보였지만,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마석도가 스크린 밖의 눈을 의식하는 귀여운마동석으로 보인다는 점이 독특하다. 예를 들어 <범죄도시>에서는 마석도가 룸살롱에 가는 장면을 보여주는 등, 딱히 그를 도덕적인 인물로 만들려는 연출적 노력이 행해지지 않았다. 그러나 <범죄도시 2>로 넘어가면서부터 그에게 나쁜 놈은 잡아야 돼같은 정의로운 신념이 생기기 시작하더니, 이번 편의 마석도는 거의 한 씬에 두 번씩은 코미디풍 대사를 치며 관객들을 웃기려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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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선택은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탁월한 선택일 수 있지만, 확고한 캐릭터성을 구축하는 데는 독으로 작용할 전략일 수 있다. 원톱 주연물에서는 언제나 캐릭터가 작품의 중심을 잡아야 하는데, 시리즈가 지나가면서 캐릭터의 성격이 갈팡질팡한다면 문제일 것이다.


최근 큰 인기를 끈 <존 윅> 시리즈에서, 말할 시간을 아껴 가며 사람을 죽인다는 존 윅의 캐릭터성은 4편 내내 유지됐다. ‘그런 얘기 할 시간에 존 윅은 n명을 더 죽인다는 밈(meme)은 그 확고함과 우직함에서 나왔다. 그리고 시리즈의 재미를 더해준 변주는 그 근원적인 캐릭터성이자 이야기의 뼈대가 아닌, 액션의 테마나 빌런의 스타일처럼 이야기의 줄기 단위에서 이루어졌다. 시리즈물로서의 브랜드 가치와 작품성을 완성시키는 건, 언제나 주연 캐릭터의 일관된 매력과 그 주변 요소의 다채로운 변화임을 염두에 둬야 한다.

 

 

 

<범죄도시 8>이 박수받으며 떠날 그날까지


 

부족함이 좀 있더라도 미워할 수는 없는 이 매력적인 시리즈가, 부디 마지막까지도 관객들의 뜨거운 응원 속에 막을 내릴 수 있길 진심으로 바란다. 비록 이 영화가 재미없는 한국영화의 안티테제처럼 간주되고 있기는 하지만, 결국 범죄도시 시리즈는 매번 침체된 극장가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다시금 피워내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 영화가 늘 엄청난 흥행을 거두는 건 비단 마동석뿐 아니라 관객, 나아가서는 한국 영화계 전반에 막대한 이득을 가져다준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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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런 장수의 꿈을 이뤄내기 위해 범죄도시 시리즈가 해야 할 일은, IP의 본질을 잊지 않는 것이다. 더 맛있고 인기 있게 만들어보겠다고 이미 잘 만들어둔 카레 위에 마라처럼 향이 너무 강한 향신료를 뿌리기 시작하면, 종국에는 그토록 비판하던 짜장 빙수와 다를 바가 없어질 테니. 결국 혁신에 대한 노력이 변경에 대한 과한 집착으로 이어진다면, 오히려 원하던 그 맛을 경험하지 못해 실망한 고객은 떠나갈 수 있다. 되려 크림이나 토마토처럼 카레 본연의 맛을 더 끌어올려줄 수 있는 재료를 가미한 신메뉴를 개발하는 편이, 맛집이 많아진 상권에서 그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일 것이다.

 

노력의 양으로는 그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았던 범죄도시 시리즈가 지금 서 있는 곳은, 이제 그 노력의 방향을 세심하게 결정해야만 할 갈림길 위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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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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