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법을 족쇄에서 울타리로 바꾼 여성 - 百人堂(백인당) 태영 [공연]

한 글자 한 걸음
글 입력 2023.06.13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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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의 집>에서 노라는 집을 나갔습니다. 그러나 나는 집을 나가지 않을 겁니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집을 나갑니까?”

 

남편과 자식을 집에 둔 채 자신을 찾기 위해 집을 떠난 ‘노라’처럼 집을 나가지 않을 거라 웅변하는 한 여성이 있다. 인형의 집을 뛰쳐나온 노라는 ‘제1의 인형’이고, 한국 여성은 ‘제2의 인형’이라는 내용이다. 당시 가부장적이고 성차별적이었던 사회에 불합리하다며 목소리를 내고 그 뿌리인 ‘호주제’를 철폐하고자 노력한 진취적인 여성, 바로 한국 최초의 여성 법조인 故 이태영 변호사다.

 

우란문화재단의 ‘목소리 프로젝트’ 3탄인 <百人堂(백인당) 태영>은 그를 ‘목소리’로 되찾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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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인물의 이름으로, 故 이태영 변호사를 ‘태영’으로 칭합니다.

 

 

 

“이거 나 못 참아, 아니 안 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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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영은 떡잎부터 하고 싶은 말이 또렷한 소녀였다. 일곱 살 때 나간 웅변대회에서 ‘아들딸 차별’이 불합리하다고 주장하며 설움을 쏟아냈고, “하고 싶은 말은 참지 말고 끝까지” 해야겠다고 결심한다. 아들딸 구분 없이 공부를 잘하면 대학에 보내주겠다던 어머니의 말에 태영은 보란 듯이 열심히 공부해 이화여전에 입학했다.

 

당시 여성을 받아주던 법학과가 없어 가사과에 진학했으나, 태영의 영특함을 알아본 정광현 교수는 그에게 “법학을 해라”고 말했다. 큰오빠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변호사의 꿈을 품고 자란 태영에게 법학의 길이 또다시 열린 순간이었다.


전국 웅변대회에 나간 태영은 또 한 번 목소리를 높인다. 글의 서두에서 언급한 ‘제2의 인형’에서 그는 한국 여성이 가정만 지키는 인형의 집을 벗어나 자신의 삶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태영은 꾸준히 한국 사회에 뿌리내린 가부장제를 지적하고 여성들이 겪는 부당한 일들을 말하는 데 앞장섰다. 그의 웅변은 현장에서 많은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그를 지지하는 사람 또한 많았다.

 

태영의 남편 ‘정일형’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태영은 일제강점기 당시 이불을 만들어 팔며 그의 옥바라지를 했고, 해방 후 그의 응원에 힘입어 다시 심기일전한다. 서울대 법학과에 여성 최초로 입학하고 여성 최초로 사법고시에 합격한다. 그러나 여성 판사는 ‘시기상조’라는 이유로 판사 임용에 거절당한다. 평등에 ‘적당한 때’가 있는가?

 

 

 

한 글자, 한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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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가 된 이태영은 여성법률상담소(현 한국가정법률상담소)를 세워 억울하고 부당한 일을 겪는 여성들을 돕는다. 그러면서 여성들이 고통받는 근간인 가부장제, 그리고 그 가부장제를 법적으로 명시하는 ‘호주제’ 폐지를 그의 숙명으로 새긴다. 부계 혈통을 기반으로 가족이 구성되는 ‘호주제’는 여성이 아버지, 남편, 아들에게 차례로 귀속되도록 하기에 남아 선호 사상이 생기고 여성들이 가정폭력을 인내할 수밖에 없다고 본 것이다.

 

불평등을 필연으로 만드는 구조를 바꾸기 위해 태영은 가족법 개정안을 들고 수차례 대법원장을 찾아갔고, 여성단체와 호주제 폐지 운동도 벌였다. 그러나 정권이 수차례 바뀌었지만, 호주제 폐지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타협하자는 속삭임도 있었다. 그러나 이태영 변호사는 뿌리인 ‘호주제’를 뿌리 뽑아야 여성 해방의 근간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믿었다. 그의 꾸준한 두드림에 서서히 법은 바뀌었다. 동성동본 결혼 금지법은 폐지되었고, 가족법은 1989년 개정됐다. 그리고 호주제는 그가 세상을 떠난 후, 2008년에 완전히 폐지됐다.

 

 

 

줄로 상징하는 양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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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百人堂(백인당) 태영>에서 가장 눈에 띄는 연출은 ‘줄’이다. 태영이 법 개정의 필요성을 느끼고 호주제 폐지를 주장하면서부터 무대에 줄이 하나씩 하나씩 그어진다. 이 줄은 양면적이다. 줄이 만든 울타리는 보호와 동시에 통제와 억압의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무대에 그어지는 줄들은 가부장제가 체계로 자리 잡은 시대에서 여성들이 느끼는 억압을 드러낸다. 그와 동시에 태영이 법 안에서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부각한다. 태영이 여성법률상담소를 열어 여성들을 상담할 때 그들은 줄이 만들어 낸 울타리 안에 있으며, 여성백인회관을 열어 간판을 보여줄 때도 책상을 한 칸 앞으로 옮겨 울타리 안으로 들여온다.


법은 사회와 개인을 보호함과 동시에 우리가 사회에서 행동할 수 있는 범위에 한계를 짓는다. 호주제과 가족법은 여성들을 한계 지었고, 가부장적 질서를 수호했다. 이러한 양면성 아래, 태영은 법의 한계를 수정하면서도 여성들을 법의 테두리 내에서 보호하고자 한다. 이는 태영을 옭아매듯 그어지는 줄들로 상징된다.


태영이 바꾼 법들이 스크린에서 차례로 나타나며 줄들은 하나씩 사라지고, 그가 가위로 마지막 줄을 자르며 극은 끝난다. 그간 자신과 한국의 여성을 옭아매어 온 족쇄를 끊어버리는 행위다.

 

 

 

전통의 노예가 아니라 역사의 창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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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한 말처럼 들린다. 그러나 이태영 변호사의 삶의 자취를 따라오다 보면 알 수 있듯, 그가 자신의 문제로 삼은 일은 지극히 개인적이다. ‘여성으로서의 삶’.

 

가장 개인적인 것은 가장 사회적인 문제의식이 된다. 태영의 개인적 관심사는 줄곧 ‘여성’이었다. ‘여성’에 관해 하고 싶은 말이 있었고, 참지 않았고, 끝까지 말했다. 비슷한 사정을 가진 사람들은 진심에 이끌려 뭉쳤고, 개인의 문제는 곧 사회의 문제가 됐다.


분명 이 세상은 불합리와 불평등으로 가득하다. ‘선한 영향력으로 소외당하는 사람이 없도록 하고 싶다’라는 대의를 품은 사람도 분명 많을 것이고, 그런 사람들의 힘으로 세상을 서서히 나은 곳으로 변하고 있다. 그러나 큰 성인이 되고자 노력하는 건 다소 모호하고 어렵다. 역사의 창조자는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가장 사소하고 개인적인 문제들을 진정성 있게 드러내고 그에 공감하는 사람들을 끌어모아 단단한 심지를 굳히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故 김병로 前 대법원장은 이태영 변호사가 가족법 개정안을 가지고 찾아가자 “다른 여자들은 불평 없이 잘 사는데, 법 좀 배웠다고 건방지게 법을 고치라고 나서느냐”고 했다. 모두가 불평 없이 사는 것처럼 보일 때, “나는 불편하다”고 외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전통의 노예가 아니라 역사의 창조자가 아닐까. 거창하게 생각하지 말자. 나, 그리고 나와 비슷한 사람들의 불편함을 외면하지 않고 확실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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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가?

 

어떤 문제를 바꾸고 싶고, 어떤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싶은가?

 

 

*사진제공: 우란문화재단

 

 

[정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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