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빛을 철저히 숨긴 호퍼만의 그림자 철학 [전시]

전시 <에드워드 호퍼 – 길 위에서>와 함께하며..
글 입력 2023.06.09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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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에드워드-호퍼-길-위에서》-포스터.jpg


 

 

에드워드 호퍼란 누구인가

Who is Edward Hopper


 

1882년 뉴욕주 나이액에서 태어난 호퍼는 그림과 문학을 즐기며 성장한다. 부모의 권유로 1899년 실용미술 위주의 뉴욕일러스트레이팅학교에 진학하나, 이듬해 뉴욕예술학교로 편입하여 20세기 전반 미국 사실주의 화단을 이끈 로버트 헨라이 등의 수업을 들으며 예술가의 꿈을 이어간다.

 

호퍼의 삶과 궤를 함께하는 자화상과 일련의 작품들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1900년 초, 학생 시절에는 얼굴과 상반신, 특히 손을 수차례 그리는데, 예술적 표현과 기술적 숙련을 위한 노력, 성공에 대한 열망을 느낄 수 있다. 상업 화가에서 전업 작가로 나아가는 과도기인 1910-1920년대의 자화상에서는 예술가로서의 자아 성찰적 측면이 부각된다.

 

극장을 가거나 야외 작업들을 다니며 애용하던 중절모와 에칭 프레스기가 본인의 상징물로 등장하며, 직업적 자의식이 안팎으로 영감을 얻으며 성장하는 면모가 드러난다. 이후 예술가로서 역량과 명성이 무르익은 1940년대에도 자화상과 손 그리기를 반복하여 세밀한 근육의 묘사, 명암의 사용 등에 있어 끊임없는 자기 계발을 시도했음을 보여준다.

 

 

 

# 빛의 원천을 철저히 숨긴 중절모를 쓴 젠틀맨


 

그림에서 빛은 매우 중요하다. 그 빛으로 인해 비치는 오브제들과 그림자들은 작품의 분위기와 메시지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작가들은 빛을 통하여 어떤 대상을 강조하거나 주목시킨다. 더불어 관람객들은 그 빛을 따라 작가의 의도대로 작품을 감상하게 된다.

 

그러나, 에드워드 호퍼의 길 위엔 빛이 없었다. 다시 말하자면 빛의 원천이 그림 위에 표현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빛에 대한 그림자들이 강조되었다. 에드워드 호퍼는 대체 왜 빛의 원천을 철저히 숨긴 것일까. 나는 그 해답을 이번 서울시립미술관 <에드워드 호퍼 – 길 위에서> 전시에서 찾을 수 있었다.

 

<계단>이라는 작품을 한 번 살펴볼까.

 

 

#계단.jpg

 

 

이 작품은 호퍼가 나이액의 집을 떠올리며 작업한 후기작이다. 계단의 구도는 문명의 상징적 공간인 집에서부터 수풀이 우거진 문밖 미지의 풍경으로 시선이 이어진다. 호퍼는 숲을 문명의 대척점으로도 여기며 계단, 창문, 현관문 등의 모티프를 통해 문명과 숲을 경계 지으며 상상을 촉발시켰다.

 

하지만 여기서 특별한 점은 집의 내부가 외부의 숲보다 밝다는 것이다. 문명의 대척점에 존재하는 자연이라는 대상을 밝고, 문명을 어둡게 표현할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버리는 순간이었다. 어쩌면 이러한 대비 효과를 통해 되려 문명이 나쁘고, 자연이 좋은 혹은 자연이 나쁘고, 문명이 좋은 흑백논리들을 뒤집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것은 아닐지.

 

이 그림에서도 빛의 원천을 찾아보기 어렵다. 전체적으로 정적이고 외로운 느낌으로 가득 차 있는데 그 이유가 바로 빛의 원천을 숨겼기 때문이 아닐지.. 하지만 내가 이 부분에 꽂히게 된 것에는 가장 큰 이유가 숨어있다. 빛의 원천은 숨어있지만 그림자를 통해 빛의 방향은 보인다는 점이다.

 

<맨해튼 다리>를 살펴보자.

 

 

#맨해튼 다리.jpg

 

 

분명 <계단>에 비해 밝은 분위기와 색감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외로운 분위기가 느껴진다. 나는 그 원인을 그림 속에서 찾으려고 했고 그 빛을 비추고 있는 해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자각했다. 그림자가 앞쪽으로 생기는 걸로 보아서 바로 다리 건너편에서 해가 바라보고 있을 터인데,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은 그림자뿐이다. 그럼 이제 여기서 드는 의문은 단 한 가지이다. 에드워드는 호퍼는 대체 왜 빛의 원천을 감쪽같이 숨겨 나와 같은 관객들로 하여금 빛의 원천을 고민하게 하는가.

 

그 답은 <햇빛 속의 여인>에서 찾을 수 있었다.

 

 

#햇빛 속의 여인.jpg

 

 

그림 속의 여인은 에드워드 호퍼의 아내인 ‘조세핀 호퍼’의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고즈넉한 방 안에 우두커니 서 있는 조세핀의 나체는 있는 그대로의 빛을 흡수하고 있다. 마치 그녀의 시초이자 원천인 빛을 향해 나아가고 싶은 것처럼 빛이 오는 방향을 멍 때리며 쳐다보고 있다. 그러나 그녀의 표정은 자세히 살펴보면 굉장히 슬프다, 고독한 것일까, 햇빛이 그녀의 눈을 시리게 한 것일까. 곧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창문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조세핀 혹은 다른 그녀의 생각은 어디에 와닿아있는 것일까.

 

내가 지금 작성한 단락에 앞서 언급했던 호퍼가 빛의 원천을 숨긴 이유가 담겨있다. 한 번 찾아볼 수 있겠는가. 너무 어렵다면 지금 당장 알려주도록 하겠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무언가의 기원을 찾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렇기에 그 기원과 원천이 내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면 그 원인을 분석하고 탐색하려고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는 색다르고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펼쳐지게 될 것이다. 마치 내가 그녀의 표정과 심리를 분석하고 궁금해했던 것처럼 말이다. 누군가는 그녀의 널브러져 있는 침대를, 누군가는 침대 밑에 엉뚱하게 놓여있는 구두를 그리고 누군가는 조세핀 뒤에 펼쳐져 있는 그림자를 소재로 새로운 ‘이야기’를 창작해 나가게 되는 것이다.

 

호퍼는 이러한 현상을 의도한 것이다. 그 누구도 정답이라고 강요하지 않는 예술 향유의 세계 안에서 관람객들이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를 만들어 주었다. 덕분에 끝이 없는 상상 끝에 결론을 내리기는 어려웠지만. 그 또한 어떠한가. 예술 작품에 꼭 끝을 내야 하는가. 문화와 예술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 또한 다시 한번 바라볼 수 있어서 되려 감사한 기회였다고 호퍼에게 전하고 싶어진다.

 

에드워드 호퍼의 길 위엔 분명 빛이 없을 것이다. 아마도 그는 그의 일생에서도 새로운 이야기들을 끊임없이 추가하며 다채로운 색깔을 가진 삶을 살고 싶어서 그러한 화풍을 선택한 것은 아닐지. 나도 어렴풋이 그 길을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임주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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